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프로젝트> 상영 중단

  <천안함 프로젝트>(이하 ‘<천안함>’)은 다큐멘터리 영화다. 큰 틀에서 다큐멘터리란 “나 혹은 우리는, 당신에게, 그들 혹은 그것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얼개를 취한다. 이러할 때 <천안함>은 ‘천안함 사건’과 관련된 국가의 입장을 온당히 수용할 수 없는 ‘나 혹은 우리가’, 국가의 발표를 이미 상식으로 수용한 ‘당신’에게, ‘그것’이 간단히 넘겨서는 안 될 작위의 결과임을, 이야기하는 영화이다.   미리 말하건대 나는 <천안함>이 잘 만든 영화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천안함 사건’에 의문을 제기하는 제스처 자체가 문제일 리 없다. 나의 불만은 국가담론에 문제를 제기하는 영화의 ‘의지’에 비할 때 자못 허탈하기까지 한 영화적 ‘실천’에 대한 것이다. <천안함>이 <그것이 알고 싶다> 같은 공중파 시사다큐 수준이라는 세간의 폄훼가 오히려 과대평가처럼 보인다랄까? 자막, 사회자의 권위적 말투, 시종일관 지속되는 전지적 성격의 보이스 오버 해설, 내용에 부차적으로 뒤따르는 예증으로서의 이미지……. 물론 <천안함>이 취하는 ‘설명적 양식’이 문제인 것은 아니다. 사회적 의제를 심층적으로 전달하는 차원에서 그 양식만큼 효과적인 것도 없기 때문이다.    ‘천안함 사건’의 조사위원 중 한 명과 ‘알파잠수기술공사’ 대표의 인터뷰를 제외하면 영화에서 우리가 주목할 만한 논거는 없다. 더구나 고작 두 개뿐인 인터뷰가 설파하는 ‘감춰진 진실’이라는 것도 ‘천안함 사건’ 직후 숱하게 제기된 이른바 ‘좌초설’의 범위를 넘어서지 못한다. 객관성을 담보하는 차원에서 일테면 해외 학자의 의견을 구하는 식의 접근도 없을뿐더러, 최소한의 공정성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국방부의 ‘현재’ 입장도 전혀 궁금해 하지 않는다. 나는 지금 다큐멘터리 형식의 고유한 미학이 생략된 상태에서 영화라는 매체가 그저 특정 입장을 주장하기 위한 어설픈 도구로 추락한 상황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그다지 새로울 것도 다채로울 것도 없는 <천안함>의 상투적이고도 게으른 논증과정인 것이다. 비유컨대 <천안함>은 그저그런 진부한 논설문일 뿐이다.   상황이 이러할 때 ‘더 이상 유족을 슬프게 만들지 말라!’며 국가의 입장을 지지하는 사람들을 설득하는 문제는 오히려 부차적인 것이 되어버린다. 영화의 문제제기에 동의하며 기꺼이 1시간 15분을 내어줄 준비가 된 사람들이 최소한 아쉬움을 토로하지 않을 수준의 만듦새는 갖춰야 할 것 아닌가? 보수정권 아래에서 금기시된 질문을 던진다는 비장한 ‘대의’를 제외하면 <천안함>에서 남는 것은 무엇인가?   그런데 당황스러운 것은 지금 현재 한국영화계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것이 바로 <천안함>이라는 사실이다. 이 영화가 관객을 처음 찾은 것은 ‘전주국제영화제’에서였다. 하지만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것은 영화제에 참석한 관객의 반응 때문이 아니라 영화를 보지도 않고 법원에 상영금지가처분 신청을 제기한 국방부의 과민반응 때문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아니 당연하게도 법원은 표현의 자유가 우선이기 때문에 국방부의 신청을 기각했다. 그리고 드디어 <천안함>이 개봉된 것이다. 여기서부터 진짜 사건이 발생한다.   당초 <천안함>은 메가박스 22개관에서 상영될 예정이었다. 극장 측에서는 ‘합의 하’에 상영취소를 결정했다고 주장하고, 제작자 측에서는 ‘일방적 통보’로 상영취소를 당했다고 주장하는 상황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게 아니다. 메가박스가 상영취소를 결정하게 된 계기가 “보수단체의 상영중단 위협으로 관객들의 안전이 우려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 핵심이다. 여기서 지극히 합당한 다음의 질문이 떠오른다. 보수단체의 위협으로 관객 안전이 우려된다면 경찰서에 전화해 공권력을 요구해야지 주말을 앞두고 영화를 내려버리면 어쩌자는 것인가? 불법이 합법을 아무렇지도 않게 이겨버리는 상황을 납득할 수 있는가? 때문에 “법을 초월해서 영화 상영을 막을 수 있다는 선례를 남기면 사회적 문제로 비화될 것”이라거나 “영화를 만들 때 자기검열의 압박을 받는다면 문화콘텐츠 발전을 가로막는 일”이라며 메가박스의 처사를 비난하는 영화인들의 호소는 정당하다.   하지만 상황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황당한 이유로 철회하긴 했으나 그럼에도 메가박스만큼은 <천안함>을 상영할 ‘계획’이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다시 말해 CGV와 롯데시네마는 아예 상영 계획조차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이번 사태에 대한 분노는 오직 메가박스만을 향한다. 나는 지금 메가박스를 옹호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유념해야 할 것은 황당한 일을 저지른 메가박스를 오히려 억울하게 만들어버리는 말도 안 되는 촌극이 지금 현재 한국영화산업계가 처한 씁쓸한 단면이라는 사실이다.    영화 외부의 과도한 웅성거림은 <천안함>이 관객들과 온당히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한다. 반복하건대 나는 <천안함>을 못 만든 영화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문화적 판단일 뿐이다. 걱정스러운 것은 영화를 더 이상 영화로 보지 않는 태도이다. 그리고 그 극단에 문화적 취향을 절멸의 대상으로 재단하는 ‘문화 테러리스트’들이 있다. 그러는 사이 문화에 대한 문화적 판단, 즉, 영화에 대한 영화적 판단은 마비된다. 잘 만든 영화와 못 만든 영화는, 있다. 그러나 존재해야 될 영화와 존재해서는 안 될 영화는, 없다. 언제까지 이 소모적이면서도 촌스러운 논쟁을 반복해야 하는가? 추정컨대 국방부와 보수단체의 과잉 대응이 없었다면 <천안함>은 그냥 조용히 극장가를 지나쳤을 확률이 높다. 이런 걸 두고 긁어 부스럼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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