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적 주체로서 어린이와 청소년을 존중하며

 
 
  △ 사진출처 : Pixabay  
 

  어린이는 특정한 시대의 규범 속에서 성장한다. 시대는 자신들이 구축한 규범을 학교와 가정이라는 제도를 통해 어린이들에게 제시하고 그 제도의 순탄한 적응자가 될 수 있도록 끊임없이 어린이의 몸을 사회화 시키는 과정을 밟는다. 많은 어린이들이 이 과정에서 제한된 모범을 세습하며 어른으로 자란다.

  그러나 어린이는 다음 세대의 잠재적 주체라는 점에서 시대와 가장 강력하게 불화할 요소를 지니고 태어난 사람들이다. 어느 국면에서의 부적응은 어린이의 권리다. 어린이들은 어른들의 모습을 관찰하면서 점차 자신들이 바라는 세계는 이미 존재하는 세계와 다르다는 것을 깨닫는다. 더 좋은 세계에서 살아가고 싶다는 용기와 도전을 품는다. 자아의 성숙에 따라 인식 세계를 확장해가는 어린이의 눈에 비친 어른들은 각자의 위치에 따라 거짓말을 남발하는 불신의 지표다. 어른들이 강변하는 규범과 진리의 어떤 부분은 자신들을 부당하게 통제하려는 목적으로 설계되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청소년이 되면서 어린이들은 앞으로 다가올 미래는 세습된 규범만으로 대응할 수 없기에 자신들의 힘으로 생각하고 현실을 비판하며 주어진 바를 넘어서는 창조적인 질서를 만들어야한다는 것도 느끼게 된다. 자신들이 살아가야 하는 사회의 모습을 자신들의 사고를 통해 발견해나가는 과정이 진행되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기성세대는 얼마만큼 어린이와 청소년의 비판적 생각을 존중하고 창의적 제안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가? 최근 전국의 중고등학교에서 쏟아져 나오는 ‘스쿨미투(school me too)’의 목소리는 학교가 아동청소년을 보호하는 믿음직한 안전지대라고 주장해왔던 기성세대들을 겨냥한다. 빗발치듯 이어지는 스쿨미투 고발은 아동청소년이 교내 성폭력에 대응하는 기성세대의 시스템을 신뢰할 수 없으며 앞으로는 자신들의 안전과 존엄을 스스로 지켜나가겠다는 독립 선언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러한 움직임에 대응하는 기성세대의 모습은 여전히 안일하고 무력해 보인다. 아직도 상하주의(verticalism)나 아동청소년문학에서 말하는 나이규범(aetonormativity)에 갇혀서 아동청소년을 자율적이고 철학적인 주체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를 보이는 경우도 많다.

  철학적으로 어린이의 독립적 지위를 존중하는 것은 어린이에게 자유로운 발화의 권리를 돌려주는 것부터 시작된다. 더불어 어린이의 삶에 대해서 관찰하고 문화의 변동을 연구하는 것은 중요하다. 시대의 경고는 어린이 인권이 흔들리면서 찾아오는 경우가 많고 무엇보다 그들은 가까운 미래를 예견하게 하는 내일의 동료다. 2018년의 어린이가 사회 각 영역에서 본격적으로 활동하게 될 2030년대를 상상해본다. 존재들 사이에 일어나는 교류의 방식과 과정은 획기적으로 달라질 것이다.

  존재에 관한 이해 자체에 변화가 올지도 모른다. 아동청소년문학에서는 지금 우리가 다루어야 할 문학적 과제로 내용적 측면에서는 ‘다양성’이라는 키워드를, 형식적 측면에서는 ‘글과 그림의 역할 변화’를 고민하는 중이다. 더불어 어린이가 읽는 이야기의 주인공들은 과거와 다른 모습으로 제안될 것이다. 인간의 이야기에서 인간과 동물, 인간과 식물의 이야기로, 나아가 인간과 로봇의 이야기로 관계의 양상도 변화할 것이다. 포스트-휴먼은 아동문학에서 최근 본격적으로 논의를 시작하는 주제다.

