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그너 탄생 200주년

 
 
△ 바그너의 캐리커처.                              『레클립스』(L` clipes)라는 19세기 프랑신문(1969년 4년 18일자)의 표지.
   
 
  야만스런 유대인 학살이 자행된 아우슈비츠의 어느 가스실. 이곳에서 독일의 한 작곡가의 음악이 울려 퍼진다. 히틀러의 정신적 아버지이기도 했던 그의 음악은 반유대주의의 공포를 상징하는 것으로서, 지금도 이스라엘에서는 일종의 불문율처럼 공개적인 연주가 금지되고 있다. 사실상 비공식적인 ‘금지곡’인 것이다. 이 작곡가를 둘러싼 논쟁의 소용돌이는 정치적으로나 음악적으로나 현재 진행형이라 해도 좋겠다. 더군다나 올해는 한 시대를 풍미하다 못해 여전히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이 작곡가의 탄생 200주년이기도 하다. 우리는 지금 열 편 가량의 오페라인지 ‘음악극’인지를 써서 여러모로 유럽을 들끓게 했던 바로 그 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Richard Wagner, 1813-1883)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 무지막지한 작곡가의 이름은 처음 들어봤을지라도, 장담컨대 그의 음악을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오늘날 결혼식장에서 순백의 드레스를 입고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기는 신부는 태반이 그의 음악에 맞춰 입장하니까 말이다. 영화나 광고의 배경음악으로도 이미 그의 음악을 익히 들어 알고 있는 사람이 허다할 것이다. 바그너의 음악은 그냥 배경음악으로 사용된 것이 아니라 기막히게 절묘한 방식으로 의미를 전달한다. 가령 베트남 전쟁의 광기와 공포를 다룬 영화 <지옥의 묵시록>(1979,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에서는 섬뜩한 분위기를 연출하며, 미국의 성인 잡지 『허슬러』의 발행인 래리 플린트가 벌인 법정 투쟁을 그린 영화 <래리 플린트>(1996, 밀로스 포만 감독)에서도 인상 깊게 울려 퍼진다.
 
 
   △ 바그너의 재정 후원자 바이에른의  루트비히 Ⅱ세. 바이로이트 축제극장 준공도 그의 후원에 크게 힙입었다.
 
  독일 남부 바이에른 주 뮌헨 북쪽의 소도시 바이로이트에서는 지금도 해마다 여름이면 바그너 음악축제가 열린다. 일 년에 딱 한 달가량 단 한 명의 작곡가의 작품을 올리기 위해 세운 공연장이 세상에 또 어디 있겠는가. 이 역시 독일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1876년 바이로이트 축제가 처음 개막된 후 7년이 지나고 바그너는 베네치아에서 요양하던 중 사망하지만, 미망인 코지마(Cosima Wagner, 1837-1930)가 고인의 음악 이념을 확고히 해나가는 가운데 그 명성을 국제적으로 쌓아갔다. 코지마 이후로도 바그너 집안은 현재 4대째 바이로이트 독점 운영권을 행사하고 있다.  이 축제극장은 역사상 가장 야심찬 예술가 바그너가 택한 분야인 오페라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최적화된 공간으로 설계된 것이다. 오페라라고 하면 뭔가 복잡하고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쉽게 말해서 ‘음악으로 이야기하기’ 또는 ‘노래로 하는 드라마’라고 생각하면 된다. 기존의 성악 중심의 오페라를 비판한 바그너는 음악, 문학, 연극, 무대장치, 의상, 조명, 특수효과 등 다양한 예술이 혼연일체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오페라에 대한 개념을 완전히 탈바꿈시켰고, 서양의 전통 조성음악 체계를 온통 뒤흔들어놓았다. 오페라의 내용과 방법은 물론, 오페라 극장의 구조, 심지어 관객의 취향까지 송두리째 바꾸고자 했으니 가히 혁명적인 예술가라 칭해도 무방할 것이다.
 
