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18 민주화 운동 당시 광주 금남로에 모여든 시민들 1980년 5·18 민주화운동으로부터 5·18이 발생한지 30주년이 됐다. 지난 시기를 돌이켜보면, 5·18 당시의 지배세력은 12·12와 5·17의 연속된 쿠데타를 통해 전두환과 신군부세력 중심으로 권력이 재편되면서 한국정치를 주도했고, 민주화운동세력은 10·26, ‘서울의 봄’, 5·18을 거치면서 민주화의 좌절을 맛보아야 했다.5·18은 한국정치 공간에 있어 중차대한 격동의 정치적 사건임에 틀림없다. 5·18은 한국정치의 중대한 기로에서 불가피하게 민과 군의 충돌을 가
『한국문학연구』는 동국대학교 한국문학연구소의 한국 문학·문화 전문 학술지이다. 1976년 제 1집을 시작으로 현재 37집까지 발행된 『한국문학연구』는 한국문학 및 문화와 관련된 수준 높은 논문들과 서평, 학술 기획물들을 실어왔다. 특히 2000년대에 들어 국문학과 관련하여 인문학 분야에서 다양하게 진행된 학제간 연구의 성과들이 한국문학연구소의 기획 특집을 통해 『한국문학연구』에 게재되어 국문학 연구의 새로운 가능성들을 모색하였으며, 이러한 학술적 성과를 바탕으로 2009년 『한국문학연구』는 한국연구재단의 학술 등재지로 선정되었다.
지난 4월 24일, 본교 명진관 103호에서 ‘한국목간학회 제8회 정기발표회’가 열렸다. 이번 발표회는 근래 급증하고 있는 백제의 목간자료를 대상으로 한 서체분석, 인각와를 통한 기와 제작과 유통 및 수공업 현장에서의 문자 문화, 지난 해 발견되어 널리 알려진 포항 중성리신라비(이하 ‘중성리비’)에 보이는 관등을 살펴봤다. 이번 발표는 윤선태 교수(동국대 역사교육과)의 사회 아래 따로 지정토론자를 두지 않았지만, 매번 예정 시간을 넘길 정도로 활발한 토론이 이뤄졌다.백제기와의 수급체제는 ‘1 : 다수’의 형태첫번째 발표자인 심상육
김성희 외 5명, 『내가 살던 용산』, 보리, 2010 죄와 병은 널리 알려야 하기에, ‘용산 참사’는 이런 식으로나마 계속해서 회자 되어야 마땅한 사건이다.작년 초, 정부는 경찰특공대를 동원해 용산에서 가게를 운영하던 철거민 5명을 불태워 죽였다. 그런데 1년이 다 가도록 제대로 된 사과 한 번 하지 않았다. 철거민 다섯 명 말고도 특공대원 한 명이 용산에서 목숨을 잃었다. 검찰은 그의 죽음을 철거민들에게 물었다. 특공대장을 비롯해 용산경찰서장 및 경찰 간부들은 1월 20일 당시 남일당 망루로 특공대를 투입해야겠다고 판단한 이유로
가라타니 고진(柄谷行人)과『정치를 말하다』 가라타니 고진, 조영일 옮김,『정치를 말하다』, 비, 2010 이번에 출간된 일본의 세계적인 비평가인 가라타니 고진(1941~현재)의 대담집 『정치를 말하다』(도서출판 비, 2010)를 읽었다. 읽다보니 내가 가라타니의 책을 처음 읽은 지 대략 15년이 지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지금까지 한국어로 출간된 20여권이 넘는 그의 책을 한권도 빼놓지 않고 읽어왔다. 그의 글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으며, 개인적인 인연은 없더라도 가라타니는 나에겐 언제나 선생이었고, 나는 그의 제자였다. 가라타니
웬디 브라운, 이승철 옮김,『관용』, 갈무리, 2010 소수자와 이주자의 문제를 비롯해 민주적이고 자유로운 의견 표출의 요구들과 소비문화 속에서의 개성과 다양성에 이르기까지 오늘날 우리들에게 차이에 대한 감수성을 요구하는 사회적 조건들은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차이와 타자에 대한 강조는 더 이상 낯선 것이 아니며, 타자와 차이를 존중하고 관용하라는 요구는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윤리가 되었다. 하지만 이런 시대적 윤리 속에서 감지되는 모종의 불편함 역시 부인할 수 없다. 그것은 부분적으로 해방의 관념 속에서 제기되었던 많은 사회적
굳이 ‘역사는 현재와의 대화’라는 진부한 표현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어떤 사건을 추억하고 기념한다는 것은 오늘날의 현실에서 그 사건이 주는 의미를 반추해보기 위함이다. 특히 10년, 20년 단위로 이른바 ‘꺾어지는 해’의 해당 사건이 던져주는 의미는 남다르게 다가온다. 꺾어지는 해가 유독 많은 올해에 특히 빼놓을 수 없는 것이 50주년을 맞는 4.19혁명이다. 역사의 공백기를 이겨낸 민중의 첫 번째 승리헌법 전문에도 명시되어 있는 4.19혁명은 한국 민주주의의 시발을 알린 일대 사건이었다. 이때부터 민주주의가 시작되었다는 것은 한국전
