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일요일>

 
 
  △ 사진출처 : 다음 영화  

   사람들은 삶의 무게가 무거워질수록 포기를 배운다. 대표적 예시로 2011년도부터 사용되기 시작한 ‘삼포세대’라는 말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삼포세대는 연애, 결혼, 출산 세 가지를 포기한 세대를 이르는 말로, 어려운 사회 상황 속에서 사람들이 가장 먼저 포기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이 세 가지를 관통하는 것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멋진 일요일>의 유조와 마사코는 사랑을 포기하지 않고 다시 일요일에 만난다. 패전 후 삭막하고 혼란스러운 시대적 상황 속에서 가난한 연인인 둘은 그들 나름 즐거운 추억을 만들고자 분투한다. 돈이 없어 결혼은 고사하고 밥 한 끼 제대로 사 먹지도 못하면서 신축 모델하우스를 구경하고, 전우가 운영하는 카바레와 동물원, 음악회를 찾아가는 등 오늘을 ‘멋진 일요일’로 남기고자 노력한다.그러나 카바레에서는 화려한 복장의 사람들과 자신 사이의 간극을 확인하게 되고 동물원에서는 되려 동물들이 자신을 구경하는 듯한 기분을 느끼는 등, 일련의 노력은 이들로 하여금 비참한 처지를 더욱 직시하게 만드는 계기만 될 뿐이다.

   그럼에도 둘은 다시 한 번 꿈을 꾸기를 시도한다. 폐허에서 그들만의 카페 히야신스를 운영하고, 방치된 공연장에서 음악회를 연다. 그러나 이 역시도 그들의 역할극을 지켜보는 다른 이들의 시선으로 인해 수치심으로 전락한다. 희망을 가져보려고 해도 세상은 그런 둘을 비웃는 듯 부끄러워 달아나게 하거나 작아지게 만든다. 텅 빈 무대 위에서 유조가 더는 견디지 못하고 주저앉을 때, 마사코는 무대로 뛰어올라가 카메라를 응시하며 영화의 관객들에게 호소한다. 

   “여러분 부탁이에요. 부디 박수를 쳐 주세요. 세상에는 우리처럼 가난한 연인들이 많답니다”, “우리들도 아름다운 꿈을 꿀 수 있도록 해주세요”

   마사코가 바라는 것은 집도 돈도 아닌 박수와 격려이다. 나의 꿈을 부끄러운 것으로 만들지 말고 다만 응원해달라는 애원을 통해 인물이라는 장치로서 작동하던 마사코는 돌연 프레임 바깥으로 튀어나온다. 자신을 바라보는 일방적인 시선 앞에 전면으로 나서면서 마사코는 주체성을 가지게 되고 관객들은 그녀의 호소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다소 우스꽝스럽게 보이던 두 사람의 하루가 처절함으로 다가오는 순간이다. 서사 속 인물로서 관객과 거리를 유지하던 이가 자신의 자리를 거부하고 뛰쳐나와 직접 말을 걸어올 때, 관객들은 그를 단순히 작품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닌 우리 주변의 인물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눈물로 호소한 후 마사코는 프레임 안으로 복귀한다. 유조는 마음을 다잡고 무대에 올라 상상 속의 악단과 함께 미완성 교향곡을 연주하고, 마사코 역시 관객의 태도로 진지하게 임한다. 둘은 서로의 얼굴이 보이지 않은 때에야 울음을 터뜨린다.

   밤이 깊고 역사의 벤치에 나란히 앉은 둘은 말이 없다. 마사코는 조용히 눈물만 흘리고 유조 역시 미동 없이 넋 놓고 있을 뿐이다. 3년, 5년 뒤를 상상해도 환한 미래는 어쩐지 너무 멀리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둘은 웃으며 인사하고 다음 일요일에 보기로 약속한다. 이 가난한 연인의 다음 일요일이 어떨지는 불 보듯 뻔하다. 당사자들 역시 어렴풋이 알고 있을 것이다. 다시 척박한 현실로 복귀하는 연인에게 인사하고 돌아선 유조는 영화의 초반부, 마사코를 기다리며 주울지 말지 고민했던 담배꽁초를 구둣발로 짓이겨 버린다. 그리고 크게 기지개를 켜는 것으로 영화는 끝난다.

   영화는 이들에게 어떠한 해결책도 제시해주지 않는다. 당연한 일이다. 당장 지금 우리가 사는 사회 역시 로또나 암호화폐거래 등 일확천금의 기회를 노리는 이들이 많지만 이것은 모두 근거 없는 행운이 아닌가. 유사하게, 유조와 마사코의 꿈은 이들이 여태 살아온 삶을 유지하기만 한다면 절대 이루어질 수 없다. 둘의 수입을 합쳐도 햇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단칸방조차 못 구하는데 카페 개업 같은 소망이 가능할 리 없다. 영화는 유조와 마사코에게 근거 없는 행운을 부여하지 않고, 비참하고 수치스러운 상황만을 계속해서 겪게 할 뿐이다. 그러나 이들은 끝끝내 일요일을 포기하지 않았으며 존엄성을 버리지도 않았다.

   계속 살아갈 것이라면 희망을 갖는 것 외에 달리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근거 없는 희망일지라도 유조와 마사코는 그것을 붙들 수밖에 없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 낭만을 지키려는 사람에게 흔히 현실감각이 떨어진다고들 한다. 그러나 그들은 현실감각이 떨어지는 이들이 아닌, 폭력적인 현실에서 행복을 찾아내려는 처절한 사람들이다. 사랑과 낭만이 폭력적인 현실에 대한 정답이나 해결책은 아니지만, 사랑하려 하는 의지가 현실을 견디게 해주는 것 중 하나임엔 틀림없다. 유조와 마사코는 다음 일요일에도 만날 것이고,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 사랑하는 이들도 또다시 만날 것이다. 그것으로 아름다움은 조금이나마 더 오래 유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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