△ 사진= SHUTTER STOCK

   

   “챗GPT 시대에 인간답게 살기 위해 필요한 것은?” 최근 화제의 중심에 있는 인공지능(AI) 챗봇, 챗GPT에게 물었다. “인간은 챗GPT와 차별화되는 창의성과 융합적 사고력을 갖추어야 합니다. 챗GPT에서 제공하는 정보를 항상 비판적으로 생각하고 확인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윤리적 사고를 갖추어 기술 사용의 영향과 결과를 고려하고, 그에 따른 행동을 취하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놀랍도록 합리적인 답변이다. 하지만 여기에 제시된 논점들에 대해 인간의 관점에서 보다 깊이 논의해볼 필요가 있다.

   우선 창의성을 갖추어야 할 것이다. 챗GPT가 의사 시험, 변호사 시험 등 주요 시험들을 통과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거꾸로 말하면 그 시험들이 우리의 기계적인 사고방식만을 측정해왔다는 의미인지도 모른다. 주입식 암기 교육의 가치는 이미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보급으로 점점 축소되고 있다. 챗GPT와 같은 딥러닝 기반 생성 AI 서비스까지 등장한 지금은 규칙이나 정보를 개별 상황에 기계적으로 적용하는 능력에 대한 수요마저 줄어들게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인간에게는 어떤 종류의 창의성이 요구될까?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라는 말이 있듯 우리에게 새롭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은 어디선가 본 것들의 새로운 조합에 불과할 수 있다. 인공지능은 무한에 가까운 무작위 조합 능력을 이용해서 인간이 상상도 하지 못한 새로운 것들을 산출해내는 탁월한 능력을 보여준다. 이러한 ‘생산적 창의성’의 측면에서는 인공지능이 인간보다 나을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창의성은 인공지능이 산출하는 엉뚱한 새로움 속에서 가치 있게 쓰일 수 있는 조합을 찾아내는 ‘응용적 창의성’이라고 할 수 있다. ‘무엇을 위한 창의성인가?’라는 화두가 그 핵심에 놓일 것이다.

   인공지능의 발달로 창조자나 생산자보다 감별사와 소비자로서의 역할이 더 커질 것이므로 우리에게 이제 필요한 것은 옥석을 제대로 가려내는 비판적 감식안이다. 그렇게 되었을 때 비로소 인공지능이 산출하는 말에 휘둘리지 않고 주도권을 쥔 주체로서 가치 있는 목적을 위해 인공지능을 제대로 활용하는 능력을 갖추게 될 것이다. 우선 겸손한 자세로 인간만이 똑똑할 수 있다는 자만을 반성하고 인간만이 갈 수 있는 길을 의연하게 나아가려는 의지가 필요하다. 만약 인공지능에게서 어떤 대답이 돌아오든 그저 받아 적고 따를 준비만 하고 있으면 우리는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는 희뿌연 삶을 살게 된다. 우리 인간에게 희망이 있다면 그것은 삶의 가치와 의미에 대해 비판적으로 성찰해보는 자세에서 생겨날 것이다.

   결국 이러한 창의성과 비판적 태도가 인간답기 위해서는 가치관의 확립이 전제되어야 한다. 과학 기술의 발달로 인해 삶의 많은 부분들이 달라지고 있지만 인간의 좋은 삶에 필요한 본질적 요소들은 생각보다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아무리 사람이 하늘을 날아다니고 인공지능 변호사가 활약하는 시대가 오더라도 우리는 여전히 서로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어할 것이고 의미 있는 활동에서 자존감을 찾을 것이며 타인의 인정을 갈구할 것이다. 수천 년 전 공자나 소크라테스가 말하던 인간과 지금의 인간은 여전히 닮아 있다.

   이제 우리는 변치 않는 인간의 본질적 속성에 대해 새로이 탐구하고 인간에게 좋은 삶이란 무엇인지 깊이 통찰해보아야 한다. 어떤 덕목들을 길러야 할 것인가? 우리는 서로에게 어떤 존재가 되어야 하는가? 우리가 자랑스럽게 여기던 일들을 로봇이 훨씬 더 잘 해내는 시대가 오면 어디에서 삶의 의미를 찾을 것인가? 이들은 이미 과학과 기술의 문제가 아니다. 가치와 윤리의 문제이다. 변화의 빠른 속도에 놀라 패닉에 빠질 것이 아니라 잠시 숨을 고르고 중요한 것을 추려 단단히 붙잡는 지혜가 필요하다. 마리 퀴리가 말했듯 “인생에 두려워할 것은 없다. 단지 이해할 것이 있을 뿐이다. 지금은 이해를 더하여 두려움을 덜어내야 하는 시기이다.

   마지막으로 점점 ‘인간스러워’지고 있는 챗GPT를 대하는 인간이 가져야 할 윤리적 태도의 한 측면을 언급하며 이 글을 마치고자 한다. 가령 이 글을 작성한 것이 인간 엄성우가 아닌 챗GPT였던 것으로 밝혀진다면 우리는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까? 인공지능이 '창작' 혹은 새로운 조합에 의해 재생산한 결과물을 사용하는 건 ‘남의 작품’을 몰래 따다 쓴다는 엄밀한 의미에서의 ‘표절’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윤리적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다른 저자의 저작권을 침해하는 문제는 아니라 해도 온전히 내 것이 아닌 것을 내 것인 것처럼 내놓는다는 점에서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학술지 ‘네이처’에서는 얼마 전 챗GPT와 같은 대규모 언어모델(LLM)은 논문 저자로 인정될 수 없지만 이를 사용할 경우 논문에 명시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렇게 챗GPT는 그 등장만으로도 ‘표절’, ‘저자’, 그리고 ‘인간’의 본질에 대한 철학적 성찰로 우리를 초대하고 있다. (물론 이 글은 인간이 쓴 것이 맞음을 밝혀 둔다!)

   결국 생각의 일부를 대신해줄 수 있는 존재가 나타난다 해도 인간은 생각하기를 멈추어서는 안 된다. 인공지능이 ‘생각을 대신해 준다’고 게으른 태도로 의존해서는 안 될 것이며 오히려 그 사고의 결과물이 옳은지에 대해 더욱 치열하게 생각해야 한다. 우리의 역할은 확고한 가치관에 기반해 인공지능이라는 야생마가 일탈하지 않도록 고삐를 단단히 쥐고 인간다운 삶을 향해 내딛는 것이다. 질문을 잘 해야 하는 시대가 오고 있다지만 지금은 오히려 챗GPT가 우리에게 교육, 윤리, 그리고 삶의 의미에 대해 강렬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삶의 의미에 대해 물었을 때 챗GPT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것은 자신의 신념, 가치관, 경험에 따라 스스로 답해야 하는 문제입니다.”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이제 우리가 답해야 할 문제이다. 우리가 ‘하는’ 일들을 인공지능이 대신해주는 시대가 온다 해도 올바른 가치를 추구하며 인간답게 ‘사는’ 일은 대신해줄 수 없을 테니까.

저작권자 © 대학미디어센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