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원립(영화영상학과) 교수, 부산국제영화제 자막을 쏘다!

“어렸을 때부터 영화를 좋아했으니까.” 한 마디. 어떤 이유로 공업화학과 출신이 영화에 종사하게 되었느냐는 질문에 돌아온 답이다. 우문현답이다. 그가 영화에 매진하고 또 영화를 좋아하는 이들을 가르치는 자리까지 오게 된 것은 모두 영화에 대한 열정, 그 뿐이다.

우리대학 문원립(영화영상학과)교수는 부산국제영화제 창립에 숨은 공신이다. 그는 독자적으로 영화제에서 사용할 수 있는 자체자막기술인 ‘큐 타이틀’을 만들었다. ‘큐 타이틀’이란 필름에 손상을 주지 않고, 프로젝트로 자막을 쏘아 올리는 방식을 말한다.

영화제에서 상영하는 필름은 극장에서 상영되는 영화와는 다르다. 영화제 상영 필름들은 대여한 것이기 때문에 필름 위에 직접 자막을 입힐 수가 없다. 때문에 한국어 자막을 보려면 필름을 사서 자막을 입히거나 영상만 보아야 했다. 하지만 한 번에 상영하는 영화는 백여 편을 넘기에 영화를 구매하는 것에는 무리가 따랐다. 그는 이 난점을 자력으로 해결해 낸 것이다.

지금에야 부천, 전주 등 수많은 영화제들이 있지만 영화제의 초창기에는 큰 규모로 시작한 국제영화제는 부산 국제영화제가 유일했다. 하지만 처음 영화제 준비에는 많은 난점들이 있었다고.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한 번에 상영하는 영화가 100여 편을 넘어섰고 이 모든 필름은 대여했기 때문에 필름 안에 자막을 입힐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1회에는 한글자막이 없고, 영어 자막만 나오기도 하고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기 어려웠죠.”

문 교수는 당시의 상황을 되짚었다. “부산국제영화제 초창기에는 한국에서는 기술이 없어 일본에서 자막 팀이 왔어요. 그런데도 상영하는 영화들 중에 아주 적은 부분만 작업됐지요. 또 수동이라 일일이 사람이 붙어있어야 했지… 그런데도 그 비용이 1억 정도나 들었으니까.” 필름을 일일이 현상해 자막을 입히는 방법도 있었지만 시간대비 성과가 적고, 각 필름사에 허락도 맡아야하기에 실현화가 어려웠다고 한다.
교수는 당시 부산국제영화제의 열악한 상황 덕분에 얻은 잊지 못할 추억도 상기했다. “외국어로만 들으면 영화를 이해할 수가 없으니까, 사람들이 더빙을 했어요. 근데 변사를 해본 적 있는 사람들도 아니고, 더빙은 그 당시 자원봉사자들이 거의 맡았거든요. 대사하기도 바쁜데 부산 사투리까지 섞여서 이거 참, 웃겼지요. 하하 ”

이듬해 그는 97년 부천국제영화제에서 기술 감독을 맡고, 당시 시급했던 자막시스템을 직접 만들고자 다짐했다고 한다. 그는 공대 출신 동문에게 부탁을 해 ‘판타캡션’이라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다음 해 직접 타임코드를 이용해 자막처리를 빠르게 할 수 있는 '큐 타이틀'을 제작했다.
순수 국내기술력으로 필름에 손상을 주지 않고 스크린에 프로젝트 화면으로 자막을 쏘아 올리는 방식을 개발한 것이다. 이 프로그램은 지금 국내 대부분의 국제영화제에 쓰이고 있다. 그는 자신의 작품 제작에도 한창이다. 그의 작품이 궁금하다면 제1회 부산국제영화제에 상영되었던 ‘지하철’이나 2008년 제작한 다큐멘터리 ‘비’를 추천한다.

변지영 기자 bjy6820@dongguk.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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