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추억이 깃든 서울 골목길, 그 이야기에 귀 기울여봐요

2년 전, 한 출판사에서 서울의 숨겨진 골목길을 소개하는 책을 써보지 않겠냐는 제의를 받았다. 인도여행을 계획하고 있던 나에게 서울은 자꾸만 짐을 싸게 만드는 답답한 일상의 도시였다. 강변북로와 올림픽대로가 한강을 콘크리트로 막고 있고, 출퇴근 시간대의 테헤란로와 강남대로는 차들과 매연으로 가득 차 버린다. 그런 서울을 여행하라고? 처음 나의 반응은 부정적이었다. 서울을 새롭게 조명해보는 유익한 책이 될 수 있겠지만, 일단 나는 서울이라는 도시를 산책하고 끄적이는 일에 구미가 당기지 않았다. 그런데 어떻게 『두근두근 서울산책』이라는 한 권이 책이 탄생할 수 있었냐고 묻는다면 그것은 여행작가를 직업으로 가지고 있는 내 스스로에 대한 의무감이었다. 자꾸만 해외로 비행기를 타고 떠나려고만 했지 정작 가장 가까운 내가 사는 도시를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나는 마음을 고쳐먹고, 운동화 끈도 고쳐 멨다. 그리고 가볍고 천천히 서울을 산책하기 시작했다.

서울을 산책하기 위해선 먼저 우리가 그동안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에 대해 지니고 있던 고정된 이미지를 버릴 필요가 있다. 일터가 아닌 휴식처가 될 수 있고, 소음이 아닌 새소리가 들리는 곳, 매연이 아닌 숲향기가 가득하고, 대형마트와 백화점이 아닌 바구니에 덤과 정이 오고가는 재래시장이 있는 곳. 바로 그곳이 서울이다.

 
 

△ 안국동 거리

   
 

부모님의 추억이 깃든, 전통과 여운의 장소 안국동

사람들이 내게 서울산책에 대해 조언을 구하면, 나는 자신 있게 안국동에서 시작하라고 말한다. 부모님이 구슬치기와 고무줄놀이를 하던 옛 골목이 그대로 남아있고, 경복궁과 가까운 성곽 안 사람들의 이야기가 펼쳐졌던 곳. 삼청동과 인사동, 가회동에 가려져 종로의 인기 순위에서 다소 밀려나있지만 안국동이야말로 관광객이 아닌 진짜 서울 산책자를 위한 곳이다. 기념품 가게는 없지만 전통 떡집과 전통악기점이 있고, 예쁜 카페는 없지만 30년을 이어온 돼지갈비 골목이 있다. 북촌 한옥마을처럼 으리으리한 한옥은 아니지만 여전히 골목을 지키고 있는 낡은 한옥의 기와를 보고 있노라면 가슴속에 잔잔한 여운이 물결친다.

이 외에도 갤러리, 생태공원, 복합문화공간 등 서울을 즐길 수 있는 장소는 많다. 또한 서울만큼 밤늦도록 신나게 놀 수 있는 도시는 전 세계에서도 많지 않다.

 
 

△ 장충동 성곽길

   
 

이야기가 샘솟는 산책, 장충동 성곽길과 낙산공원

산책을 할 장소도 동네마다 한 곳씩은 있기 마련이지만, 그것은 동네조깅이지 결코 서울산책이 될 수 없다. 내가 주장하는 제대로 된 산책은 ‘길의 이야기가 들리는 산책’이다. 이야기가 샘솟는 곳은 과연 어디일까? 바로 한양의 이야기가 넘실대는 성곽길이다.

정겹고 소박한 동네, 장충동을 왼쪽에 두고 야트막한 언덕을 걷는 장충동 성곽길은 한양의 성곽을 담장삼아 살아가는 동네의 도란도란 사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또 서울의 하루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낙산공원은 서울의 몽마르트르 언덕이라고 불리는 보물같은 장소이다. 대학로와 가까이 있지만 젊음과 유행은 찾아볼 수 없는 곳. 서울에서 지는 해가 가장 아름다운 산책로이다. 낙산공원길은 단순한 공원이 아니다. 조선왕조의 좌청룡인 낙산은 조선시대에서 도성안의 5대 명승지로 꼽혔고, 지금은 서울에서 가장 오래되고 아름다운 산책로로 뽑히는 데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낙산일대의 조용한 동네는 2007년 낙산프로젝트라는 공공미술 프로젝트로 이화동과 함께 예술이 들어섰는데, 낙산성곽으로 걸어가며 만나는 담벼락의 예술작품들은 동네미술관을 탄생시켰다. 낙산공원의 성곽에 올라서면 포근한 서울이 한 품에 안긴다. 부자동네도 으리으리한 빌딩도 보이지 않지만 지붕과 지붕을 맞닿으며 살아가는 ‘서울사람’들의 따뜻한 이야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600년의 역사를 산책하며 듣는 길의 이야기

600년 한양의 역사가 함께한 서울은 단순한 대도시가 아니다. 아는 만큼 길이 보이고, 따뜻한 시선이 있다면 그 길의 이야기를 들려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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