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방’ ‘쿡방’ 열풍 들여다보기

 
 
   △ 먹방 프로그램 <맛있는 녀석들>의 한 장면.
 
   최근 들어 ‘먹방(먹는방송)’, ‘쿡(cook)방’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물론 과거에도 요리프로는 있었다. 그러나 그 분위기나 포맷, 진행자와 시청자 연령대 등에서는 엄청난 변화가 있다. 과거 요리프로는 가족들의 식단을 책임지는 주부들을 대상으로 전문가가 조리법을 설명하는 방식이었다. 반면 최근에는 시청 연령층이 광범위하게 넓어졌고, 진행자가 정식 자격증을 가진 요리사가 아닌 경우도 많다. 그나마 현재 요리 프로그램 중에 올드버전에 가까운 것은 <최고의 요리비결(EBS)> 정도인데 <오늘 뭐 먹지(O'live)>, <수요미식회(tvN)>, <냉장고를 부탁해(JTBC)>, <식신로드(K STAR)>, <테이스티로드(O'live)>, <맛있는 녀석들(Comedy TV)>, <삼시세끼(tvN)> 등과 비교해봤을 때, 우선 제목에서부터 현격한 차이가 느껴진다.    과거 요리프로는 말 그대로 ‘비결’을 가르쳐주는 ‘정보’ 프로그램이었다. 물엿 한 큰 술과 미리 준비한 다진 마늘 1티스푼을 넣으세요, 같은 말을 무표정으로 쏟아내는 앞치마 입은 아주머니의 모습은 누구에게나 익숙할 것이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요리프로에서 계량기와 저울 그리고 물엿 ‘한 큰 술’을 넣는 모습은 자취를 감추어버렸다. 대신에 인기를 끄는 것은 종이컵에서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설탕과, 초콜릿시럽이 과하게 토핑된 빵을 한 입 크게 먹는 ‘기미작가’의 표정 같은 것들이다. 이젠 어떻게 정갈한 음식을 만들어 내느냐 보다 얼마나 맛있게 먹느냐로 관전 포인트가 변화한 것이다.   <맛있는 녀석들>에서는 연예계 대표 식신들이 등장해 ‘익스트림 먹방’을 보여주고, 정해진 규칙에 따라 그 중 한 명은 구경만 하는 벌칙을 받는다. 자체적으로 시청자 역할을 재현하며 극대화된 식욕마저 시각적으로 연출하는 것이다. ‘아프리카TV’ 같은 인터넷 개인방송에서는 이삼십 대의 젊고 훈훈한 외모의 BJ가 과하다 싶을 정도로 많은 양의 음식을 펼쳐놓고 먹는 모습을 중개한다. 그들은 칼로리와 몸매의 상관관계에 대한 자연법칙을 거스르듯이 가느다란 몸매를 가지고 있다.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듯 음식을 위장으로 밀어 넣는 BJ를 보며 사람들은 대리 만족을 얻는다. BJ들은 시청자의 요구에 따라 마이크를 입 가까이에 대고 튀김 씹는 소리를 들려주거나, 치킨을 특정 소스에 찍어 먹기도 한다. 그게 뭐 하는 짓인가 싶지만, 중개방에 입장하는 인원이 많게는 15만 명에 이른다고 하니 일부 매니아층 시청자들을 위한 취향저격 방송이라고 보기도 어려운 일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마녀사냥과 그의 아류작들, 그러니까 연애와 성에 관련된 프로그램들이 쏟아져 나와 사람들이 왜 이리도 연애에만 집착하는가에 대한 문제의식들이 제기되었는데, 이제는 그마저도 사라졌다. 그린라이트일까요 아닐까요, 같은 질문조차도 귀찮아진 것이다. 사람들은 단지 화려하고 맛있는 음식들을 생각 없이 감상하고 싶어할 뿐이다. 우리는 황금빛으로 반짝이는 요리를 보면서 머릿속으로 끊임없이 씹고 뜯고 상상한다. 말 그대로 ‘푸드 포르노’다.   80년대의 3S가 sex, sports, screen이었다면 2015년의 3S는 sweet, salty, spicy이다. 사람들의 욕구는 과거 독재정권 시절보다 오히려 더 단순화되고 파편화되었다. 퇴근 후 지친 몸으로 소파에 누웠을 때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내일이면 잊어버릴, 휘발되는 욕망이다. TV 앞에서 즉물적인 욕구를 생성하고 소모하는 것에 집중하는 동안, 잠시나마 불안감은 희미해진다.   각계 전문가들이 원탁을 사이에 두고 라면을 더 맛있게 먹는 방법에 대해 진지하게 토론하는 모습을 보면 우리 사회의 고민은 ‘미식’에 관한 것밖에는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글을 쓰는 와중에도 고민하고 있는 것은 그뿐이다. “근데…, 그래서 내일은 뭐 먹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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