동서사상연구소는 1998년 7월에 설립되었으며, 정기 학술지 『철학·사상·문화』는 2005년 7월에 창간된 한국연구재단의 등재후보지이다. 동서사상연구소는 동국대학교의 인문학의 특성을 더욱 발전적으로 이끌어가고자 하는 생각에서 창립되었다. 모든 단과대학을 망라하는 많은 교수들, 특히 문과대학 교수들이 동국대 인문학의 특성을 미래지향적이면서도 동국대만의 고유한 방향으로 만드는 데 협력할 것을 동의한 것이 창립 배경이다. 인문학의 여러 분과 중에서도 사상 및 철학이 근본적인 인문 정신을 형성한다는 이해에 따라 철학과 부설연구소로 출발하여
지난 3월 20일, 다향관 세미나실에서 보조사상연구원의 월례학술대회가 열렸다. 이번 학술대회는 보조국사 열반 800주년을 기념해서 다양한 불교사상 연구 소개를 위해 우리나라에서 접하기 힘든 ‘아비달마 철학과 논쟁’을 주제로 선정해 주목을 받았다.의 자아에 대한 조명 시도학술발표는 2부로 나누어 진행됐고, 본교에서는 황순일 교수(인도철학과)와 황정일 박사(불교대학 연구초빙)가 주제발표자로 참여했다. 1부에서는 황순일 교수의 ‘『구사론』〈파아품>에 나타난 자아논증과 그 비판’을 주제로 발표가 진행되었다. 황순일 교수는 『구사론
우리는 특정 영화의 허접함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기 위해 흔히 “그 영화 쓰레기야!”라고 딱 잘라 말하곤 한다. 혹자는 감독의 엉성한 연출력과 배우의 형편없는 연기력이 거슬린다는 이유로 혹평하고, 나아가 영화에 대한 깊은 조예를 지닌 사람에게는 컷과 컷의 매치가 생산적인 의미를 도출해내지 못한다는 이유만으로도 특정 영화를 쓰레기 취급한다. 이러한 기술적 측면뿐만 아니라 영화의 표현 수위나 가치관에 대한 깊은 반감으로도 어떤 영화를 쓰레기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그런데 이 모든 ‘쓰레기 요소’들을 한데 묶어 하나의 미학으로 끌어올린
지금으로부터 100년전인 1910년 8월 22일, 서울 안팎의 요지에 약 2천6백여 명의 무장 일본군과 헌병들이 배치된 살벌한 상황 아래 창덕궁 흥복헌에서 대한제국의 마지막 어전회의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총리대신 이완용은 사전에 데라우치 통감이 건네준 ‘한일병합조약안’을 체결하는 데 필요한 ‘전권위임장’을 내밀었고, 순종은 모든 것을 체념한 듯 위임장에 서명했다. 병탄을 은폐한 ‘한·일병합조약’이완용은 전권위임장을 갖고 통감 관저로 가서 데라우치와 ‘한·일병합조약’을 체결했다. 8월 29일 순종은 한국의 통치권을 일본에게 넘겨준다
『불교학보』는 동국대학교 불교문화연구원에서 발행하는 불교전문 학술지로 불교학 전반에 관한 논문을 수록하고 있다. 불교문화연구원은 1962년 3월 국내 최초의 대학부설 연구기관으로 설립한 이래 한국의 불교학계를 대표해 교리, 역사, 문화 예술 분야의 학술활동과 함께 국내 및 국외의 문화재 발굴과 답사 등 주목할 학문적 성과들을 이뤄왔다. 불교 관련 다양한 학술논문 게재이러한 연구활동에 부응하고 국내외 학자들의 연구역량을 고취시키기 위하여 1963년 우리나라 최초의 불교학 논문집인『불교학보』를 발간했다.『불교학보』는 올해 2월 28일
△ 12월 20일에 캄보디아의 바이욘 사원을 돌아본 제4회 학술문화기행 참가자들 지난 12월 19일부터 24일까지, 제25대 대학원 총학생회(회장 김선희, 이하 ‘총학’)는 네 번째 학술문화기행을 가졌다. “찬란한 역사 유적 자랑하는 불교문화를 찾아서”라는 주제로 진행된 이번 학술문화기행은 총 20명이 참여하여 캄보디아와 태국을 대상으로 앙코르 와트, 태국 왕실 사원 등의 불교유적들을 돌아보았다. 2006년 개교 100주년을 기념해 시작된 학술문화기행은 그동안 매년 여름에 실시되면서 대학원 내의 주요 행사로 각인되어 왔다. 하지만
삶과 죽음은 모두 자연의 한 조각이지만, 그 두 세계는 영원히 만날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뒤늦게 이야기한다. 죽음에 이르러 그의 삶에 대해서 말하기 시작한다.『내 마음속 대통령-노무현, 서거와 추모의 기록 1』에서는 고(故)노무현 대통령의 서거 배경으로 거론되는 ‘대통령기록물사건’과 이른바 ‘박연차 게이트’의 전후맥락을, 노 대통령이 남긴 기록 중심으로 정리하고 있다. 특히 서거 1개월 전에 이명박 대통령에게 청원 형식으로 쓴 ‘부치지 않은 편지’와 대검찰청 출석 후 5월 초에 작성하다가 중단했던 ‘추가진술 준비’는 그
