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가 대자보 문화와 오늘날 ‘대자보를 쓴다는 의미’

 
 
△ 동국대 학림관 뒤편 벽면에 부착된 학생 대자보.
   
  얼마 전 영화 마션을 봤다. 마션은 화성에 홀로 떨어진 마크 와트니(맷 데이먼)가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유머러스하면서 긴장감 있게 그리고 있다.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지구에서 약 7800만 킬로미터 떨어진 화성에 혼자 있다는 것은 상상만 해도 숨이 막힌다. 하지만 주인공은 자신의 생존을 알리기 위해 온갖 방법을 총 동원에 신호를 보낸다. 나는 이 장면을 보면서 문득 2015년을 고군분투하며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처럼 보여서 마음이 아팠다.   화성 탐사를 지켜보는 시대에서 부단히 아날로그적이고 투박한 대자보가 다시 주목 받는 것은 참 아이러니하다. 대자보는 수많은 고립된 섬에 살고 있는 지구인들이, 서로가 서로에게 살아있다는 것을 알리는 신호와도 같다. 그래서 대자보를 쓴다는 것 자체에는 상황의 절박함이 묻어있을 수밖에 없다. 누군가 대자보를 썼다면 그는 아마도 그 전까지 다양한 채널로 자신의 이야기를 했을 것이다. 그때까지 우리는 그 신호를 인지하지 못했거나, 알았더라도 무시했을 가능성이 크다.  2010년 고려대를 자퇴하며 쓴 김예슬씨의 대자보가 그랬다.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로 시작하는 그녀의 대자보는 취업 학원으로 전락한 대학에 대한 치열한 고민이 담겨있다. 지난 2013년 12월 고려대 주경우씨의 ‘하 수상한 시절 안녕들 하십니까?’란 대자보 역시 마찬가지다. 철도 민영화와 밀양 송전탑 사태에 대한 비판하며 서로의 안녕을 물었다. 사회는 점점 삭막해지는데 ‘너는 괜찮으냐?’라는 물음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기 시작했고, 안녕하지 못하다며 제2의, 제3의 대자보가 붙여지며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대자보는 굉장히 전통적 커뮤니케이션 중의 하나다. 하지만 소셜 미디어적으로 진화하고 있다. 누구나 글을 쓸 수 있는 개인 미디어이기도하다. '안녕들하십니까?' 대자보의 확산이 대표적이다. 또한 대자보에 담기는 표현의 방식과 내용이 달라졌다. 1980년대 대자보의 메시지가 국가를 향했다면, 2015년 대자보는 개인의 삶을 이야기하고, 질문을 던져 또 다른 수많은 이야기를 생산하는 공론의 장이 되었다.   하지만 아무리 대자보가 유행해도 썩 기분이 좋지 않다. 그만큼 불통의 시대에 살고 있다는 반증이다.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바로 여기에 있다. 커뮤니케이션 형태는 권력의 리트머스 종이와 같기 때문이다. 대자보를 쓸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대학생들의 고달픔 삶을 읽고, 권력의 언론 통제를 읽어야 한다. 그것은 우리 사회가 그만큼 고립되어 가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해서 참 씁쓸하다.   오늘도 집에 가는 길에 대자보를 본다. 그리고 이 글을 읽고 있는 사람들도 대자보를 보며 정문을 지나쳤을 것이다. 당신 앞의 대자보에는 어떤 글이 쓰여 있을까? 화성에 떨어진 누군가 당신에게 신호를 보내고 있을지도 모른다. 잠깐 발걸음을 멈춰보자. 그리고 그 신호에 응답하자. 당신이 화성에 떨어진 누군가를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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