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마음이 울적할 때 비틀스의 〈Let it be〉를 듣는다. 그때 마음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몸살을 앓고 난 뒤 먹는 닭고기 스프 맛이라고 할까? 잔잔한 멜로디도 좋지만 노랫말이 일품이다. 내가 근심하고 있을 때 어머니인 메리가 다가와 지혜로운 말씀을 해주셨다. 그냥 그대로 두라고. ‘Let it be’를 우리말로 번역하면 ‘그냥 그대로 둬라’ 혹은 ‘내버려둬’ 정도가 될 것이다. 이는 도가(道家) 사상에 입각해 보면 ‘무위(無爲)’가 되고, 선가(禪家) 사상에 입각해 보면 ‘평상심(平常心)’에 해당한다.최근 필자는 〈Le
중국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모옌의 장편소설 《사십일포》는 중국의 한 가족사를 동양사상의 요체인 유불선 사상을 통해 풀었다. 소설제목인 ‘사십일포’는 마흔 한 개의 거짓말, 시쳇말로 ‘41개의 뻥’을 의미한다.《사십일포》는 두 가지 이야기 축으로 전개된다. 그 하나는 스무 살의 청년 뤄샤오통이 우통신(五通神) 사찰에서 과거 열 살 무렵 자신이 겪었던 일들을 란따 스님에게 들려주는 이야기 구조이며, 다른 하나는 화자가 이야기를 들려주는 와중에 우통신 사찰을 둘러싸고 현재 진행형으로 벌어지는 다소 환상적인 장면 묘사이다. 먼저 줄거리는 살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책 읽어주는 남자』는 언어학적인 상상력이 돋보이는 소설이다. 소설 속에서 남녀 주인공인 한나 슈미츠와 미하엘 베르크의 대화가 온전하게 소통되는 경우는 한 번도 없다.소설 초반에는 미하엘이 화자(話者)이고, 한나가 청자(聽者)이다. 이때 둘의 대화는 책을 읽고, 그것을 들음으로써 이뤄진다. 책 읽기가 끝나면 정사를 나눈다는 점에서 둘의 대화는 일종의 성행위의 선행 조건으로도 보인다. 이제 갓 육체적 성애에 눈 뜬 미하엘이 조금이라도 더 한나와 침실에 같이 있고 싶어서 오랫동안 책을 읽는 장면에서는 그 혐의가 더욱
시대를 온 몸으로 써내려간 고 김수영 시인의 미망인 김현경 여사(86)가 남편을 추억하며 집필한 에세이 ‘김수영의 연인’이 실천문학사에서 나왔다. 1968년 번역료를 받아들고 돌아오던 중 갑작스런 교통사고를 당해 그의 절명시 ‘풀’처럼 누워버린 김수영 시인의 45주기를 맞아 회고록으로 쓰인 이 책은 김수영과 한 몸처럼 시와 인생을 나눈 김현경의 김수영 론이다.김수영에게 있어 김현경은 억압적 현실의 분노와 짜증을 퍼부울 수 있던 유일한 대상이었다. 김현경은 이화여대 영문과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일본전위파 문학과 프랑스 문학에 심취했던
지난 정부 아래 여러 심각한 정치 사회적인 사건들-촛불, 용산, 쌍용, 희망버스 등-이 일어나면서, 문단에서는 문학과 정치의 문제가 뜨거운 화두로 떠오른 바 있었다. 하지만 논쟁들이 대개 그렇듯이, 논자들이 동의할 수 있는 어떤 결론에 도달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 논의들은 2000년대 들어 무시되는 경향이 있었던 문학의 정치성에 대해 재고가 이루어지는 계기가 되었다고 본다. 한편, 예전에는 문학예술의 정치성에 대한 논의가 리얼리즘 미학의 문제와 연관되어 이루어진데 반해, 근래의 논의는 리얼리즘 미학과는 거의 무관하게 진행되었다는
급변하는 조직환경 속에서 부하들은 리더가 탁월한 리더십을 발휘하고, 솔선수범적 행동을 해 줄 것을 기대하며, 자신들을 잘 리드해 줄 것이라는 믿음도 더해간다. 리더는 공식·비공식적인 행동을 통하여 부하의 가치관, 신념, 자아형성에 많은 영향을 준다. 이와 같은 영향력은 리더에 대한 부하의 신뢰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리더가 신뢰를 받는 것은 리더십 영향력에서 중요하며, 리더가 자기희생적 행동을 보일 때 그 신뢰는 더욱 커지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또한 개인의 이익보다는 팀, 조직 전체를 위하여 희생적인 사람으로 비춰질 때 보다 강
2010년, 한국 극장가는 피의 향연이라 말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 , , , 등 과도하고 선정적인 폭력을 날것 그대로 이미지화하며 강간, 살인, 유괴 등의 흉악범죄와 가족의 복수, 사이코패스 등을 소재로 하는 ‘잔혹 스릴러 영화’들의 출현이 계속 되었다. 내가 이러한 영화들에 주목하게 된 것은 이 영화들의 폭력성이나 선정성 때문이 아니라 이 영화들의 파국적 결말 때문이다. 그것은 비극적 파토스가 아닌, 실패의 잔영속에서 영원히 헤어나올 수 없는 불안의 파편