슬라보예 지젝 외,『레닌 재장전』, 이현우 외 옮김, 마티, 2010 최근에 감명 깊게 읽었던 어떤 책의 한두 문장을 인용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해보겠다. “혁명은 사랑을 만드는 기술이다. 그것은 레닌이 아니라 트로츠키의 혁명, 로자 룩셈부르크의 혁명, 그리고 벤야민의 혁명이다.”(김홍중,『마음의 사회학』) 이 문장에서 내가 주목하고 싶었던 것은 단지 레닌이 아니라는 구절뿐이다.『마음의 사회학』전체를 뒤져봤지만 왜 레닌이 아니어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은 찾을 길이 없었다. 트로츠키, 로자, 벤야민의 혁명은 허용되지만, 레닌의 혁명은 안
사회과학은 ‘연구자가 누구인가’에 따라 연구의 가치나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따라서 그 결과에 대해 연구자가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러나 자연과학은 연구자의 연구결과가 아무리 전쟁처럼 반인륜적인 곳에 사용된다고 해도 그럴 의도가 없었기 때문에 과학적 결과에 대한 책임은 지지 않는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자연과학을 가치중립적이고 비정치적인 것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일상생활에서 과학이란 단어는 대게 자연과학의 동의어로 취급된다. 따라서 과학적이라는 말은 대게 객관적 혹은 중립적이라는 말과 혼용되기 일쑤다. 그러나 자연과학이건 사회과학이건
‘네루다’라고 하면 영화 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을 텐데, 한때는 민중시인 못지않게 여성편력의 대가라는 이미지가 우세했다. 필자 역시 그러했다. 공개적인 석상에서는 ‘시, 사랑, 혁명’이라는 세 단어로 네루다를 정의하면서도 사석에서 만난 사람들이 바람둥이 아니냐고 넌지시 운을 떼면 ‘저 사람도 네루다 자서전을 읽었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고개를 끄덕거릴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네루다 자서전이 어떻기에 이런 이미지가 생겼을까? 네루다 자서전이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된 때는 1980년 1월이다. 이때는 1979년 10월 박정희
지난 7일 본교 문화관 제3세미나실에서 한국 칸트학회가 주최한 정기학술대회가 ‘칸트철학과 도가 철학의 소통’이라는 주제로 열렸다. 한국 칸트학회는 이미 작년부터 동서철학을 논하기 위한 교량의 역할로 칸트철학과 유학과 불교 철학을 다룬 바 있다. 이번 학술대회는 동양철학과의 소통을 위해 기획한 마지막 학술대회로 칸트와 함께 도가 철학을 등장시켰다.논의는 비교철학에 관한 물음부터 시작되었다. 칸트는 서양에서 ‘이성’과 ‘이성의 한계’를 발견한 최초의 철학자다. 반면 노자는 동양에서 이성 너머에 있는 자연과 무한함을 발견한 철학자다. 따
“테러 공격에 따른 중요한 배경과 의문에 대한 답이 책 속에 이미 제시되어 있다. 촘스키는 하나의 사건에 대해 논평하기보다는 그로부터 진실을 읽는 눈을 밝혀주기 때문이다” 아브람 노암 촘스키(Avram Noam Chomsky)는 1928년 12월 7일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 필라델피아에서 유대계 러시아인 2세로 태어나(부친인 윌리암 촘스키는 히브리어 학자) 오크 레인 컨트리 데이 초등학교(존듀이의 교육 이념을 따르는 실험적이고 진보적인 이 학교에서 촘스키는 창조적인 사고를 키웠다)와 필라델피아 센트럴 고등학교 (대학 진학을 위한 최우
극예술은 항상 일상 바깥의 영역에 존재하는 것으로 여겨져 왔다. 일단, 극(劇)이라는 한자의 제자 원리에서 확인되는 바와 같이 ‘극’에는 이미 ‘죽음’이라는 가장 비일상적 개념이 내재되어 있다. 죽음 충동의 언저리에 극은 존재하는 것이다. 극예술의 가장 전통적 양식인 연극을 보게 되든, 또한 극예술의 가장 현대적 양식인 영화를 보게 되든, 관객은 항상 암전이라는 방식을 통해 일상과의 절연을 거쳐야 비로소 극예술과 접촉할 수 있게 된다.그 자체로 이미 일상성의 상징이 되어버린 개인 소유의 휴대전화를 꺼달라는 극장 측의 부탁은 극예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