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속으로 들어온 휴머니즘

몇 년 전 한국에 가라타니 고진의 《근대문학의 종언》이 크게 화제가 된 바 있다. 《근대문학의 종언》의 요지는 탈(脫) 이데올로기의 문학은 오락으로 전락한다는 것이다. 당시 《근대문학의 종언》에 대한 찬반논쟁이 펼쳐지기도 했다. 일부에서는 가라타니 고진의 주장은 ‘낡은 헤겔주의적 유산’에 지나지 않다고 주장했다. (일리 있는 주장이다. 《근대문학의 종언》은 헤겔의 《예술의 종언》에 크게 빚지고 있는 게 사실이다. 헤겔은 예술은 ‘물질을 통한 정신의 표현’이라고 봤다. 그리스 조각이 헤겔이 본 예술의 최고 이상향이다. 헤겔이 말한 ‘예술의 종언’이란 더는 예술이 시대의 정신을 표현하는 주요 매체일 수 없다는 뜻이다.)

그런가 하면, 다른 편에서는 “90년대 이후 한국문학의 트리비얼리즘(쇄말주의)적인 경향은 자본주의라는 지배 질서의 그물에 포획돼 문학이 ‘상품’으로 옷을 갈아입는 과정에서 생기는 현상”이라며 가라타니 고진의 주장에 동의했다. (이 역시 일리 있다. ‘경제민주화’와 ‘보편적 복지’가 사회적 화두로 떠오를 때도 한국문학은 사회적 현안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90년대 이후 트리비얼리즘은 대중문화 전반에 걸쳐 뿌리를 내렸다는 것이다. 어느 비평가의 지적처럼 90년대 이후 문학은 분위기만 남고, 영화는 이미지만 남고, 음악은 리듬만 남게 된 것이다.

당연한 일이겠지만 트리비얼리즘의 첨단에 선 것은 TV 프로그램이다. 90년대에는 유명 인사(대체적으로 유명 연예인)를 초청해 ‘농담 따먹기’를 즐기는 ‘토크쇼’라는 프로그램이 최고의 시청률을 자랑하더니, 2000년대에 와서는 우스꽝스러운 상황극인 예능 프로그램이 그 바통을 이어받았다.

그런데 예능(藝能)이라는 장르는 그 어원부터가 불분명하다. 예능의 사전적 의미는 ‘예술적 재능’ 혹은 ‘예술적 재능을 배우는 것’을 뜻한다. 하지만 예능 프로그램에서 가장 중요시 하는 것은 ‘예술성’, 즉 ‘미적 창작성’이 아니라 ‘해학성(諧謔性)’이다. 예능의 해학성은 대부분 출연자들의 말재간에서 비롯된다. (미학적으로 말하면 비장미, 우아미, 숭고미는 사라지고 골계미만 남은 것이다.) 그러다 보니, 그간의 예능프로그램들은 보는 동안에는 재미있어서 시간 가는 줄 모르지만, 보고 나면 남는 게 없어서 시간이 아까운 공통점이 있었다.

‘시간 죽이기’용 간판 프로그램인 예능 프로그램에 최근 신선한 바람이 불고 있다. 지난 3월 10일 방영된 MBC <일밤-아빠! 어디가?>의 시청률은 13.7%로 동시간대 1위였다. 수도권 시청률이 20.1%인 것으로 집계됐다. 1월 6일 첫 방송 10주 만에 <무한도전>과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는 예능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일밤-아빠! 어디가?>는 배우 성동일과 아들 준, 이종혁과 아들 준수, 방송인 김성주와 아들 민국, 전 축구국가대표 송종국과 딸 지아, 가수 윤민수와 아들 후가 함께 여행을 떠나서 현지에서 겪는 해프닝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담고 있다. SBS <땡큐> 역시 여행다큐버라이어티를 표방하며 시청자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 MBC 프로그램 <일밤-아빠! 어디가?>
   
 

<일밤-아빠! 어디가?>가 기존의 예능 프로그램들과 다른 점은 크게 두 가지이다. 첫째, 장르가 ‘다큐테인먼트’라는 것이고, 둘째, 가족애를 다루고 있다는 것이다. 다큐테인먼트는 다큐멘터리와 엔터테인먼트의 합성어이다. KBS2 <인간의 조건>, SBS <행진>, MBC <남자가 혼자 살 때>와 마찬가지로 <아빠! 어디가?>도 엔터테인먼트적인 요소가 있지만 인위적인 장면은 최대한 배제하고 있다.

<무한도전>, <러닝맨> 등 미리 짜놓은 설정에 맞춰 진행되는 예능 프로그램들에 비교했을 때 진정성이 느껴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실제로 <일밤-아빠! 어디가?> 대본에는 게임의 규칙만 적혀 있다고 한다.

<일밤-아빠! 어디가?>의 성공은 최근 문학계에서 최고의 스테디셀러가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이고, 올해 최고의 흥행 영화가 《7번방의 선물》이라는 사실과도 무관하지 않다. 《엄마를 부탁해》는 모성애가, 《7번방의 선물》은 부성애가 주제이다. 즉, 최근에 대중이 가장 선호하는 주제는 가족인 것이다. 리얼리즘의 시대를 연 황석영 작가는 부랑노동자에게 따뜻한 불빛이 새어나오는 집의 창문이 얼마나 먼 동경의 대상인지 묘사한 바 있다. 가족이 문화계의 화두로 등장했다는 것은 이 시대가 얼마나 각박한 지를 대변해주는 방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는 ‘고용 없는 성장’이나 ‘20대 80대 사회’(이탈리아 경제학자 빌프레도 파레토의 이론으로 ‘20%의 부자가 전체 부의 80%를 차지하고, 80%의 국민이 남은 20%의 몫을 놓고 경쟁하는 사회’라는 뜻)로 대변되는 한국경제의 현실을 대변하는 것이기도 하다.

예능프로그램이 ‘트리비얼리즘’이라는 헌옷을 벗고 ‘휴머니즘’이라는 새 옷을 갈아입은 것은 훈훈한 일이다. 가족애를 넘어서 사회로까지 확대되는 휴머니즘을 담을 때 예능프로그램은 실로 사전적 의미의 ‘예능’ 즉 ‘예술적 기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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