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해외 우수대학 취재-델프트 공과대학교

유럽 5대 공과대학인 델프트 공과대학교는 ‘낮은 땅’ 네덜란드의 자연환경이 만들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네덜란드의 역사를 두고 흔히 물과의 투쟁사라고 부른다. 델프트 공과대학교의 역사도 이와 궤를 같이 한다. 토목과 건축학을 필두로 성장한 이 대학은 엄격한 학사규정을 시행하고 있다. 특히 박사과정은 학위 취득을 위해 SCI급 논문 3편을 요구한다. 취재팀은 델프트 공과대학을 통해 명문 연구중심대학의 장점을 살펴 보고자 한다.

유럽 5대 명문 공과대학

▲중앙도서관 내부 열람실
델프트 공과대학교(Delft University of Technology)는 네덜란드의 도시 델프트에 있는 네덜란드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공립 공과대학교이다. 보통 약칭으로 TU Delft를 많이 사용한다.

델프트 공과대학교는 네덜란드의 국왕 빌럼 2세에 의해 1842년 1월 8일에 왕립토목학교로 설립되었으며 ▲기계, 해양 및 재료 공학 ▲건축 ▲토목 및 지질학 ▲전기 공학, 수학 및 컴퓨터 과학 ▲산업디자인 공학 ▲항공우주 공학 ▲기술, 정책 및 관리 ▲응용 과학 8개의 학부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 8개의 학부와, 14개의 세부학부과정, 41개의 석사과정은 유럽 공학 분야의 진보에 기여하며 과학기술 발달의 선두에 있다. 특히 전신이 왕립토목학교에서 비롯된 이유로, 건축과 토목분야에서 세계 최정상의 교육수준을 자랑하고 있다. 현대 건축학의 거장으로 손꼽히는 헤르만 헤르츠버그(Herman Hertzberger) 를 비롯해 에릭 반 에거라트(Erick van Egeraat)는 델프트의 건축학과를 빛내고 있는 세계적인 건축가다. 이와 같은 성과는 국토의 3분의 2가 해수면보다 낮은 네덜란드 특유의 지리적 불리함을 극복하고 얻어낸 열매라고 할 수 있다.

이밖에도 델프트는 디자인과 항공우주공학 교통물류 분야에서 유로국가들 중 두각을 나타내 시대의 변화에도 뒤처지지 않고 있다.

델프트 공과대학교는 유럽의 5개 우수 명문 공과대학교(델프트 공과대학교,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 취리히 연방 공과대학교, 아헨 공과대학교, 파리 공과대학교)의 연합인 IDEA League 중 하나로 손꼽힌다.
델프트 공과대학교는 우수한 교과과정을 갖춘 명문대이지만 끊임없이 세계의 석학이나 저명인사를 초빙해 특강을 하는 대학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네덜란드의 우수 인재 육성 정책에 힘입어 유학생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갖추고 있다. 이 대학 석사과정의 거의 모든 수업이 영어로 진행되기 때문에 영미권 국가에서 유학을 오는 데 어려움이 없을 뿐 아니라 다른 국가에서도 영어에 익숙한 인재들이 앞다퉈 지원하고 있다.

졸업생으로는 노벨상 수상자인 Jacobus van’t Hoff(화학), Heike Kamerlingh Onnes, Simon van der Meer(물리학), 세계적 가전업체 필립스의 공동창업자 Gerard Philips 등이 델프트를 빛낸 대표적인 졸업생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영국 주간지 타임즈가 발표한 2012 세계대학 평판 순위에서 51위에 올랐다.

▲건축학과 실습실

실습중심의 커리큘럼

일반적으로 국가의 국가명(名)에는 그 국가만의 정체성이 담겨져 있다. 예를 들어 대한민국은 ‘한(韓)민족이 세운 국민의 나라’라는 의미이고, 영국인 잉글랜드(England)는 ‘앵글로 색슨족의 국가’, 프랑스는 ‘프랑크민족의 국가’라는 뜻이다. 일반적으로 국가명에 ‘민족’을 지칭함으로써 국가의 정체성을 밝히는 반면에 네덜란드(Netherland)는 특이하게도 ‘아래의’, ‘낮은’이라는 뜻의 ‘Nether’와 땅이라는 ‘land’를 합쳐 ‘낮은 땅’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지형적 요건이 네덜란드라는 국명에 이르게 되었다. 네덜란드는 국토의 2/3가 해수면보다 낮은 국가다. 밀려오는 바닷물을 막기 위해 작은 국토임에도 불구하고 만리장성 길이의 방파제를 쌓았다. 흔히들 스위스 역사를 산과의 투쟁사라고 한다. 반면, 네덜란드는 물과의 투쟁사라고 한다. 물과의 투쟁사, 그 중심에는 델프트 공과대학교가 있었다. 1842년 윌리엄 2세가 세운 왕립토목학교는 델프트의 전신으로, 왕실토목학교의 토목기술은 바다와 투쟁한 역사의 산물(産物)이다.

