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지 게임’이라는 것이 있다. 쫙 펼친 신문지 위에 서너 명이 올라간다. 호루라기를 불면 신문지를 반으로 접고 그 위에 올라간다. 다시 호루라기를 불면, 신문지를 다시 접고 그 위에 올라선다. 좁아져가는 신문지 바깥으로 벗어나지 않으려 몸부림치는 사람들의 모습은 점차 기괴해진다.오늘날의 많은 대학들을 형상화하면 이와 같은 모습일 것이다. 무분별한 학과 통폐합을 거치면서 대학은 취업에 유리하다고 판단되는 학과만을 선택했다. 나머지 학과들은 언제 대학 바깥으로 내몰릴지 모르는 처지에 놓여 있다. 언제 신문지가 또다시 반으로 접혀 그 바깥으로 튕겨나가게 될지 알 수 없는, 불안하게 호루라기 소리가 들려오기만을 기다리는 이들과 같이 말이다.     사회 각계의 많은 이들이 한국 대학의 현실에 관한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들은 하나같이 대학의 창립 목적을 유명 철학자들의 말을 끌어와서, 혹은 스스로 생각한 바를 참조하여 설명한다. 그리고 이는 놀랍도록 일관적이다. 대학은 본래 ‘진리 탐구의 장(場)’이라는 점을 강조한다는 데에서 말이다. 사실 상식적인 선에서도 알 수 있듯, 대학은 애초에 기업에 필요한 인재를 배출하기 위하여 설립된 곳이 아니다.     그러나 기업 맞춤형 인재를 양산하기 위해, 대학구조조정이라는 이름 아래 수많은 학과(특히 인문계, 예술계)들이 통폐합되고 경영학과나 경제학과 등의 일부 학과만이 비대해지는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 대학생들은 4년 내내 어떻게 하면 기업의 이윤을 보다 더 많이 창출시킬 수 있을까에 관한 공부에 몰두한다. 요즘은 더 심하다. 입학하자마자 취업만을 목표로 하여 학과 소모임이나 동아리에는 일절 관심을 두지 않고 도서관에만 틀어박혀 취업 준비를 하는 학생들이 늘고 있다는 얘기가 적잖이 들려온다. 대학 안에서 삶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저마다의 깊은 고찰이 사라진 지는 오래이다. 아주 얕은 고찰까지도 말이다.   지난 전국 대학생 대표자들과의 간담회에서 황우여 교육부 장관이 “이제 취업을 중심으로 교육제도를 재조정해야 한다”는 발언을 서슴지 않았던 것도 취업을 위시한 학과 통폐합, 그리고 취업 맞춤형 교육이 이제는 너무도 당연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언제부턴가 대학은 시장권력에 잠식되어 기업을 위한 인재 양성에 골몰하고 있다.   이를 거부하면? “제 목을 쳐 달라고 목을 길게 뺐는데 안 쳐주면 예의가 아니다”라거나 “가장 피가 많이 나고 고통스러운 방법으로 내가 쳐줄 것이다” 따위의 폭언이 되돌아온다. 급히 지어낸 예시가 아니다. 대학구조조정에 반대하는 중앙대 비대위 교수들에게 박용성 전 중앙대 이사장이 실제 내뱉은 말들이다. 거부하면 목을 치겠다는 상황과 맞물려, 학생들 사이에서는 무사히 졸업하여 취업만 하면 그만이라는 사고가 팽배해지고 있다. 학생들은 구조조정 반대 서명에 사인하기보다 대기업 인적성 예상 문제에 밑줄 한 번을 더 친다. 모두가 대학 안에서 취업이라는 지상명령을 향해 나아간다. 모두가 업(業)을 위해 업(業)을 쌓는다.그러니까 신문지의 면적, 학과의 수를 줄어나가는 게 ‘게임’의 원칙이라며 성급히 호루라기를 불어대는 자들과 우리는 똑바로 마주하고 항의해야 한다. 골방에서 뛰쳐나와 기업인들이 쥐고 있는 호루라기를 던져버리는 일, 그것이 필요한 때이다.   두리번거릴 필요 없다. 이것은 당신의 문제이다. 제 골방에 처박혀 공부만, 취업 준비만 하다 구겨지고 찢겨진 신문지 위 높은 인간 탑에서 끝내 요상한 포즈로 서게 될 당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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