東國文學(동국문학)의 鷄肋(계륵)

  傳統(전통)은 계승, 發展(발전)되어야 한다. 傳統(전통)은 한 집단이나 또는 구성원의 가장 깊은 內部(내부)에서 양식 있는 部流(부류)의 융성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現存(현존)해야 한다.
  우리 東國大學(동국대학)은 自他(자타)가 公認(공인)하듯 佛敎(불교)를 理念(이념)으로 文學(문학)의 뿌리 깊은 傳統(전통)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보다 긍정적으로 오늘날까지 우리 東岳(동악)에 자리해왔지만 기실은 原初的(원초적)인 결합에서 오는 不安(불안)과 미흡 미온적인 태도로 말미암아 줄기가 강하면서도 이파리 섬약한 모습으로 자라왔던 것을 부인할 수가 없다. 더구나 이러한 生長(생장)이 ‘東國文學(동국문학)의 鷄肋(계륵)’이라고 판단될 때는, 東國文學徒(동국문학도)들의 요원한 숙제로서 마땅히 척결해야 할 분명한 명분이 있다고 본다.
  실상 이데올로기나 이념을 無時(무시)로 云云(운운)하며 전통의 진의를 왜곡, 날조하여 자신의 자세정립을 外面(외면), 小市民的(소시민적)이고 빛 좋은 개살구格(격)인 행동반경을 확장시키려 한다는 맹점이 우리들 思考(사고)속에 도사려 있음이 지적되고 있다. 그렇다면 도대체 우리의 內部(내부)는 지금 어떠한 骨材(골재)로 형성되어 있는가. 또한 무엇이 문제인가.
  현재 우리 학교의 경우만 하더라도 ‘佛敎(불교)와 文學(문학)’을 기치로 하여 ‘文學(문학)속에서의 佛敎(불교)’ ‘佛敎(불교)속에서의 文學(문학)’ 등의 새로운 방향모색을 하고 있음은 천만다행이 아닐 수 없다. 다시금 맹렬한 東國文學中興(동국문학중흥)의 胎動(태동)을 느끼게 하는 學校當局(학교당국)의 배려가 실로 반가울 수밖에 없다. 先輩文人(선배문인)들이 韓國文壇(한국문단)을 주름잡던 時代(시대)가 다시금 到來(도래)한 것 같은 느긋함에 기쁜 전율을 떨쳐 버릴 수가 없다. 그 業績(업적)을 그냥 간과할 수 없는 만큼 최근 10년 남짓 東國文學(동국문학)의 쇠퇴기가 정말 큰 문제로 대두됨을 自覺(자각)해야 되겠다.
  傳統(전통)이 보수성과 급진성으로 구별된다는 어느 論者(논자)의 지적이 一見(일견) 타당성 있게 받아들여짐을 전제할 때, 적어도 文學(문학)이 갖는 속성 중에서 ‘급진적인 전통’의 공통집합만을 취택, 指向(지향)해야 한다는 말은 비상하다. 이러한 안목으로 韓國(한국)의 文學現實(문학현실)을 직시하는 관찰력도 문제가 된다. 이 현실은 우리 東國文學(동국문학)의 나이와도 밀접한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이에 학교당국에 다음과 같은 몇 가지를 提言(제언)한다. 量(양)보다는 質(질)을 추구하며 소수정예를 키워나감을 원칙으로 한다.