델프트의 학풍과 커리큘럼은 실습에 있다. 이론에만 그치지 않고 꾸준한 실습을 통해 적용해 보는 것이다. 건축학 석사과정에 재학중인 강동화 군은 “학부 때부터 학생들이 직접 디자인부터 건축 자재까지, 학생들이 모두 다 배울 수 있다. 특히 실제로 자기 디자인을 적용할 수 있도록 가르친다. 어떤 아이디어를 아이디어에 그치지 않고, 실제로 어떻게 건축할 수 있는지 가르쳐주는데, 그 점이 매력적이다”며 “재료를 다룰 때 한국에서는 유리와 철에 대해 생각하고 도면을 그리는 과정에서 그친다면, 여기서는 거기서 더 나아가 그 재료를 가지고 어떻게 내가 원하는 느낌을 내야 되는지에 대해 알려준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지난 2년 동안 이곳에서 공부하면서 실제로 건축에 대해 어떻게 접근해야 되는 지에 대한 방향성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독특한 양식의 컨벤션센터
등록금, 한국대학의 4분의 1

우리나라 대학계의 뜨거운 감자는 등록금이다. 델프트 공과대학교의 등록금은 어느 정도 수준일까.
네덜란드 델프트 공과대학교의 등록금은 외국인 학생의 경우 1년에 9천유로(1,300만원)정도다. 네덜란드 현지인은 1,200~1,300 유로정도(170~190만원). 그런데 네덜란드인에게는 국가에서 등록금과 별도의 생활비를 5년간 지원해주기 때에(석사과정포함) 네덜란드의 학생들은 학비에 대한 압박감은 없는 편이다. 학비에 대한 압박감에서 벗어나 여유를 가지고 공부한다. 중간에 여행도 가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도 하다 졸업을 한다. 그러나 기간 내에 마치지 못하면 지원받은 등록금을 환급해야 된다.

유럽물동량의 60%의 네덜란드, 그리고 교통물류학

지리적으로 네덜란드는 유럽, 중동 및 아프리카 내 시장의 요구에 부합할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이다. 실제로 네덜란드는 지리적 이점과 해양 기술로 17세기 초반 네덜란드동인도회사를 세우는 등 세계 패권국가로 거듭나기도 했다. 유럽대륙 중앙에 위치한 네덜란드의 지리적 이점은 지금도 다양한 다국적 기업들이 네덜란드에 기업 지점 및 시설을 설립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유럽전체의 물류 60%가 로테르담의 항만을 거치는 등 물류 교통강국으로서 유럽의 관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네덜란드가 유럽의 관문 역할을 수행하기까지는 지리적 요건이 중요하게 작용했지만, 이러한 지리적 요건을 제어할 수 있는 시스템적인 요인이 필요했을 터이다. 그리고 네덜란드의 물류교통 정책의 중추를 담당하고 있는 것이 바로 델프트의 교통물류학과이다. 델프트의 교통물류학과 출신의 석학들이 네덜란드의 교통물류정책을 담당하고 있다. 이들은 자원빈국에다 인구가 적은 네덜란드가 강소국(强小國)으로 발돋움 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있어 혁혁한 공을 세우고 있는 셈이다.

