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팔레스타인 여성들이 라말라와 예루살렘 사이에 위치한 콸란디아 검문소를 지나고 있다. 분리장벽을 채운 팔레스타인의 자유를 갈망하는 그림이 인상 깊다. (출처 : electronicintifada.net)  

  8월 26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간의 무기한 휴전협상이 성사되면서 50일 동안 계속된 이른바 ‘전쟁’이 끝났다. 2143명의 희생자, 1만1천명 이상의 부상자, 10만 명의 피난민, 1만7천 채의 파괴된 가옥들을 남긴 채 말이다. 유엔에 따르면 희생자들 중 70% 이상이 민간인들이다. 레바논 일간 <알아크바르>는 사망자 명단에 생후 24일 된 아기부터 99살의 노인까지 포함됐다고 전했다.

  휴전 이후에도 이스라엘의 공격은 사실 끝나지 않았다. 휴전 협상 직후인 지난 9월초에도 이스라엘은 서안 라말라 인근에 있는 팔레스타인 난민촌에 진입해 하마스 체포 작전을 벌이다 팔레스타인 시위대의 20대 청년 한 명을 죽였다. 같은 시기에 이틀 동안 불법정착촌을 더 만들려고 서안지구 땅 1천 에이커를 이스라엘 영토에 불법으로 합병했다. 또한 팔레스타인자치정부로 보낼 세금 5500만 달러를 압류했다. 팔레스타인 어부들에게 발포했고 서안지구 헤브론의 유제품 공장을 파괴했다. 서안지구 제닌과 나블루스에서 수십 명을 납치하기도 했다.

  이스라엘은 여기서 멈추지 않을 것이다. 중동의 제국주의 낙하산 국가로서 자신의 운명을 개척한 이스라엘은 ‘중동의 항공모함’이라는 자기 정체성 역시 포기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1947년 팔레스타인에 거주하는 유대인 인구가 아랍인구의 절반에 불과했음에도 절반의 땅을 유대인들에게 주겠다는 유엔 분할안에 조차 만족하지 않았던 이스라엘이다. 1948년 이스라엘이 건국을 선포하기 직전 254명의 팔레스타인인들을 벽에 세워 총살시키고 우물에 빠뜨려 공포에 질린 팔레스타인인들이 고향을 떠나게 한 나크바(재앙이라는 뜻의 아랍어)로 팔레스타인 영토를 차지한 이스라엘이다. 미국이 준 첨단무기로 무장하고 주변 아랍국가들의 기세를 꺾기 위해 네 차례의 중동 전쟁을 벌인 이스라엘이다. 1982년 레바논의 팔레스타인 난민촌을 공격해서 한 달 만에 2만 명을 죽인 바로 그 이스라엘은 다시 폭격 기회를 찾으려 할 것이다. 제국주의를 돕는 식민국가를 세우기 위해 자기 동포의 생명마저 저버린 시온주의 역사를 떠올리면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인들을 영토에서 추방하기 위해 동원할 수 있는 어떤 고사 작전도 불사할 것이다(시온주의자들은 1944년에 나치와 헝가리의 유태인 문제 해결을 위한 비밀 협약을 맺었다. 이 협약으로 80만 유태인의 운명이 결정됐다. 비밀협약의 내용은 600명의 저명한 유태인을 살려주는 대가로 헝가리 유태인들의 운명에 대해서 침묵을 지킨다는 것이었다!).

 
 
  △ 팔레스타인 영토 손실 현황 (출처 : 미국 팔레스타인 인권 연맹)  

  애초에 이번 공격에는 그 어느 때보다도 자신감에 차 있던 이스라엘의 계산이 작용했다. 이제까지 팔레스타인 가자 공격이 벌어질 때마다 이집트 라파 국경선 근처에서 이스라엘을 규탄하고 팔레스타인 연대를 조직해 왔던 이집트 야당과 사회주의정당 활동가들이 있었지만 최근 모두 수감되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아랍혁명이 교착상태에 있는 이때야말로 가자를 고사시킬 좋은 기회라 여겼을 것이다. 이스라엘이 벤처군사기업들의 성장을 중심으로 경제를 이끌어가면서부터 팔레스타인인들의 노동력에 대한 의존도도 점차 줄어들었다. 이런 상황도 이스라엘이 ‘고립시켜 말려 죽이다가 폭격으로 인구 자체를 줄이는’ 방식으로 공격패턴을 바꾼 배경이 되었다.

  이런 ‘기회’를 활용하고자 한 이스라엘은 이번 가자 ‘피바람’으로 자신이 승리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8월 26일 무기한 휴전 협상이 타결된 직후 하마스 파우지 바르훔 대변인이 “이스라엘은 우리를 꺾지 못했다”고 연설했을 때 수많은 팔레스타인인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부둥켜안는 장면은 이스라엘의 주장과 극적으로 대비된다.

  오히려 가자 피바람 50일은 ‘이스라엘에게 국제사회에서의 한층 더한 고립’을 가져다주었다. 일부 남미 국가들은 이스라엘 대사를 추방하고 단교를 선언하기도 했다. 그 때문인지 스페인 정부는 이스라엘과의 무기거래를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런던에서 열린 15만 명의 이스라엘 규탄집회를 포함해 유럽과 미국 곳곳에서 즉각적인 팔레스타인 연대 집회가 신속하게 조직됐다.

