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유안, 『백 오피스』, 민음사, 2022.

 
 
  △ 사진출처 : YES24  

   최유안의 오피스 소설은 이미 첫 번째 소설집 『보통 맛』(민음사, 2021)에서 만나본 적이 있다. 표제작 「보통 맛」은 회사 구성원으로서 또 좋은 선배로서 보통 이상이고 싶었으나 ‘보통 맛’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사실을 실감하고 나서야 씁쓸하게 사그라지는 한 개인의 인정 욕구를 세밀하게 그려낸 소설이었다.

   장편소설 『백 오피스』는 여러 면에서 「보통 맛」의 확장판이다. 작가의 경험이 묻어난 핍진한 서술도, 세 명의 여성 인물이 보여주는 일에 대한 열정도, 그 이면에 쌓여가는 보이지 않는 마음에 대해서도 이전보다 더 깊은 층위에 있는 작품이다. 이 확장된 세계를 두드러지게 하는 건 소설의 배경이다. 우리에게 호텔은 잠시간의 안락한 휴식을 선사하는 장소로 익숙하다. 하지만 언제나 최상의 컨디션으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애쓰는 무수한 손길이 있다는 사실은 어쩐지 새삼스럽다. 고객의 눈에 보이는 ‘프런트 오피스’보다 그 너머 ‘백 오피스’에서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이들이 훨씬 더 많다는 것, 이곳 역시 누군가에게는 치열한 삶의 현장일 뿐이라는 점을 상기할 때 읽는 이의 사고와 소설의 세계는 동시에 확장된다. 보이지 않는 곳을 향한 관심이 기울어진다.

   그곳에 세 명의 인물이 있다. 강혜원, 홍지영, 임강이는 직장도, 직책도, 나이도 모두 다르지만 목표 하나만은 같다. 태형그룹이 주최하는 10억원 규모의 행사를 성공리에 끝마쳐야 한다는 것. 이해관계 속에 있는 인물들 사이에는 서로를 향한 경계심으로 묘한 긴장감이 맴돌기도 하지만 같은 목표 아래 이들은 끝내 서로를 의지하기로 한다. 모두의 노력으로 연회가 준비되는 과정 동안 눈여겨볼만한 것은 세 사람의 ‘백 오피스’다. “무언가를 유지하는 데는 그것을 아끼는 어떤 이들의 마음과 그것을 받쳐줄 희생이 수반된다”(95쪽)는 말은 직장에 국한되지 않고, 개인의 이면을 비출 때에도 유효했다. 이를테면 딸을 향한 어머니의 아낌없는 지원과 남편의 배려와 같은 것이 그랬다. 희생은 꼭 타인의 것이 아닐 수도 있었다. 내면의 본능과 가치관은 늘 일과 충돌했고, 늘 졌다. 사랑을, 정의를, 양심을 모른 척하면서 나아갈 수 있었다. 그런데 이들이 자신의 ‘백 오피스’에 대해 생각하면 할수록 도리어 ‘일이란 대체 무엇인가’를 묻게 되는 건 왜일까.

   일은 “쟁취해야할 무언가, 내 삶을 지탱해 준 무엇”이자 “내 삶의 의미”(138쪽)와도 같은 것이었다는 사실은 하지만, ‘백 오피스’에 있는 이들을 떠올리는 지금, 앞으로 가면서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되는 지금도 그 의미가 같다고 할 수 있을까? 등 뒤의 것들이 같은 속도로 따라붙는 것이 아니라 같은 속도로 멀어지고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은 착각이 아닐 것이다.

   자각은 때로 너무 늦어서 돌이키기란 쉽지 않다. 주어진 일을 잘 해내는 것이 곧 잘 사는 것이라 믿었었는데 그게 같지 않다는 걸 어렴풋이 깨닫게 된 지금은 이미 늦어버린 것만 같다. 인물들의 내적 갈등이 바깥으로 형상화되는 건 행사장의 조형물이다. 숨죽인 채 균열을 키워가던 조형물의 어긋난 틈 사이로 물이 쏟아지고 태형의 행사는 순식간에 엉망진창이 되어버리고 만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이를 단지 책임자 세 사람의 탓으로 돌릴 수는 없을 것 같다. 친환경 도시 재생을 표방하고 있지만 사실 폭력적인 침투에 가까운 개발을 하고 있는 대기업이 호텔 연회장 안에 생생한 자연을 구현하려 했다는 것부터가 모순이며 균열의 시작이기에. 

   때문에 행사는 실패로 돌아갔다고 말할 수 있을지언정 자신의 일을 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세 사람까지 실패했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서로를 믿을 수 없던 이들이 합심하여 만들어낸 과정마저 실패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들은 이제 자신의 백 오피스를 돌아볼 여유를 찾았다. 그곳에 남겨둔 것들과 함께 일에 대한 새로운 의미를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작권자 © 대학미디어센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