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책

  소설을 쓰는 사람이 된 후 책에 대해 이야기할 기회가 많아서, 여러 형태의 서점이나 잡지, 신문에 자주 책을 추천했다. 여름 휴양지에서 읽기 좋은 책(휴양지에서는 쉬는 게 제격이다)의 리스트이기도 했고, 좋아하는 추리소설(언제나 레이먼드 챈들러)이기도 했고, 영향을 끼친 작가(자주 바뀐다)의 이 름으로 몇 권의 책을 꼽기도 했다. 어떤 리스트는 겹치고, 어떤 리스트는 조금 다르거나 전혀 다르다 . 당연한 일이다. 어떤 책은 늘 좋고, 어떤 책은 특별히 좋은 때가 있으니까.

  변함없이 흥미로운 책도 있다. 내 경우엔 사람에 관해 쓴 책이 그렇다. 소설을 쓰면서 겨우 짐작하게 된 것 중 하나는 사람에 대해서거나 인생에 대해서는 내가 제대로 아는 게 거의 없다는 것이다. 소 설을 쓰는 일은 간단히 말하자면 사람에 대해 생각하는 일이고, 다른 사람의 사정을 짐작해보는 일이 고, 최선을 다해 궁리한 과정을 적는 일이다. 실제로 소설을 써본 사람은 그 과정이 대체로 실패로 끝난다는 것을 안다. 그러니 한 사람이 일생에 대해 기술한 책은 누군가를 온전히 이해한다는 불가능 의 세계에, 불확실의 세계에 어떻게 다가가려고 노력했는지를 지켜보는 일이라는 점에서 흥미롭다.

  레이먼드 카버, 『어느 작가의 생』(캐롤 스클레니카, 도서출판 강)은 한 사람의 일생을 기록하는 일 이 간단치 않다는 것을 (일단 책의 두께로) 보여준다. 옮긴이의 말을 포함하여 무려 941쪽에 달하는 이 책은 제목을 통해 짐작했겠지만, 당연히 레이먼드 카버에 관한 기록인데, 현재 우리나라에 출판되 어 있는 카버의 소설 전권의 두께와 맞먹(거나 더 두껍)는다. 실로 한 사람의 일생은 그가 쓴 책보다 길다는 평범한 사실을 일깨워주는 두께가 아닐 수 없다. 이 책에는 카버의 삶을 오랫동안 지배해온 알코올과의 고루한 사투, 카버 소설 특유의 미학적 스타일이 완성되기까지의 과정, 그의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제재소와 지역적 특성 같은 것들이 실제의 삶과 얼마나 맞닿아 있는지 하는 것들을 찾아볼 수 있다. 왜 아니겠는가. 바로 레이먼드 카버의 책인데.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작가의 삶과 소설의 대응점을 확인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이 세세하고도 기나긴 삶에 동참하다 보면 한 사람의 삶에 대 해서라면 자명한 태도를 버리는 것이 마땅하는 걸 깨달을 뿐이다. 본문에 숱하게 사용된 추측형의 어 미는 작가가 지나치게 겸손하거나 자료 조사가 부족해서 선택한 어미가 아니다. 이토록 방대한 기록 이 필요할까 싶은 회의는 그런 성실함만이 인간에 대해 이해하려는 최소한의 태도가 아닐까 하는 생 각으로 이내 바뀐다. 다시 말하지만, 게다가 이것은 일찌감치 다른 사람의 삶은 물론이거니와 제 삶 조차 제대로 알 수 없다고 생각한 카버의 책이다. 그가 「내가 전화를 거는 곳」이라는 작품의 제사 에 인용한 밀란 쿤데라의 말처럼, “우리는 무엇을 원하는지 결코 알 수가 없다. 왜냐하면 단 한 번 의 삶만 사는 이상, 우리는 우리의 삶을 이전의 삶들과 비교할 수도 없고 다가올 삶들 속에서 완성시 킬 수도 없기 때문이다.”

 『로맹가리』(도미니크 보나, 문학동네)라는 책은 여러 삶을 살아온 것처럼 보이는 이 작가의 삶이 결국에는 하나였음을 보여주는 책이다. 사실 로맹가리는 죽음에 대해서라면 작품을 통해 시종 더없는 경멸감을 표시했다. 『밤은 고요하리라』에서 그는 죽음이 “너무 과대평가됐”다고 말하기를 주저하 지 않았다. 또한, 『여인의 빛』이라는 작품에서 죽음에 대해 인상적인 장광설을 펼치는데, 거기에서 도 “스므르트(세르비아어로 죽음을 뜻하는 단어)는…… 어떻게 들으면 다리 사이로 빠져나가는 지저 분한 방귀 소리 같죠…… 전갈의 독보다 훨신 강한 독성을 지닌. 일반적으로 저는 사람들이 죽음에 지나친 경의를 표한다고 생각해요.”라고 말하면서 죽음이 취한 신비롭고 고상한 장막을 걷어버리려 했다. 그런 그가 자신의 죽음을 두고 “분명 신경쇠약 탓으로 돌릴 수도 있을 것이다”라고 항간에 섣불리 말해질 게 분명한 걸 알면서도 죽음을 택했다. 왜일까. 이 책은 로맹가리의 일생을 되짚어 그 이유를 짐작해보려는 시도에 다름없다. 그러나 기나긴 독서가 끝나면 역시 의심에 빠지고 삶은 간단 한 인과로 증명할 수 없다는 것을 그저 확인할 뿐이다.

  사람에 대해 쓴 글을 읽을 때의 핵심은 바로 이러한 점인지도 모른다. 한 사람의 일생에 대해 이토록 자세하고도 상세한 기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삶을 선택하는 방식에 관해서는 우리는 온전히 이해할 수 없고, 그저 몇 가지 사실로 유추할 뿐이고, 막연히 짐작할 수밖에 없다는 것 말이다. 두 책 외에도 이런 교훈을 주는 몇 권의 리스트가 떠오른다. 평생을 은둔자로 보낸 샐린저를 다룬 『 샐린저 평전』(케니스 슬라웬스키, 민음사), 시인 안도현 선생이 펴낸,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 고 높고 쓸쓸하니 살아가도록 태어”난 백석의 일생을 다룬 『백석평전』이 그것이다. 관점을 달리하 여 찰리 채플린이 직접 쓴 『나의 자서전』(찰리채플린, 김영사)이나 오프라 윈프리의 거짓말에 대한 탐구가 돋보이는 『내 인생 최고의 쇼』(키티 켈리, 김영사)도 추천하고 싶다. 이 책들에 대해서 이 러쿵저러쿵 더 얘기를 늘어놓고 싶지만, 지면이 다 된 걸 보니, 역시 사람이나 책에 대해서라면 언제 나 할 말이 많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저작권자 © 대학미디어센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