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間(인간)’의 해후

  ‘선생님... 선생님’ 아이들의 차분한 울먹임 소리. 곱고 착한 소녀들. 나는 왈칵 솟는 눈물을 주체치 못했다. 단정한 흰 칼라에 곱게 빗은 머릿결을 흔들거리며 大林女中(대림여중) 1학년 2반 ‘우리애’들이 어깨를 들먹이고 있었다. 한 가지 신기한 것은 내게도 아직까지 흘릴 눈물이 남아 있다는 기막힌 사실이었다.
  4월 22일, 우리들 일행 8명은 스쿨버스를 재촉해서 영등포구 독산동에 所在(소재)한 대림여중에 닿았다. 교장선생님의 同門(동문)이어서 우선 마음이 느긋할 수가 있었다. 교무실 분위기에 익숙지 못하고 다른 선생님들과의 갈등을 이겨내지 못하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은 학교에 도착하자마자 어리석은 생각이었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신록의 푸름을 먹고 깨끗하게 단장한 교정, 모든 선생님들과 학생들의 꾸밈없는 순박한 웃음들이 가슴으로 밀려 왔기 때문이었다. 놀라운 것은 모든 선생님들이 교장선생님으로부터 書藝(서예)를 강습 받고, 매주 몇 번씩 꽃꽂이에 열심인 교무실풍경이었다.
  첫째 주는 학교장의 운영방침과 학교소개, 각 담당부서 주임선생님들의 안내로 학교행정을 파악할 수가 있었다. 둘째 週(주)는 계속적인 수업참관, 그리고 조례·종례를 실시했다. 갑자기 아이들의 면전에 서려니 또 다른 서먹서먹함을 느꼈지만 학생들의 다정다감한 표정들로 인해서 호흡을 맞출 수가 있었다. 이때부터 담임선생님의 어드바이스로 부분적인 면담을 시작 했다. 문제아·저능아들의 학교 및 가정생활은 기실 심각한 것이었다. 다른 학생을 위해서라도 특수교육이 불가피하다는 衆論(중론)이었고 우리들 일행 또한 同感(동감)이었다.
  어버이날은 정말 깜짝 놀랄 정도의 꽃 세례를 받았는데 함께 간 한 女敎生(여교생)은 온통 꽃으로 옷을 해 입은 듯 가슴에 수십송이를 달아서 한참이나 즐거워했다.
  ‘선생님, 제꺼만 달고 있어야 해요!’라는 윽박지름과 함께 출근시간에 학생들이 교문입구로부터 교무실입구까지 두 줄로 꽉 메워서 출근하는 교직원들에게 꽃을 달아주는 모습은 우리들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셋째 週(주)는 실제 수업이 있었다. 고달픈 줄 몰랐다. 수업준비 때문에 지도교사인 安先生(안선생)의 신경을 몹시 긁었는데 미안한 생각이 앞선다.
  반성회 겸 만찬회에서는 지도교사들의 칭찬이 너무 심해서 오히려 한쪽가슴이 켕길 정도로 부끄럽기까지 했다.
  5월 17일은 국어과 연구수업일이었다. 괘도를 작성하랴, 테이프에 시낭송을 담으랴 정신없었지만 지도교사 앞에서 연습하고 다른 반에 들어가서 수업을 했는데도 영 서툴기 그지없었다.
  각본대로 얼추 마쳐가는데 이것 참, 속이 탈일이 생겼다. 준비한건 다 가르쳤고 지긋이 폼을 잡고 있는데 아직까지 5분이 남았던 것이다. 요놈의 5분, 5분. 할 수없이 복습을 해나가는데 각본에 없는 걸 실시하니 정말 가랑이가 근지러워 오고 발바닥이 간질간질한 게 말이 아니었다. ‘반장, 오늘 수업 끝!’ 호기롭게 지시해서 반장의 구령하에 인사를 받고 교재를 덮는 순간 ‘딩동댕’ 울리는 구원의 차임벨소리, 정말 기막힌 순간이었다.
  마지막 종례시간. 아침교직원회의에서 고별인사를 드릴 때, 解渴(해갈)을 예고하는 창밖의 날씨는 잿빛이었는데 아이들과의 헤어지는 자리는 참기 어려운 그 무엇이 치밀었다. 신록 20일 토요일 오후. 담임선생님의 ‘그동안 여러분들을 한 달 동안 가르쳐 주신 교생선생님께서...’ 하는 말이 시작되기 무섭게 70명의 또렷한 동공들이 나의 뇌리를 파고들었다. 주마등처럼, 그래, 꿈결처럼 지난 일들이 아련했다. 청소시간에 개미처럼 움직이던 조그맣고 하얀 청소복들, 소풍 때 함께 어우러져 노닐던 기억, 체육대회 때 피구시합에 져서 그렇게 섧게 울던 아이들, ‘선생님, 공부 가르쳐 줘요...’ 방과후 고사리손에 나포되어 끌려가던 일, 자습시간에 국어담당 주제에 수학·물상·지리를 가르친답시고 낑낑대던 일, ‘家政(가정)’을 가르쳐달라고 어거지떼를 쓰던 눈이 예쁜 그 애들. 점심시간이면 신록의 꽃들이 즐비한 花園(화원)에서 질문거리를 장만해서 두 눈을 반들거리며 기다리던 소녀들, 쑥스럽지만 나오는 눈물을 주체치 못했다. ‘나는 남자가 우는 건 처음 보았어요’라고 썼던 어느 학생의 편지, 그리고 1학년 2반 일동이 건네준 편지 속에 담긴 노란빛 명찰에 ‘대림여중 1학년 2반 71번 김강태’ 글귀와 학교뱃지·학년뱃지들.
  학생들에게 그들의 꿈을 가꿔주는 작업이 매우 필요한 것 같았다. 情(정)이 요구됐다. 그애들의 말없는 눈물은 다만 그걸 말해 주었다. 그리고 교장·교감선생님과 음악선생님, 상담실 선생님들의 어버이같은 친근감에 정말 고귀한 인간의 만남임을 느낄 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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