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에게 예뻐 보이는 (After G. W)>의 한 장면.   오마르 파스트, 2008년 작.
 
  이스라엘 출신 현대미술가 오마르 파스트(Omer Fast)의 2008년 영상작품 제목은 <신에게 예뻐 보이는 (G. W를 따라서) Looking Pretty for God (After G. W)>이다. 이 제목을 신이 인간의 아름다운 외모나 겉으로 드러나는 세속적인 매력을 좋아한다는 뜻으로 해석하는 이는, 아마도, 별로 없을 것이다. 대신 신앙심 깊은 누군가는 종교에 무조건적으로 귀의하는 삶의 가치를 떠올릴 것이고, 박애 정신이 강한 누군가는 헐벗고 굶주린 이들을 위해 헌신하는 삶의 아름다움을 새길지도 모른다. ‘신에게 예뻐 보이는’ 일은 그처럼 믿음 충만한 마음과 자기희생적인 행위에 다름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는 사실 특정 종교인이나 인도주의적 자원봉사자만의 생각이 아닌, 우리 대부분의 상식적 사고이기도 하다. 즉 신이 어여삐 여기는 인간의 모습은 신실함, 정직함, 이타적 사랑, 헌신, 박애, 조건 없는 기여 등등 외관을 넘어선 정신의 실천을 가리킨다고 말이다.

  그런데 파스트의 <신에게 예뻐 보이는>은 우리의 그 같은 통념을 노골적으로 배반한다. 작품에서 ‘신에게 예뻐 보인다 함’은 어린이 모델들을 데리고 패션 화보를 찍는 카메라맨의 기술이거나, 시신을 화장(化粧)하는 데서부터 입관하는 데까지 모두 관리하는 장례전문가의 공정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신이 있다면, 말 그대로 그 신의 눈에 예쁘게 비칠만한 가시적이고 가장된 외관, 그것이 작가 오마르 파스트가 비틀린 의미로 제시한 지금 여기 세속의 인간이 신성에 가까이 가고, 사랑 받을 수 있는 모습이 아닌가 하고 해석하게 된다.

  하지만 이런 해석을 하면서 미술비평가로서는 만족스러울지 몰라도, 한 명의 자연인 혹은 신의 피조물로서는 슬퍼진다. 가늠할 수 없을 만큼 냉혹해진 현실세계, 이를테면 글로벌자본주의 체제 속에서 1%를 제외한 전 세계 대다수가 꼼짝없이 승자독식트랙의 패배자가 될 수밖에 없고, 소비지상의 휘황찬란한 생태계에서 언제든 “인간쓰레기” 또는 “사회적 홈리스”(지그문트 바우만)로 추락할 수 있다는 불안이 우리 모두를 관통하는데 어린이든 죽은 자든, 그 누구든 거기서 벗어날 수 없다는 슬픔이 배어드는 것이다.

  신이 있다면, 그리고 그 신이 조물주로서 우리를 만들었다면, 어쨌든지 간에 이 끔찍한 악몽의 세상에서 우리를 어여삐 여겨 구원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억울하고 분한 생각에 더 슬퍼지는 것이다.

  하루에도 여러 건씩 들려오는 비극적인 뉴스들, 생활고를 비관한 세 모녀가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을 남기고 동반 자살했다는 소식, 수 년에 걸쳐 집단 따돌림을 당한 소녀가 모두를 용서하겠다는 유서를 써놓고 삶을 포기했다는 소식, 성폭행 범죄자의 손에 딸을 잃은 아버지가 심적 고통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이 미디어를 통해 끊이지 않고 들려온다. 뭔가 잘못되었다,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어디서부터 어떻게 바로잡아야 하는가를 생각할 겨를도 없이 정말로 고통스럽고, 정말로 무서운 일들이 우리 공동체 내부에서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그런데 더 고통스럽고, 더 무서운 일은 그 같은 비극적 죽음들에 이 사회가 무감각해졌고, 심지어 여하한 경우가 아니면 애도는커녕 손톱만큼의 관심조차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나아가 그렇게 돌이킬 수 없는 문제적 상황이 일어나는 빈도나 강도에 비례해서, 럭셔리 상품들의 유혹적인 환상과 연예오락 비즈니스의 마취적 스펙터클이 ‘어마무시한’ 힘으로 치솟고 있다는 사실이다.

  앞서 세 모녀의 자살 소식은 판타지드라마의 여주인공이 입은 수백만원짜리 옷을 나도 사 입고 싶다는 욕망 앞에서 그저 찌질해 보일 뿐이다. 앞서 성폭행 당한 아이 아버지의 죽음은 TV 토크쇼에 나와 재기를 노리는 한물간 스타의 과거 고백보다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지 않는다. 이런 예를 들다보면, <신에게 예뻐 보이는>에서 패션업계의 화보 촬영이나 장례사업 현장이 왜 작품의 모티프로 채택됐는지 충분히 이해하게 된다.

  즉 그 이질적이고 서로 충돌하는 상황을 이미지로 횡단하며, 마치 그것이 신의 사랑을 얻는 우리시대의 효과적인 행동인 것처럼 묘사함으로써, 작가는 지금 우리가 처한 삶과 죽음의 혹독하고, 잔인하며, 참을 수 없을 만큼 뻔뻔한 생태를 느껴보게 한 것이다. ‘죽음’을 주제화했지만, 하드보일드 한 장면 하나 없이 매끈한 이 영상작품이 “OECD 국가 자살률 1위”의 현실이 단지 뉴스 제목으로만 체감되는 이곳과 매우 닮아 보이는 이유는 거기서 비롯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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