 
  △ 오늘날의 바이로이트 축제극장.
 
  스스로 ‘셰익스피어+베토벤=나’임을 참칭한 바그너, 그는 셰익스피어가 전례 없는 수준으로 발전시킨 시극(詩劇)과 베토벤이 깊이 있게 천착한 교향곡을 하나로 합친 일종의 ‘교향악적 오페라’를 만들고자 했다. 그는 기존 오페라와 구별해 ‘음악극’(Musikdrama)이라는 새로운 독일식 명칭을 붙였으며, 자신의 이상을 ‘종합예술작품’(Gesamtkunstwerk)이라고 천명했다.  시각적으로 장대한 스펙터클이 특징인 바그너의 ‘종합예술작품’에서는 음악적으로도 여러 새로운 실험이 눈에 띈다. 제일 먼저 ‘유도동기’라 번역하는 라이트모티프(Leitmotiv). 이것은 어떤 상황과 사물, 또는 등장인물이나 어떤 개념의 요소를 음악과 결부시킨 음악적·극적 고안물이다. 수많은 라이트모티브를 반복적으로 사용함으로써 무대 위에서 보일 수 없고 대사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음악이 의미론적으로 풍부하게 나타낼 수 있게 된다. 좀 옛날 영화지만 스필버그 감독을 일약 스타로 만든 공포 영화 <죠스>(1975)를 예로 들어 설명하면 이렇다. 이 영화에서 우리는 죠스가 얼마나 무섭게 생겼는지 전혀 모른다. 단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욱 긴박한 서스펜스가 느껴지는데, 그런 효과의 일등공신은 바로 죠스가 나타날 때마다 ‘따~단, 따~단, 따단따단따단따단’하고 들리는 음악적 주제다. 바그너의 라이트모티브는 영화 <스타워즈>를 위시해 요즘 영화나 TV 드라마의 오리지널 사운드트랙에서 되살아난다. 누구누구의 주제, 무엇의 테마 등은 모두 바그너가 처음 고안해 사용한 라이트모티브의 후손이다.  바그너의 음악을 신랄하게 논평하자면, 앙드레 질(Andre Gill, 1840-1885)이라는 프랑스의 풍자만화가가 그린 캐리커처를 떠올리면 될 것이다. 귀에 피가 나도록 사정없이 두들겨대는 바그너 음악의 사운드와 줄기차게 반복되는 라이트모티브의 효과가 상당히 그럴듯하게 표현되어 있다. 바로 여기서 우리는 바그너 음악이 ‘장래의 빛나는 광고의 원형’으로 돌변하는 것을 목격한다. 특정 유행가를 히트시키기 위해 그것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대중음악의 플러깅(plugging) 메커니즘은 요란한 소리를 내며 귀에 따갑도록 무한히 반복하는 바그너의 음악과 닮아 있다. 게다가 바그너는 계산된 ‘효과’를 통해 청중을 작품 속으로 편입시킴으로써 작곡가와 청중의 증대된 소외를 은폐한다고 볼 수 있다. 바그너가 청중으로 하여금 복종하도록 주입시키는 방식은 ‘오직 효과’에만 매달리는 이른바 ‘문화산업’이 소비자를 다루는 방식과 구조적으로 동일한 면이 있다는 말이다.  물론 바그너와 같은 아주 복잡한 ‘현상’에 대해 비이성적으로 비난하거나 싸잡아 매도하는 것은 무차별적인 성격을 띠며 좀처럼 받아들일 수 없는 행위다. 성숙한 사람이라면 두 가지 모순되는 사실을 함께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가령 바그너는 위대한 예술가이지만 또 다른 한편 구역질나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불행히도 우리는 둘 중 한 가지 사실만을 받아들일 수가 없다. 이는 예술가들이 그들의 비도덕성이나 사악한 짓에 대해 도덕적 판단을 받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예술가의 작업은 그러한 근거에 의해서만 판단되고 평가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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