『거꾸로 선 꿈을 위하여』는 내면 여행의 기행문이다. 우선 내면과 내면의 여행이란 무엇일까? 모든 여행은 전 생애를 담보로 한다. 갑자기 와 닿은 ‘어떤 순간’의 느낌이 그를 여행으로 내몰았다 할지라도, ‘어떤 순간’을 느낀 그의 몸은 그의 전 생애를 통해서 이미 마련되어 왔던 것이다. 동전 한 개를 떨어뜨리거나, 쉼표 한 개를 잘못 찍는 등의 실수도 마찬가지다. 그것에는 실수일 수 없는 의뭉한 의도가 몸 깊숙이 숨어 있지 않을 수 없다. 비록 그것이 표면에 드러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사람의 의식 깊숙이, 너무나 깊숙이 있어서 흔적
어느 때부터인지 지금의 ‘시대’가 무엇인지를 표현하는 것이 어려워졌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젊은이들의 경향을 설명하던 X세대, Y세대와 같은 표현은 그 표현이 나타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시쳇말과 같은 것이 되어버렸고, 이념이나 한 시대의 특징적인 면모를 추출하여 ‘○○의 시대’와 같이 표현하는 데에도 적지 않게 어색한 느낌이 드는 요즘이다. 얼마 전 작고한 영국의 역사가 에릭 홉스봄이 ‘장기지속의 19세기’를 설명하기 위해 ‘혁명’,‘자본’, ‘제국’과 같은 큰 주제들을 통해 시대를 정리하였던 것을 생각하면, 우리의 시대는 무
‘곤조 저널리즘’의 창시자 헌터 S. 톰슨. 그 당시 대부분의 미국 뉴저널리스트들이 그러했듯 그도 언론 제도권 주변에서 몸소 체험하며 경험을 쌓고 경력을 만들어가며 기자로 살아갔다. “죽어서도 지구 안에 남아 있고 싶지 않다. 나를 지구 밖으로 보내달라”로 유언을 남기며 2005년 자살한 그는 인생 자체를 하나의 실험실로 생각한 인물로서, 미국 반컬트·반문화의 상징으로 한 평생을 살았다. 그런 그의 인생관은 그의 여러 작품에 녹아있으며, ‘곤조 저널리즘’ 또한 그런 그의 인생관을 잘 드러낸 그의 취재 철학이다. 사실 ‘곤조 저널리즘
어릴 적 사찰에 놀러 가면 불상 뒤에 크고 화려한 그림은 누가 그렸을지 궁금했다. 이러한 궁금증은 대학원 미술사학과를 들어오고 불교회화를 전공하면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현재 전각에 모셔진 불화들은 주로 조선후기 작품들로, 불화의 아래 부분에는 무엇인가가 기록되어 있는데, 이를 ‘화기(畵記)’라고 한다. 충남 서산 천장암(天藏庵)에 모셔져 있는 1898년 의 화기를 살펴보면, 오른쪽부터 왼쪽으로 불화가 모셔진 곳, 제작시기, 불화 제작과 관련된 내용들이 기록되어 있다.(그림 1) 특히 화기의 가운데에는, ‘금어비구
동국대학교 대학원 미술사학과 최응천 교수가 이끄는 동악미술사학회(이사장 최응천)가 2012년 11월 10일 토요일 국립중앙박물관 소강당에서 제 61회 정기학술발표회를 개최하였다. 이번 학술발표회는 동국대학교 신광희 선생의 진행으로 인도박물관의 정문석 학예사, 대전역사박물관의 김은선 학예연구사, 불교중앙박물관의 이분희 학예실장, 동국대학교 박물관의 정성권 학예연구사, 동국대학교 미술사학과 정우택 교수 등 총 5명의 발표자들이 한국미술사의 다양한 분야의 최근 연구 성과를 발표하였다. 첫 번째 발표는 인도박물관의 정문석 학예사였는데, ‘
거짓 이미지를 깨는 일은 수전 손택의 사명과 같다. 그녀는 이미지 자체를 걷어내고 투명하게 보고 싶어한다. 다른 저서인『해석에 반대한다』나『사진에 대하여』에서 추구하는 투명성(Transparency)은 “사물의 반짝임을 그 자체 안에서 경험하는 것, 있는 그대로의 사물을 경험하는” 것이다. 이에 비추어 은유는 사물에 의미를 덧씌우는 ‘불투명성’으로 볼 수 있다.그녀의 문제의식은 세상에 은유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은유는, 아리스토텔리스의 “어떤 사물에다 다른 사물에 속하는 이름을 전용(轉用)하는” 수준을 넘어 새로운 의미를 생산하는
