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지대 욱일승천기 사건’이 남긴 교훈

 
 
  △ 상지대 디자인학부 학생들이 제작해 파문을 일으킨 동영상의 한 장면. 인류사에 가장 치욕적이었던 두 개 의 상징, 욱일승천기와 나치식 경례가 모티브로 사용되었다.
   
 

최근 일명 ‘상지대학교 욱일승천기(旭日昇天旗) 사건’이 화제가 됐다. 사건인즉슨, 상지대학교 디자인학부 학생들이 일본의 욱일승천기를 배경으로 나치식 거수경례를 하는 동영상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 동영상은 제작자 중 한 명이 자신의 카카오스토리에 올린 뒤 급속도로 인터넷상에서 유포됐다. 동영상에 등장하는 학생들의 얼굴은 이미지로 가려져 있으며, 사진 하단에는 ‘DESIGN’이라는 과 로고가 새겨져 있다. 동영상 유포 이후 상지대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는 학생들의 경솔한 행동을 질타하는 글들이 이어졌다. 한 누리꾼은 “어느 한편에서는 해외로 유학 간 학생이 해당 도시에서 스시를 파는 회사가 전범기를 디자인해 스시를 판매하는 것을 보고 해당 회사로 항의메일을 넣어 시정하겠다는 회답도 받은 상태인데 어떻게 역사교육을 받으면 전범기를 디자인할 생각을 하느냐”며 학교 측의 해명을 요구했다.

비판이 잇따르자 상지대 디자인학부는 지난 1일 상지대 홈페이지에 해명의 글을 올렸다. 그 글의 핵심은 “이 사진은 지난 2013년 3월 28일 21시경 학과 행사인 ‘신입생환영회’가 끝난 뒤, 임원진들과 함께 무대로 모여 기념사진과 더불어 패러디 사진을 촬영하는 과정에서 생성된 것이고, 사진에는 어떠한 정치적 의도도 내포되어 있지 않으며 단지 중앙을 향한 집중을 나타내는 의미로 구상한 디자인을 취한 게 불찰”이라는 것이다. 아울러 “너무도 중요한 역사적 의미를 간과한 채 이러한 사진을 촬영하게 된 것에 대해서 저희 임원진 일동은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다”는 사과의 말도 남겼다.

이번 ‘상지대 욱일승천기 사건’을 접하고 필자는 ‘이승연의 위안부 테마 누드집 사건’을 떠올렸다. 아마도 ‘제국주의’라는 공통분모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승연 위안부 테마 누드집 사건 당시 필자는 어떻게 위안부를 소재로 누드집을 만들 생각을 했는지, 그 저열한 상술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위안부 사건은 인류사에 유례없는 일제의 폭력성이 얼마나 극악무도했는지를 드러내는 사건이다. 역사의 상흔을 온몸으로 안고 살아야 하는 피해자 할머니들을 생각한다면 이 풀리지 않을 한을 사도-마조히즘적인 누드집으로 만들려고 한 제작사의 발상이 역겹기까지 했다.

상지대 욱일승천기 사건은 역사의식의 부재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수십 만 명을 태워 죽이고 생매장한 난징 대학살 현장, 생체실험을 자행한 특수부대, 종군 위안부를 끌고 가 만행을 저지른 곳에는 항상 욱일승천기가 나부꼈다는 사실을 상지대 학생들이 인지하고 있었다면 그런 동영상은 만들지 않았을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근대화의 3요소는 △자유인의 출현 △산업화 △민족주의이다. 이 중 민족주의는 근대 제국주의의 가장 큰 성장 동력이었다. 이는 독일의 나치와 일제가 자국 민족의 우월성을 강조한 사례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그런 까닭에 민족주의는 파시즘의 다른 이름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산업화도 환경문제를 양산한 것을 고려한다면 근대화의 3요소 중 가장 의미 있는 것은 자유인의 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자유인의 출현은 신분제도의 타파를 의미한다. 따라서 자유인의 출현 이후 만민은 평등한 권리를 누리게 됐다. 이 권리 중 하나가 바로 ‘표현의 자유’이다. 우리나라도 헌법 11조에 표현의 자유를 규정하고 22조에 별도로 예술과 학문의 자유를 명시하고 있다. 이는 국가권력이 예술을 억압하는 걸 방지하기 위해서이다.

물론 표현의 자유는 존중돼야 한다. 하지만 파시즘을 찬양하는 표현조차도 옹호돼서는 안 된다는 게 필자의 견해이다. 파시즘은 개인의 자유를 말살하는 제도이기 때문이다. 개인의 자유를 말살하는 제도를 찬양하면서 표현의 자유를 운운한다는 것 자체가 어폐가 있다. 더욱이 우리나라는 오랜 세월 일제강점기를 거치지 않았는가?

상지대 디자인학부 학생들이 파시즘을 찬양하기 위해 그 영상을 만든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파시즘에 대한 비판을 위해서 그 영상을 만든 것으로도 보이지 않는다. (영국의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 핑크 플로이드는 나치를 비판하느라 나치복장을 입고 콘서트를 한 바 있다.) ‘중앙을 향한 집중을 나타내는 의미로 구상한 디자인’이라는 해명의 글로 봤을 때 상지대 디자인학부 학생들이 욱일승천기를 통해서 전체주의적인 이미지를 각인하려고 했던 것만은 사실이라고 볼 수 있다. ‘중앙을 향한 집중’이라는 말만큼 전체주의에 어울리는 슬로건도 없지 않은가? 비록 정치적인 의도가 없다고는 하지만 오랜 세월 일제강점기를 거친 우리 민족 정서를 고려한다면 상지대 디자인학부 학생들은 도의적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이번 일을 계기로 미래 사회의 주역들에 대한 역사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본다. 현재 상지대에는 교양선택 과목으로 <한국현대사>가 개설돼 있지만 필수 이수 과목은 아니라고 한다. 게다가 2014년 수능부터는 한국사가 선택과목이 될 예정이다. 자국의 역사가 아닌 인류의 역사를 배우는 게 세계적인 추세라고는 하지만, 일제의 만행은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 되는 부끄러운 인류의 역사인 만큼 절대로 그 의미가 축소돼서는 안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청소년과 젊은이들은 뼈에 사무치는 역사의 상흔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저작권자 © 대학미디어센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