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시대, 타자의 문학을 묻다 지난 11월 14일과 15일 양일간 본교 법학관 모의법정에서 동국대학교 문화학술원과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이 주최하는 학술대회가 개최되었다. 이번 학술대회는 ‘아래로부터의 글쓰기와 타자의 문학2―노동·자본의 문화적 전회, 또는 민주주의’라는 주제로 진행되었다. 동국대학교 문화학술원과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은 이미 ‘아래로부터의 글쓰기와 타자의 문학1’을 통해 ‘아래로부터의 글쓰기’, 보다 구체적으로는 1970~80년대 한국의 노동자들의 글쓰기와 노동문학에 주목하여 의미 있는 연구 성과들을 제출한 바 있다. ‘아래로부터의 글쓰기’는 고급/저급, 엘리트/대중과 같은 견고한 규범에 균열을 일으켰고, 사회·문화(학)에서 ‘타자’였던 존재들이 새로운 주체로 등장하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였다. 이번 학술대회는 이러한 시각의 연장선상에서 20세기 후반의 ‘노동자 글쓰기’, ‘민중문학’, ‘노동문학’ 등을 노동·자본의 문화적 전회로 바라보고자 했다.

   최근 한국 문학·문화 연구의 주된 관심사는 어느덧 해방기∼70년대를 넘어 80년대까지 다다랐다. 활발하게 축적되고 있는 해방기∼70년대의 연구는 문화적 현대성의 재구조화 양상에 집중하며 미국화(Americanization)나 냉전의 문화정치, 더 나아가 ‘박정희 레짐’에 대한 재조명아래 이루어졌다. 그렇다면 80년대 연구는 어떤 인식적 틀 아래서 이루어지고 있을까. 그것은 한계에 다다른 민주주의, 곤핍한 상황에 처한 노동에 대한 성찰과 맞닿아 있다. 첫째 날, 첫 발표를 맡은 천정환(성균관대)은 이런 견지 하에 80년대라는 시대와 문학론을 생각하는 관점에 대해 논했다. 천정환은 문학·문화의 ‘80년대 적인 것’, ‘90년대적인 것’에 대한 신화와 선입견을 벗고, 90년대의 문화정치를 ‘아래로부터’ 재평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천정환의 논의는 요컨대, 10년을 단위로 일종의 ‘문학론’이 각 시대의 전형처럼 설정되어 온 주류 문학사에 대한 재인식의 요청이다. 그리고 이는 동시에 주류의 ‘바깥’에서 새로운 방식으로 그들만의 ‘글쓰기’를 수행하던 새로운 주체들에 대한 재인식의 요청이기도 하다.

   여러 발표자들이 주로 다루었던 여공의 글쓰기, 도시 빈민의 밑바닥 삶에 대한 표현 욕구에 대한 논의들이 곧 여기에 해당한다. 이를테면, 김예림(연세대)은 당대에 주목받지 못했던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과 황석영의 『어둠의 자식들』에서 도시 빈민의 ‘생계윤리’와 ‘탁월성’이라는 문제를 다루었다. 김예림은 생계윤리가 도덕­윤리의 작동이라는 질적 전환의 사건으로 이어지는데 주목한다. 그리고 두 소설의 분석을 통해 도시빈민들이 자신들이 위치한 사회경제 환경에서 내화하고 운용했던 생계­도덕/윤리감각을 포착하여 이른바 빈민의 ‘찌그러진’ 탁월성을 밝혀낸다. 우리는 무엇보다 이러한 빈민의 탁월성이 학습과 교육, 집합적 교감, 역사정치적 전망의 획득을 통해 전진했던, 80년대의 일반적인 탁월성과는 분명 다르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번 학술대회가 더욱 의미 있었던 점은 ‘아래로부터 글쓰기’가 동아시아적인 맥락에서 조명되었다는 데 있다. 이혜령(성균관대)이 신경숙의 『외딴방』을 통해 70∼80년대 한국 여공의 몸과 섹슈얼리티에 주목하고, ‘여공’이라는 화자에 의해 작품 내에 구축되고 있는 80년대의 문학 담론을 밝혀내고자 했다면, 나카야 이즈미(奈良敎育大學)는 1950년대 전후 일본 사회에서의 ‘글짓기’가 ‘아래로부터의 문화적 성장’을 이룩해냈지만 그 배면에서 동시에 무력한 ‘국민’의 표상을 형성하는데 기여한 현상에 주목했다. 또한 박자영(협성대)은 둘째 날 발표에서 중국의 차오정루가 2004년 발표한 소설인 「그곳」을 제시하고, 이 소설이 중국의 노동자와 지식인들에게 공동체에 대한 상상을 환기한다고 주장했다.

   1950년대 일본과 21세기에 강대국으로 떠오른 중국, 그리고 70∼90년대의 한국에서 각기 다른 언어로 행해진 ‘아래로부터의 글쓰기’의 간극이 그리 커 보이지 않는 것은 왜일까. 그것은 아마 ‘아래로부터의 글쓰기’가 전 지구적 현실인자본주의 사회에서 민주주의, 그리고 공동체에 대해 성찰하게 하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은 분명 문학이 끝났다고 말해지는 시대이다. 하지만 ‘지금, 여기’에서 문학은 아직 못 다한 사명을 위해 살아 숨 쉬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시장경제와 구조조정의 시대에 억압되고 잊혀진 존재들에 대하여, 그리고 잃어버린 기억―공동체―을 위하여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야 하는 숭고한 사명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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