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수차례 이야기한 적이 있지만 매번 반복될 수밖에 없는 이야기이다. 고등학교 2학년 초여름에 떠나온 옛집의 다락방은 온전히 나만의 공간이었다. 두 여동생들과 떨어져 잠시 생각에 잠길 수 있는 곳, 얼른 잠 안 자고 뭐하냐는 부모의 성화도 피해갈 수 있는 곳. 밤이면 창 너머로 반짝이는 먼 곳의 불빛을 바라보다 잠들곤 했다. 다락 아래는 부엌이어서 새벽이면 어머니의 도마질 소리가 꿈속으로 끼어들었다.  아버지는 출판사의 영업부 직원이었다. ‘찌라시’로 불리던 팸플릿을 서류 가방에 넣어 가가호호 방문해 책을 팔았다. 아버지가 이직한 뒤로 쓸모없어진 팸플릿이 집 안에 나뒹굴었다. 총천연색의 질이 좋던 팸플릿. 동생들이 매일매일 딱지를 접었지만 그래도 처치 곤란이었다. 어느 날 젊은 아버지는 장난삼아 외풍 심한 다락방을 팸플릿으로 도배했다.  도스토예프스키가 발치에 스탕달이 이마 위에 있었다. 카츄사와 안나, 라라. 이별과 사랑, 죽음이 제대로 몸을 펼 수도 없는 다락방에 가득했다. 책을 읽기도 전에 나는 작가들의 이름과 작품, 줄거리를 꿰게 되었다. 감질만 나는 줄거리의 뒷부분을 상상하는데도 한계가 있었다. 이후로의 나의 독서는 그곳에 쓰이지 않은 작품들의 줄거리를 확인하는 일이었다.  그러니 그해 여름, 한 남자가 내게 그 이야기를 들려주었을 때 고개를 갸우뚱거릴 수밖에 없었다. 동화 같은 그 이야기는 적어도 내 다락방 안에는 없는 이야기였다. 제목은 물론이고 작가 이름조차 알 수 없었는데 그 책을 읽지 않은 것이 부끄러워 그에게 물어보지 못했다. 그 쓸쓸한 이야기가, 그 이야기를 하던 그의 쓸쓸한 표정이 오랫동안 마음에 남아 있었다.  올 가을, 갈팡질팡 책읽기의 시작은 일본의 그림책 작가 사노 요코의 유쾌한 산문 때문이었다. 그녀의 글을 읽다가 그녀의 첫 번째 남편이 바로 다니카와 슌타로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살아 있다는 것, 지금 살아 있다는 것, 울 수 있다는 것……” 동일본 대지진 이후 그의 「살다」라는 시가 많은 이들에게 회자되었다. 그의 시집 제목과 함께 신경림 시인이 떠올랐다. 두 시인의 우정과 대담, 대시 등을 담은 『모두 별이 되어 내 몸에 들어왔다』를 읽었다. 1990년 봄과 『농무』가 금세 머릿속에 자리 잡았다.   문창과 강의실 앞에는 늘 보던 사람이 지키고 서 있었다. 그는 우리들을 붙잡고 창비 영인본과 창비 정기구독을 권유했다. 그리고 그 봄 시 창작 첫 시간에서 나의 졸시는 ‘완전 깨졌다.’ 그때 교수님이 권해준 책이 바로 『농무』였다. 『농무』를 찾아 읽었다. 다락방 너머로 보던 따뜻한 불빛이 떠올랐다.  제임스 미치너의 소설 『소설』을 다시 찾아 읽어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영화 <와일드> 때문이었다. 셰릴 스트레이트의 자전적 이야기라는 정보 정도는 알고 있었다. 제임스 미치너를 좋아하는 엄마와 그 작가를 싫어하는 딸, 엄마의 죽음과 방탕한 생활. 수천 킬로미터에 이르는 PCT라고 부르는 극한의 체험. 시작일로부터 94일이 흐르는 동안 셰릴은 수많은 감정 변화를 겪고 드디어 엄마를 이해하기에 이른다. 그때 그녀가 떠올리는 것은 엄마가 좋아했던 제임스 미치너의 소설 『카라반』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우리는 우리가 이미 예상한 것에조차 대비하지 못한다.”
 
 
 
  『소설』은 다행히 책꽂이에 꽂혀 있었다. 오랫동안 한 방향에서 햇빛을 쐰 탓에 책등만 변색되었다. 책갈피도 누래졌지만 읽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1992년 봄에 그 책을 선물로 받았다. 면지 오른쪽 아래에 그 책을 선물한 사람의 짤막한 글이 적혀 있다. 그 책을 다 읽고 난 뒤 적어둔 감상적인 감상문이 적혀 있었다. 차마 읽지 못했다. 아주 오래전이다. 그런 글을 아무렇지도 않게 쓰던. 그 책을 선물한 사람과도 오래전에 헤어졌다.  제임스 미치너의 산문집 『작가는 왜 쓰는가』를 찾아 읽어보고 싶어졌다. 오래전에 절판되어 중고 도서를 구입했다. “7, 80년 동안 작가는 왜 쓰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 깊이 생각해왔지만 아직도 포괄적인 해답은 얻지 못하고 있다”는 작가의 고백을 읽었다. 1992년 4월이면 졸업을 하고 잠깐 문예지를 만드는 곳에서 알바를 하고 있을 때였다. 제임스 미치너는 오랫동안 편집자로 일했다.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를 맨 처음 읽은 이도 그였다.   그러다 문제의 그 장면. 젊은 미치너가 과제로 내야 했던 새뮤얼 버틀러의 『인간의 길』에 관한 일화를 읽게 되었다. 그는 책을 읽지 않고 대신 동명의 영화를 보고 감상문을 적어내는데, 교수는 물론이고 친구들은 금방 눈치채고 만다. “눈보라 속에서 그는 고향집의 창문을 통해 그가 내팽개친 가족들이 행복하게 크리스마스 이브의 단란한 한때를 보내고 있음을 본다. 마지막 순간에 용기와 책임을 자각하는 주인공은 가족들에게 자기의 정체를 밝히지 않고 폭설 속으로 다시 들어가 고향집으로부터 멀어진다.”  바로 그 장면이었다. 그해 여름, 그 남자가 내게 들려주었던 그 이야기. 그렇게 오랫동안 혼자 알아내려 했지만 알아낼 수 없었던 이야기가 그곳에 있었다. 『인간의 길』(『만인의 길』로 번역되었다). 그가 집으로 찾아와 잠깐 지하의 다방에 가 앉아 있었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잠깐 다방의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격자무늬가 일정한 모양으로 펼쳐져 있었다. 갈팡질팡하던 내 마음도 떠올랐다. 그가 왜 그때 그 이야기를 했는지도 떠올랐다.  『인간의 길』은 찾을 수가 없었다. 중고 책방에서 구했다는 블로거의 글을 읽었다. 올 겨울 내 책상 위에는 새뮤얼 버틀러의 『인간의 길』이 놓여 있을 것이다.
저작권자 © 대학미디어센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