델프트 공과대학에서 교통물류학 박사학위를 받은 한양대 김남석 교수는 “교통물류학과는 수학적, 경제적 모형을 이용해 공학적인 프로세스를 연구한다. 국가 전체의 물류교통에 대한 모형을 짜내는 학문이다. 이를 이용한 경영물류와 같은 소프트웨어적인 분야는 로테르담의 에라스무스 대학이 유명하고, 델프트 공과대학에서는 하드웨어적인 면들을 담당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네덜란드 물류의 특징은 간척지가 많고, 댐 기술이 발달해 운하가 많다는 것이다. 네덜란드 물동량의 30%를 운하가 부담하고 있다. 대신 도로 운송의 비중이 한국에 비해서 낮다. 로테르담 항에서 스위스의 바젤(Bassel)까지 유럽내 내륙지역에서 바다까지 연결해 주는 대동맥인 셈이다”

좁은 땅덩어리에 매번 홍수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낮은 땅 네덜란드(Netherland)의 악조건이 오히려 대규모의 댐과 방파제 등의 토목기술 발달, 치수(治水) 기술의 개선으로 이어졌고, 치수 기술의 종합체인 운하의 건립은 네덜란드를 물류강국으로 발돋움 할 수 있는 배경으로 만들었다. 근본적인 약점을 개선하여 강점으로 만든 케이스이다. 그리고 이러한 약점을 극복하게 된 중심에는 델프트 공과대학교가 있었다. 델프트 공과대학교의 전신은 네덜란드 왕실 토목학교이다. 왕실 토목학교에서 축적된 댐건설 능력은 토목학의 발전과 건축학의 발전으로 이어졌고, 치수(治水)의 노하우는 운하와 항만관리로 이어져 교통물류학과로 그 궤를 같이 하고 있다.

SCI급 논문 3편 없이 박사학위 못 받아

델프트 공과대학교의 커리큘럼은 깐깐하기로 유명하다. 특히 박사학위는 다른 대학들과 차원이 달랐다. 박사학위 과정에 대해 김남석 교수는 “커리큘럼이 굉장히 빡빡하다. 졸업 요건이 SCI 논문 3건이다. 커리큘럼이 깐깐한 만큼 좋은 결과물을 낼 수 있도록 그에 걸맞은 환경을 만들어 준다. 야구선수에 비교하자면, 연구자가 저명한 논문을 쓰는 것은 타율과 같다. 그런 면에서 델프트 공과대학교는 선수의 타격 감각을 끌어 올릴 수 있도록 갈고 닦게 해주는 교육 방식을 제공한다”고 설명한다.

▲중앙도서관의 전경
연구자들이 좋은 연구 성과를 낼 수 있도록 목표의식을 고취시키고, 목표의식에 걸맞은 좋은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는 사실이 인상 깊은 대목이다. 반면 좋은 대우를 해주지만, 그에 걸맞는 자격이 되지 않으면 가차 없이 지원을 중단한다고.
김 교수는 델프트 공과대학교의 예를 들며 “대학교육은 단순히 지식전달을 넘어 잠재성을 이끌어 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소위 3등급 학생을 1등급으로 끌어주는 것, 얼마만큼 동기부여를 시켜줄 수 있는지가 ‘교육’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의 능력, 한계는 누구나 다 비슷하다. 단순히 알고 있는 지식의 양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학생이 꿈을 꾸고 동기를 가질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교육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라고 보는데, 델프트에서 그런 것들을 많이 느꼈고, 한국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데 있어 그러한 요소들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고 말했다.

건축학과 토목학이 유명한 학교답게 델프트 공과대학교는 학내의 전경과 조경이 매우 뛰어나다. 특히 델프트 공과대학교의 건물 중에서는 중앙도서관 건물이 가장 유명하다. 바닥 한쪽이 위로 올라가 기울어진 평면을 형성하고, 그 위에는 풀밭 언덕을 깔아서 날씨가 좋으면 학생들은 풀밭위에서 좋은 날씨를 만끽할 수 있다. 눈이 오면 언덕위에서 스키와 스노우 보드를 탄다. 어떤 도서관의 지붕에서 눈 내리는 겨울에 스키와 스노우 보드를 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을까? 그리고 이 잔디 지붕 밑의 공간에 바로 도서관이 자리 잡았다. 인상적인 백색의 유리 원뿔이 튀어나와 있고, 밤이 되면 마치 등대처럼 이 원뿔 안에서 빛이 새어 나온다. 아름다움과 동시에 여유가 느껴지는 디자인에서는 창의력이 샘솟는다. 건축가 마크 어빈은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세계 건축 1001’ 에서 델프트 공과대학교의 중앙도서관을 이집트의 피라미드, 아테네의 파르테논, 로마의 콜로세움, 뉴욕 크라이슬러 빌딩 등과 더불어 죽기 전에 봐야 할 세계적 건축물로 꼽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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