  지난 시절 근대 동화의 이야기 주체는 성인 화자의 시선을 지닌 어른 인간이었다. 그들이 어린이들을 향해 계몽적 의도를 설파하고 훈육을 효율적으로 지원하기 위한 서사들이 창작되었다. 현대 동화는 어린이를 대상화하는 시혜적 구도로부터 어린이의 주체적 시선, 어린이의 목소리, 어린이의 감정을 발견하고 구조하는 역할을 자임해왔다. 나아가 21세기의 동화들은 그 어린이가 어떤 어린이의 범주에 국한되어 있지 않은가를 질문한다. 뉴욕타임즈의 아동청소년문학 전문 에디터인 마리아 루소는 지난 봄 볼로냐국제아동도서전에서 열린 포럼에서 “지난 65년 어린이 그림책의 역사는 백인 남성 아동의 모험 서사로 정리된다”라며 특정한 성별과 인종이 배제된 동화의 역사를 비판한 바 있다. 그리고 그동안 가시화되지 못하고 발언권을 얻지 못한 다양한 소수자 어린이들의 거침없는 발언대로서 아동청소년문학이 적극적으로 공간을 열어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편으로 문화자본의 영향력이 증대되는 현실에서 여러 가지 미디어에 노출된 어린이가 반드시 시대에 대한 비판의 힘을 소유하고 있으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순진한 생각일 수도 있다. 상당수의 어린이는 물질과 자본을 대변하는 미디어를 지침으로 삼아 그 지시에 빠르게 발맞추면서 유년기를 보낸다. 급증하는 1인 미디어는 과거 계몽 서사로 가득한 텍스트들보다 더 직설적이고 선정적인 방식으로 어린이들을 포획한다. 혐오 콘텐츠는 그 연결망을 타고 급속도로 번진다. 어린이들은 콘텐츠의 내용을 분별하기 전에 미디어의 양식에 복종하고 자율적 사고의 권리를 유예하거나 반납하는 길을 택하기도 한다.

  지금 이 시기의 어린이 철학교육은 어린이에게 어린이다움을 돌려준다는 의미에서 중요하다. 시대와 불화하는 어린이 본연의 특질을 되찾아주는 역할을 한다. 어린이 철학교육에서는 비판적 사고, 배려하는 사고, 창의적 사고의 균형을 강조한다. 어린이에게 가해지는 어떤 수동적, 복종적 사유 훈련의 시도도 배격한다. 온전히 자신의 힘으로 문제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과정에 어린이가 참여할 수 있다고 보고 그 능동적 힘을 길러주기 위해서 노력한다.

  어린이는 대표적인 소수자이며 약자이다. 누구보다도 창조적으로 움직이고 생각하는 약자들이다. 그들에게 주어지는 서사가 어떤 의미의 국가주의나 집단주의, 가부장제와 성적 불평등주의, 그 밖의 여러 가지 편협하고 고답적인 세계관을 담고 있다면 어린이는 이것을 스스로 분별하고 깨뜨리면서 나아갈 권리가 있으며 그들에게 사고의 역량을 키워주고 판단의 자유를 주어야 한다. 어린이 철학교육 연구자인 매튜 리프만은 자신의 책인 『어린이를 위한 철학 교육』에서 어린이로 하여금 스스로 ‘비판적 질문행위’와 ‘창조적 반성’에 참여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고 역설하면서 어린이를 위한 철학 프로그램은 ‘비권위적’이며 ‘반교화적’이어야 하고 사고와 상상에 관한 여러 가지 선택적 양식이 발전해나가도록 자극을 주는 것이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어린이의 철학적 사고는 우리가 늘 경험하는 ‘짐작’들을 질문으로 정리하고 추론으로 발전시키는 가운데 성장한다. 어린이들은 복잡한 세계에 대한 호기심을 갖고 있다. 그리고 그로부터 발견한 질문들에 대해 좀 더 분명한 답변의 절차를 찾고 최선의 결론을 얻어 행동해보려는 마음이 있다. 운동이 몸의 건강을 도와준다면 철학적 사고는 마음의 자립을 도와준다.

  사람은 누구나 철학자의 소양을 가지고 태어난다. 어린이들은 이미 준비된 철학자다. 그들이 풍부한 관심과 질문의 동력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은 어린이들의 질문을 대하는 성인 대화자의 태도와 관련이 깊다. 어린이 철학자가 지닌 고무줄 같은 생각이 나일론 끈처럼 질기게 굳어버리는 것은 자신들이 원하는 논리와 주장으로 어린이의 생각을 가져오려는 성인 대화자의 강권을 지속적으로 겪기 때문이다. 더불어 생각에는 다양한 물음이 따르게 마련이고 그 물음을 스스로 따져보고 답을 얻는 데는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 어린이의 생활을 효율을 중심으로 조직하고 통제하는 어른 양육자와 교육자의 태도는 어린이가 세계와 부딪히고 엉뚱해보이는 창의적 질문을 키워나갈 사고의 여유 공간을 빼앗아 버린다.

  니체는 이 세계의 생성과 파괴의 놀이는 마치 영원히 살아있는 불의 놀이처럼 생성의 축제 속에서 이루어진다고 말한 바 있다. 니체에 따르면 이러한 생성의 놀이를 벌일 수 있는 것은 오직 예술가와 어린아이 뿐이다. 아이는 자신의 과제를 놀이로 여기며, 이야기 속에서 진리를 바라보기 때문이다. 빠르게 다른 문명으로 전환 중인 2018년의 세계에서 새로운 시대의 규범을 발견하고 질서를 구성해나갈 힘은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있다. 아동청소년을 위한 철학교육의 시작은 그들을 동등한 대화자로 존중하고 그들이 던지는 비판적 질문과 발언을 경청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새로운 축제를 만들어갈 주인공은 그들이다.

저작권자 © 대학미디어센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