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출처 : ClipartKorea  

   미투 운동의 열기가 뜨겁다. 성폭력 피해 생존자 여성들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우리는 그들의 지속적인 고발로 성폭력 사건이 결코 개인 간의 사적인 일이 아닌, 젠더 권력과 위계질서의 문제임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각계각층의 수많은 남성들이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되어 (그에 합당한 처벌을 받은 게 아니라 겨우) 사회적 위신이 땅에 떨어지자, 가해자에게 감정이입 한 일부 남성은 미투 운동의 부작용을 거론하며 펜스 룰을 지지하기 시작했다.   펜스 룰(Mike Pence rule)은 마이클 펜스 미 부통령의 발언에서 유래한 용어이다. 한국 사회의 맥락에서 거칠게 풀이하면, ‘성범죄자가 되기 싫으니 (이를테면 직장에서) 남자들끼리 놀자’는 뜻이다. 이는 한국 여성이 아무것도 아닌 일로 상대 남성을 성폭력 가해자로 몰아간다는 인식과, 성폭력 가해자로 낙인찍히면 자신과 가족의 앞날이 캄캄해진다는 인식이 밑바탕에 깔려 있는 말이다. 즉, 펜스 룰을 지지하는 남성들은 미투 운동에 적극적인 연대를 표하는 대신, 오로지 스스로의 안위를 걱정해서 가족이나 친구, 애인이 아닌 여성과의 단절을 선언한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둘러치고 싶어 하는 울타리 안은 과연 성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운 공간인가? 펜스 룰 지지자는 인정하기 싫을 수도 있지만, 많은 경우 성폭력은 친족이나 애인이 저지른다. (잠재적) 성범죄자로 오해받지 않으려면 작은 울타리를 하나 더 쳐야 할 것 같다. 그들의 일상생활에서, 가족이건 친구건 애인이건 상관없이 여성을 모두 배제해보자. 이제 울타리 내부에는 남성밖에 없다. 펜스 룰을 지지하는 남성이 이처럼 호모소셜한 공간에 머물길 원한다면, 그들은 한국의 남학교와 군대에서 성폭력이 얼마나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지 전혀 모른다고 봐야 할까. 그들이 실천하려는 펜스 룰은 이상하다. 남성이 자기 지위를 이용해 다른 남성에게 저지르는 성폭력을 은폐하기 때문이다.   나는 ‘남자들끼리 노는’ 공간에서 성폭력 피해를 입었다. 중학생 때는 체육교사가 교무실과 강당에서 다른 학생들이 보고 있는데도 상습적으로 내 귀를 깨물고 강제로 키스했다. 내가 군인으로 복무했던 소방서의 한 소방관은 아들 같다던 나를 따먹고 싶다고 수차례 얘기했다. 내가 이 경험을 밝히는 이유는 한국 남성의 젠더 권력은 여성과 남성을 가리지 않는다는 점을 말하기 위해서다. 남성도 얼마든지 위계에 의한 성폭력을 당할 수 있다. 남성 간의 성적이지 않은 유대감이 강조되는 데 비해, 남성이 남성에게 저지르는 성희롱과 성추행을 친밀감의 표시로 여기는 사회 분위기는 이러한 현실을 가리는 데 일조한다. 피해 생존자 여성이 처했던 상황과 유사하게, 본인이 성폭력을 당했음에도 그것을 성폭력으로 인지하지 못한(못하는) 남성들이 분명 존재한다. 나도 그랬다. 내가 증인이다. 그리고 다른 많은 증인들이 있을 것이다.   이제 펜스 룰 지지자는 어디로 도망칠 것인가. 남성 피해 생존자에게 고발당할지도, 자신이 피해 당사자가 될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펜스 룰은 결국 사람을 사람으로 대할 줄 모르고, 잘못을 저질렀을 때 피해자에게 사과하는 기본적인 방법조차 체득하지 못한 이들의 비겁한 방어 전략일 뿐이다. ‘성범죄자 취급당하기 싫다’는 건 핑계다. 펜스(Pence) 룰을 지지하는 남성은 펜스(fence) 밖으로 나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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