필자가 북한의 개성공단과 금강산에서 일할 때 북측 직원들의 모습이 아직 기억에 남는다. 그들은 낮에는 남측 직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밤에는 당의 주의사항과 남측 시사에 관해 간단한 교육을 받는 총화(總和)를 실시한다. 북한 인민은 아직 자신의 조국을 위해 잘 조직된 체제의 성원으로 기능하는데, 이는 하방(下方)적이고 권위적인 국가 중심적 방식만으로는 절대 성취할 수 없는 모습이었으리라.저자의 문제의식도 여기서 출발한다. ‘인민’(people)이라는 개념은 복잡하고 다양한 정체성을 지닌다. 서양에서 정치적 ‘인민’을 처음 이야
인류에게 달이란 무엇일까? 중력의 지배를 벗어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공간? 혹은 새롭게 개척해야 할 미지의 땅? 미래는 모르지만, 적어도 과거 인류에게 달이란 마치 19세기 서구 열강들이 자신들의 제국주의 이념을 실현시키기 위해 아프리카 대륙을 정복하던 것과 썩 다르지 않았을 거라 생각된다. 사상 전쟁이 치열하던 냉전시대, 미국과 소련은 과거의 ‘정복의 역사’를 교훈으로 삼겠다는 듯 각자의 유토피아를 건설하기 위해 달로 향했다. 그들은 달을 지배하는 것이 곧 자신들만의 이데올로기로 세계를 지배하는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나에게 추석은 매우 기다려지는 날이다. 추석이면 전국 모든 무덤에서 벌초를 하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왕릉과 사대부묘에 건립되어있는 석물 즉 능묘석물(陵墓石物)이 전공인 나는 한여름 장마와 폭염으로 무성해진 풀 때문에 7,8월은 답사를 하지 못한다. 벌초가 끝나는 추석이 지나서야 비로소 나는 답사를 다시 시작할 수 있다. 미술사라는 학문은 대중적이지 않고, 그 중에 능묘석물이라는 주제는 우리나라에 전공자가 10명도 안되는 분야이다. 그만큼 무덤은 우리의 관심 밖에 있었던 주제이다. 명절이면 성묘가서 보는 산소의 비석, 제수(祭需)를
2012년 9월 15일(토) 오후 3시 동국대학교 경주병원에서 개원의들 9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동국의대 출신 교수들이 제1회 Dongguk Heart & Atherosclerosis Summit(DHAS)를 개최했다. 이번 학술대회는 본교 심장내과를 졸업하고 전국의 큰 대학병원에서 심장내과 교수로서 활약하고 있는 총 다섯 분의 교수들이 참석했다. 그리고 전국 유명 대학 병원의 교수들, 높은 수준급의 전문의들이 한 자리에 모인 가운데 진행되었다. 나득영 교수는 “동국대학교 의과대학이 주축이 되어 이번 학술대회를 진행한 만큼 심장관련
내가 쓴 글을 보면서, 불필요한 문장이 왜 이리 많을까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쓸 때는 분명 많은 공을 들인 것 같은데, 시간이 지난 후 다시 읽을 때면 속속 숨어 있는 생뚱맞은 문장을 발견하게 된다. 그때마다 죽 이어진 기차 객실 사이에 끼어 있는 세발자전거나 오리 보트 따위를 본 것처럼 당혹스럽다. 글만 그런 게 아니다. 생활 속의 말도, 행동도 그렇다. 불필요한 말과 행동이 너무 많다. 돌이켜 보면 부끄러운 일 천지다.하지만 전혀 상관없이 등장하는 말이나 행동, 문장은 없다. 모든 것엔 그럴 만한 이유가 있고, 그 이유를 만들
김용옥의『사랑하지 말자』는 지은이와 가상의 청년이 ‘청춘·역사·우주·종교·사랑’ 등의 아홉 가지 주제를 갖고 문답식 대화를 나눈 책이다. 제목의 역할은 ①내용을 요약하고, ②다른 책과 구별하게 하고, ③독자를 유혹하는 것이다. 전화번호를 알고 싶어 114에 전화만 걸어도, 대뜸 “고객님, 사랑합니다.”라는 낯 뜨거운 ‘애정 고백’이 대세인 터에, 사랑하지 말자니? 이 제목은 제목의 세 번째 역할에 충실하다고는 할 수 있으나, 책 전체를 요약하여 대변하지는 못한다. 오히려 이 책은 출간되자마자, “2012년 대선은 이미 승자가 결정되
주인공인 다카하라 린은 소설가다. 그녀가 자전소설 원고를 청탁받는 장면을 통해, 이 소설 또한 자전적인 기록임을 밝히고 있다. 소설엔 두 번의 겨울과 두 번의 여름이 제시되며, 계절마다 그녀가 사랑했던 남자들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22nd winter & 15th winter스물 두 살의 다카하라 린은 남편 신과 막 신혼여행을 다녀왔다. 하지만 그녀의 결혼생활은 행복하지 않다. 린의 불안감은 남편이 언제 자신을 떠나갈지도 모른다는 것에 기인한다. 린은 세상은 온통 악의로 가득 차 있고, 방심하는 사이 불행의 구렁텅이로 빠질 수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