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mes L.W. I West III, The Perfect Hour: The Romance of F. Scott Fitzgerald and Ginevra King, His First Love, Random house, 2005.

 
 

   미국의 재즈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 스콧 피츠제럴드의 독자라면, 그리고 『위대한 개츠비』(1925)를 흥미롭게 읽은 독자라면 주인공 개츠비의 필생의 사랑인 데이지 뷰캐넌의 모델이 누구일까 궁금해 할 법하다. 첫 소설 『낙원의 이편』(1920)부터 피츠제럴드는 주로 자전적인 경험을 소재로 작품을 썼기 때문이다. 최근에 만들어진 바즈 루어만 영화 <위대한 개츠비>(2013)에서라면 데이지 역을 맡은 캐리 멀리건의 모델이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제임스 웨스트 3세의 『완벽한 시간』(2005)은 그 데이지의 모델이 피츠제럴드의 첫사랑이었던 지네브라 킹이며, 두 사람은 세간에 알려진 것보다 훨씬 깊은 사이였다는 사실을 두 사람이 주고받은 편지들에 근거해서 밝히고 있는 책이다.

  『낙원의 이편』에 등장하는 이자벨의 모델이기도 한 지네브라의 존재 자체는 피츠제럴드의 전기 작가들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생전의 인터뷰에서 지네브라는 피츠제럴드가 젊은 시절 자신을 둘러쌌던 많은 남자들 가운데 하나였을 뿐이라고 일축했다. 두 사람의 관계를 입증할 만한 증거도 없는 터여서 특별한 사이가 아니었다는 그녀의 말이 그대로 받아들여졌다. 피츠제럴드 역시 떠들썩한 연애상대였던 젤다 세이어와의 결혼을 위해 『낙원의 이편』 출판을 서둘렀기에 대개 그렇듯이 그의 첫사랑은 ‘지나간 사랑’으로 여겨졌다. 당시 판매는 『낙원의 이편』에 미치지 못했지만 피츠제럴드 자신은 대표작이라고 자부한 세 번째 소설 『위대한 개츠비』에서도 데이지의 모델은 젤다 세이어인 것으로 추정되었다.

   그런데 숨겨진 내막은 달랐다. 피츠제럴드가 젤다 세이어에 매혹된 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였는데, 젤다가 지네브라와 마찬가지로 부잣집 딸이라는 점과 지네브라와 외모가 닮았다는 점이 그것이다. 젤다의 모습 속의 지네브라를 사랑했다고 해야 할까. 거슬러 올라가면 피츠제럴드가 지네브라를 처음 만난 건 1915년 1월의 한 파티에서였다. 두 사람은 첫눈에 호감을 느끼며 사랑에 빠졌지만 아직 십대였던 두 사람은 자주 만날 수 없었고 주로 편지로 마음을 주고받았다. 사랑이 무르익기도 했지만 결국 2년 뒤인 1917년 1월에 두 사람은 관계를 정리하는데, 그들의 이별에는 빈부의 차가 가장 결정적이었다. 1916년 피츠제럴드는 지네브라의 아버지인 시카고의 갑부 사업가 찰스 킹이 한 말을 기록하고 있다. “가난한 남자는 부잣집 여자와의 결혼을 생각지도 말아야 한다.”

   서로 헤어지게 되자 지네브라는 피츠제럴드에게서 받은 편지를 모두 소각하고 자신이 보낸 편지도 소각해줄 것을 요구했다. 피츠제럴드는 그 요구에 따랐는데, 다만 자신이 타이핑한 사본을 따로 만들어둔 다음이었다. 1940년 피츠제럴드가 죽고 나서 이 사본을 보관하던 딸 스코티는 1950년에 이를 지네브라에게 되돌려주었다. 지네브라는 이 사본을 평생 옷장에 보관하다가 1980년에 세상을 떠났고, 그녀의 손녀가 2003년에야 할머니의 유품을 우연히 발견함으로써 다시 공개되기에 이르렀다. 비록 피츠제럴드의 편지는 남아있지 않지만 지네브라 킹의 편지를 통해서 그들의 관계가 재구성되기까지의 여정이다.

   이러한 사실이 『위대한 개츠비』를 읽는 데 어떤 도움이 될까. 최소한 작가 피츠제럴드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 작품인지는 해명할 수 있을 듯하다. 즉 상처 입은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한 시도로 읽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더구나 데이지의 남편 톰 뷰캐넌의 외모가 찰스 킹을 닮았다는 점도 피츠제럴드가 어떤 의도에서 이 소설을 구상했는지 짐작하게 해준다. 소설에서 데이지를 완벽하게 되찾으려는 개츠비의 시도는 실패로 돌아가지만, 작품 속 화자 닉 캐러웨이의 말대로 개츠비는 적어도 뷰캐넌 부부보다는 도덕적으로 더 우월하다. 소설가의 정산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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