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영근다.   30년 만에, 또는 40년 만에 찾아왔다던, 그래서 최악의 전력난이 예상된다던 2013년의 더위도 계절 앞에 무릎을 꿇고 벌써 저만치 물러났다. 바닷가와 계곡을 발 디딜 틈조차 없이 빼곡 채웠던 그 많은 사람들도 덩달아 물러나 일상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진정한 휴가는 지금부터다. 더위를 피해 나간 여름철 휴가는 휴가라기보다는 피서라고 하는 편이 낫다. 온가족이 함께 조용한 휴가를 지내기 적합한 계절을 꼽으라면 누구나 가을을 첫손에 꼽을 듯하다. 청명한 가을 산과 하늘을 만끽하며 가족 단위의 휴가를 즐기기에는 요즘 유행하는 캠핑이 단연 제격이다.불과 몇 년 전부터 불붙기 시작한 캠핑은 이미 젊은이로부터 중년에 이르기까지 가장 선호하는 아웃도어 활동으로 자리를 잡았다. 전국의 캠핑장 수는 어느덧 700개를 넘어섰고, 어지간한 인터넷 캠핑 카페들은 1만 명 이상의 회원을 자랑한다.   국민소득 2만 달러를 넘어서면서 급격히 늘어난 캠핑 인구와 더불어 캠핑 장비 수준 역시 급속도로 높아졌다. 은박 매트리스는 널찍하고 두툼한 발포 매트리스로 바뀌었고, 집에서 쓰는 것보다 더 멋진(?) 테이블과 의자까지 갖추게 되었다. 블루스타 버너도 폼 나는 투 버너로 진화했다.   장비의 수준이 높아지면서 가격도 덩달아 솟구쳤다. 수입 텐트 하나에 200만 원이 넘어가고, 매력적인(Glamorous) 캠핑(Camping)의 합성어인 ‘글램핑’이 새로이 인기를 끌고 있다. 방송에서 보여지는 캠핑은 늘 화려한 텐트에 타프와 테이블, 의자 등을 고루 갖춰 놓고 화로에 고기를 굽는 모습이 연출되곤 한다. 그러다 보니 요새는 웬만큼 장비를 갖추지 않고서는 캠핑하러 가기 창피하다는 말을 자주 듣게 된다. 아닌 게 아니라 요즘 캠핑장은 마치 장비 전시장이 되어 버린 듯하다.  필자는 일본에 1년간 객원연구원 자격으로 가 있던 1997년 여름, 약 한 달간 홋카이도 여행을 한 적이 있다. 아내와 당시 각각 7살, 4살이던 딸, 아들까지 넷이 자동차를 타고 홋카이도를 한 바퀴 돌았다. 차 안에는 달랑 9,900엔짜리 텐트 하나와 취사도구만이 들어 있었다. 당시 환율로 100엔이 700ㄱ원 정도 했으니 7만원 정도 가는 텐트였다. 한 달간 홋카이도를 일주하면서 매일매일 캠핑장을 찾아다니며 텐트를 쳤다. 허름한 텐트 하나에 담긴 추억들은 지금까지 그 어떤 기억들보다 소중하고도 또렷하게 떠오른다. 이제 벌써 대학 졸업을 앞둔 딸아이 또한 그때의 기억이 생생하다며 가끔씩 먼저 이야기를 꺼내곤 한다.  캠핑은 무엇보다 마음이 중요하다. 장비는 캠핑을 도와주는 도구일 뿐이다. 모든 취미가 그렇듯, 좋아하다 보면 관련 장비에 관심이 가는 것은 당연하다. 또한 그런 사람이 많아야만 캠핑 산업이 발전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게 다는 아니다. 장비가 취미인 사람은 장비에 공을 들이면 되고, 그 돈으로 차라리 한 곳이라도 더 가족들과 돌아다니며 더 맛있는 걸 먹는 게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렇게 하면 그만이다. 남의 캠핑 장비를 가지고 수준이 어쩌고저쩌고 탓하는 사람은 캠핑을 할 자격조차 없다. 하지만 그런 말을 듣는 것이 싫거나 두려워 캠핑 자체를 기피한다면 그 또한 문제다. 세팅하는 데 시간이 많이 들어가는 큰 텐트와 부대 장비보다는 작은 텐트 하나가 오히려 가족과 오붓한 캠핑을 즐기기에 더 좋은 조건이 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캠핑의 핵심은 가족과 자연이다. 요즘 나 홀로 떠나는 ‘백패킹’도 인기를 끌고 있지만 일반적으로 우리가 부르는 캠핑의 중심은 누가 뭐래도 가족이다. 주말 캠핑이 늘어나면서 주말에 가까운 평일에는 술 마시는 자리도 줄어들었다고 한다. 아침 일찍 가족과 함께 떠나기 위한 아빠들의 배려일 것이다. 엄마들은 이러한 아빠들의 배려가 너무나도 고맙다. 아이들에게야 더 말할 나위조차 없다.  다만 아빠들의 이러한 자제가 캠핑장에서까지 계속 이어졌으면 싶다. 주말 캠핑장에서 눈에 띄는 많은 사람들의 휴식 문화는 참으로 다양하다. 대부분은 여유로운 시간을 보낸다. 숲 속에 자리 잡고 앉아 책을 읽기도 하고, 아이들과 함께 계곡에서 낚시 삼매경에 빠지기도 한다. 유유자적 자전거를 타는가 하면, 산자락의 탐방로를 따라 산책을 즐기기도 한다.   그러나 가끔 캠핑장에 도착해서 컴퓨터부터 켜고 매달리거나, 함께 온 지인들과 술자리부터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 아이들에게는 휴대폰이나 컴퓨터, 게임기 등을 주고 알아서 놀라고 한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집에 있는 게 백 번 천 번 낫다. 휴식을 위해 찾은 자연 속에서조차 도심의 삶을 그대로 이어갈 생각이라면 굳이 비싼 돈 들이고 고생해가며 많은 시간 허비하면서까지 캠핑장을 찾을 필요가 없지 않을까. 단순히 텐트 안에서 먹고 잔다고 해서 다 캠핑이라고 할 수는 없다.  가족이 함께 야외로 나가는 것은 함께 즐기고 멋진 추억을 만들기 위함이다. 어차피 시간을 내어 가족과 함께할 기회를 만들었다면 만사 제쳐두고 가족에 충실하자. 모닥불 피워 놓고 밤이 새도록 가족들과 눈높이를 맞추고 앉아 대화를 나눠 보자. 그것만으로도 그동안 충분히 나누지 못했던 교감이 이뤄지고, 새록새록 추억이 새로워질 것이다.  캠핑은 자연으로 돌아가 주말 휴식(rest)을 즐기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이는 휴식이란 단어가 지니고 있는 재(re) + 출발(start)에 가장 적합한 여가 생활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주말에 가족들과 함께 캠핑을 즐기며 취하는 휴식은 삶을 충전하는 에너지다. 주말 캠핑장에서 얻은 활력으로 활기찬 한 주를 시작하는 것이야말로 건강한 삶의 진정한 노하우라고 말할 수 있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는 광고처럼 부지런히 일하고 주말에는 이를 보충하기 위해 휴식을 취하는 것, 이것이 바로 진정한 웰빙이며 가족을 위한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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