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영상학과 박사논문 소개

  이창동 영화의 주인공들은 단일한 정체성이나 의미로 수렴되지 않는다. 그들은 질서체계 안에 있으면 서도 종속을 거부하는 비결정적인 그 무엇이자 인과적 기호에 흡수되지 않는 의미의 빈자리이다. 이 것이 내가 이창동 영화에 접근하면서 ‘타자성’이라는 화두를 끌어들여야만 했던 이유다. 문제는 그 기묘한 캐릭터들이 단독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일련의 관계망을 통과하면서 그들의 타자 로서의 입지는 불편한 질문을 생산하며 입체화된다.

  그들은 주변사람이나 상황과 관계를 맺는다. 비결정적인 의미의 빈자리인 그들이 그 관계망에 친밀하 게 용해되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그것은 그들이 예외적 괴물이어서가 아니다. 그들은 평범한 미래를 꿈꾼다. 허나 스스로의 의지와 상관없이 타자성을 발휘한다는 이유만으로 오해받는다. 주변이 상정한 공적 규범에 캐릭터의 기묘함이 불온한 질문과 함께 균열을 일으키는 까닭이다. 그 결과 그들을 기다 리는 것은 비극적 최후이다. 이것이 내가 ‘윤리’의 문제를 끌어들여야만 했던 이유다. 이창동 영화 는 관계망에 녹아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평범한 희망조차 폭력적으로 폐기처분하는 서슬 시퍼런 낙차( 落差)의 풍경 혹은 전체주의적이면서도 반윤리적인 시스템에 대한 싸늘한 관찰기이다.

  하지만 이는 스크린 안 피사체들의 문제에 한정될 뿐이다. 나는 여기에 또 다른 관계를 상정해야만 했다. 이는 이창동이 만든 것이 시나 소설이 아닌 영화라는 아주 당연한 사실과 관련된다. 그것은 필 연적으로 타자와 카메라의 관계, 즉 카메라가 타자를 어떻게 포착하고 있는가의 문제를 야기한다. 타 자와 주변의 관계에서 파생되는 윤리의 문제는 타자와 카메라와의 관계에서 파생되는 윤리적 재현의 문제와 별개일 수 없다. 시스템의 폭력적 낙차를 고발하며 윤리적 세계관을 지향한다고 해서 이창동 영화 자체의 윤리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자칫 그것은 윤리적 대의를 위해서라면 타자를 구경거리 로 전락시켜도 된다는 위험한 발상일 수 있다.

  영화라는 매체 자체에 내장된 반윤리적 환원의 위험이 개입되면서 상황은 복잡해진다. 영화는 결국 프레임의 예술이다. 카메라 앞에 선 대상이 사각 틀로 재단된 채 대상화되거나 구경거리로 전락할 가 능성이 상존한다. 타자에 대한 시스템의 폭력성을 고발하는 윤리적 ‘세계관’을 위해 타자를 프레임 이라는 틀로 환원해버리는 반윤리적 ‘재현방식’을 동원하는 딜레마가 발생한다. 카메라에 포착되는 순간부터 일정부분 대상화될 수밖에 없는 타자를 다시금 비결정적이고 비대칭적인 질문의 대상으로 탈구축해야 하는 윤리적 재현의 의무가 부과된다. 그것은 스크린 밖 관객이 타자를 단순한 구경거리 로 소비하지 못하게끔 하기 위한 저항의 시선이자 관객을 향한 불편한 질문의 시선과도 연결될 것이 다.

  결국『이창동 영화의 타자성과 윤리적 재현방식 연구』는 이창동 영화에서 차이를 그리며 반복되는 타자성, 타자와 주변의 관계의 효과로서 구축되는 윤리적 질문들, 이 모든 것을 재현하는 영화적 윤 리적 재현방식을 세밀하게 추적하는 작업이다. 성공과 실패를 떠나 이창동 영화에는 타자를 둘러싼 윤리적 ‘내용’에 대한 카메라 시선의 ‘형식’적 고민이 없다면 타자에 대한 영화의 윤리 역시 온 당한 형태를 가질 수 없다는 치열한 작가의식으로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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