  제국주의자들이 만든 낙하산 국가 이스라엘 자체 내에서의 파장도 결코 작지 않았다.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은 이스라엘 내의 병역거부 운동에도 힘을 실어주었다. 가자 학살 이후 이스라엘군 정보부 소속으로 근무했던 예비군 43명이 팔레스타인인을 학대하는 군 복무를 앞으로 거부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정보부 소속 최정예 부대 ‘유닛 8200’ 출신인 이들은 12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군 수뇌부에 공개편지를 보내 팔레스타인인들에 대한 정치적 박해에 동참할 수 없음을 명백히 밝혔다.

  한국에서도 5차 이스라엘 규탄 집회가 벌어졌고 주한 아랍커뮤니티들의 독자집회와 행진도 있었다. 최근 몇 년 동안 급성장한 BDS 운동은 이스라엘에 대한 참여거부(Boycott), 투자중단(Divestment), 경제제재(Sanctions)를 뜻하는데 이 운동이 한국에도 상륙했다. 주한이스라엘대사관이 주요 후원자로 참여하는 제11회 EBS국제다큐영화제(EDIF)에 대해 김조광수 감독 등 영화인 129명이 8월 11일 참여거부를 선언한 것은 아주 소중한 희망의 증거다. 한국의 40여 개 단체들은 박근혜 정부가 이스라엘과의 군사협력을 즉각 중단해야 한다는 국제적인 성명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특히 박근혜 정부가 이스라엘과의 군사협력을 갈수록 중요하게 여기는 시점에서 팔레스타인 연대 및 이스라엘 규탄 목소리는 국내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잘 알려진 바대로 창조경제의 모델로 이스라엘이 거론돼 왔다. 해마다 미국이 지원하는 30억 달러의 군비로 이스라엘은 각종 군사 벤처 기업에서 중요한 군사적 기술을 개발한다. 미국은 이 기술 혜택을 십분 누리면서 30억 달러의 가치를 확인한다. 이스라엘이 중동 전체의 평균 소득보다 10배나 많은 국민소득을 기록하는 주된 이유는 IT 기술제조 국가로서 누린 혜택 덕분이다.

  포브스 100대 기업 중 85곳이 사용하는 통화감시 장치 기술을 제공하는 회사, 나이스시스템은 이스라엘의 대표적인 군사벤처 기업이다. 이스라엘은 “인텔의 생명선”으로도 불린다. 각종 소프트웨어와 시뮬레이션 프로그램들이 이스라엘에서 제작돼 전 세계에 팔린다. 그리고 그 기술은 군사무기 작동에 적용된다. 농업 키부츠에서 청정환경기술을 개발하는 네타핌이라는 회사도 주요 화학무기 회사다. 이와 같은 군사무기에 적용되는 IT 기술을 개발하는 엔지니어들은 이스라엘에서 수재들만 들어간다는 ‘탈피온’이라는 엘리트 양성 교육기관 출신자들이다. 성경 아가서에 나오는 ‘성의 탑’을 칭하는 탈피온은 대학과 군대로부터 밀도있는 기술 훈련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상위1%의 고등학생을 매년 2000명 선발해서 지원을 권유하고 성격과 성적을 검사한다.

  이와 같은 병영국가의 군사벤처 생태계가 “창조경제의 모범”으로 칭송되고 있다. 그래서 가자지구의 피바람 속에서도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7월22일 이스라엘 경제부와 무인항공기 분야 기술협력을 위한 의향서를 체결했다고 밝힌 것이다. 그 무인항공기들이 가자지구와 서안지구 폭격을 위한 사전 탐지에 쓰일 것임이 분명한데도 말이다.

  이스라엘에 대한 미국의 지원과 이스라엘의 군사벤처 기업에 대한 투자 증대, 그리고 미국의 동맹 국가들 사이의 군사협력 교류는 21세기 군사주의 흐름의 본류 중 하나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 분석가들은 현재의 무기경제가 국가들이 대기업을 무기경제 기술에 투자하도록 지원 및 강제하는 구조를 지니고 있으며, 미국과 공유하고 있는 국제적인 시스템이 이를 정착시키고 있다고 밝혔다. 이 연구소는 그 핵심에 있는 세 국가로 이스라엘, 남한, 터키를 들고 있다. 따라서 한국과 이스라엘 간의 군사협력을 감시하고 거부하는 목소리는 필요할 수밖에 없다.

  팔레스타인은 푸른 지중해를 끼고 있는 감옥이다. 출근을 위해 검문소들을 통과하려면 전날 밤 11시에 집을 나서야하는 팔레스타인 노동자들에게 8미터 높이의 분리장벽으로 둘러싸인 이 땅은 감옥과 다를 바 없다. 그러나 진정한 감옥은 국제사회에서 점점 고립되어 가고 있는 병영국가 이스라엘이다. 정녕 우리는 이 이스라엘을 창조경제의 모범으로, 좇아야하는 롤모델로 삼아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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