  우선 ① ‘東國文學史(동국문학사)’의 정리가 시도되어야 한다. 오늘날 동국문학사가 곧 韓國文學史(한국문학사)임을 感知(감지)할 때 이 작업은 과감하게 시행되어야 할 것이다. 作品(작품)과 人間(인간)을 엄밀히 분석하여 준열하고도 的確(적확)한 평가를 내려서 솔직한 메스질이 필요하다. 그리고 망설이는 者(자)에게는 혹독한 질책과 매질로서 早老(조로)한 작가와 문학청년들을 이끌어야 한다. 물론 이러한 진통을 감내할 ②産室(산실)과 체계적인 프로젝트가 준비되어야 하겠다. 詩(시)·散文(산문)·評論(평론)·古典(고전)·語文學分科(어문학분과) 등의 전공분야가 확립되어서 전문적인 학습이 실시되는 것이다. 물론 文藝創作(문예창작) 뿐만 아니라 哲學(철학)·語學(어학)·論理學(논리학)등의 學問(학문)도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校內(교내)의 축제기간을 피해서 가을학기쯤에 그동안의 實技作品(실기작품)들을 선보임과 함께 거대한 문학잔치가 종합적으로 펼쳐질 수 있는 ③‘文學(문학)의 달’을 한 달 동안 제정하는 것도 바람직하다. 여기에는 同門文人(동문문인)과 재학생들이 대거 참여해서 東國文學(동국문학)의 向方(향방)에 대한 아낌없는 의사교환이 요구된다. 각 分科(분과)마다 캐비넷이 구성되어서 동국문학의 앞날을 전문적으로 구상케 해야 한다.
  ④그리고 매년 여름마다 실시하는 文藝創作(문예창작)교실의 실질적이고 전폭적인 지원 확대가 시급히 요망된다. 교내 써클인 東國文學會(동국문학회)가 주관하지만 해마다 추진위원들이 흘리는 피땀을 고려한다면 學校當局(학교당국)의 배려 없이는 앞으로 지속되기가 힘들 것 같다. 워크숍장소도 한곳으로 지정해서 安定(안정)된 創作敎室(창작교실)이 되도록 해야겠다. 다음으로 ⑤同門(동문)문인들과의 긴밀한 유대관계가 있어야겠다. 校內(교내)의 교수진은 물론 문단의 重鎭(중진)이나 問題作家(문제작가)들을 수시로 초빙, 강연회나 대화의 광장이 마련되는 실질적인 交流(교류)가 필요하다. 현재 ‘東國文學人會(동국문학인회)’라는 선배문인들의 모임이 있지만 사실상 재정난으로 인하여 擧校的(거교적)인 行事(행사)는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동국문학인회의 본부를 校內(교내)에 두는 방법도 생각할 수 있다.
  ⑥그리고 반드시 기념비나 문인비를 세워야 한다는 점을 요망하고 싶다. 이미 우리 文學史(문학사)에 있어서 확고한 기반을 다진 萬海(만해) 无涯(무애) 芝薰(지훈)의 문인비와 未堂(미당)의 업적을 길이 보존할 기념비 정도는 이미 세워져 있어야 한다. 그래서 그 일대를 聖域化(성역화)하자는 衆論(중론)은 현재 東國文學(동국문학)의 앞날을 걱정하는 사람들 사이에 압도적인 반항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여기서 우리 東國文學(동국문학)의 現場(현장)을 찾는, 선배의 고귀한 얼을 배울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된다.
  과욕이지만 ⑦당선자에게 특전의 폭을 넓혀야 하겠다. (이 점은 高校生(고교생) 文學(문학)콩쿠르도 마찬가지이다.) 학술상 賞金(상금)을 대폭 늘려서 권위 있는 東國文學(동국문학)으로 발돋움 시키는 것도 중요하다.
  ⑧또 發表詩(발표시) (紙(지))面(면)의 확장도 시급한 課題(과제)로 남아있다. 東大新聞(동대신문)을 8面(면)으로 增面(증면)한다든지 또한 純粹文藝誌(순수문예지)의 發刊(발간)도 서둘러야 한다. 그나마 순수문예지로 명맥을 이어오던 ‘東國文學(동국문학)’誌(지)도 재정난으로 무려 2년간을 끌어오다 8·9輯(집) 合本(합본)을 내더니 급기야는 10輯(집) 發刊(발간)마저도 중단된 상태에 있다. 문제는 이러한 권위 있는 문학지가 어째서 학교의 큰 行事(행사)가 아닌 單科大(단과대) 주관으로 편찬케 하는지 모를 일이다.
  어찌 단과대학의 예산을 헐어서 純粹文藝誌(순수문예지)를 펴낼 생각을 한단 말인가. 그리고 ‘東國詩集(동국시집)’의 정기적인 續刊(속간)도 서둘러야 겠다. 그러한 일련의 作業(작업)으로 ⑨校誌(교지)와 文學誌(문학지)의 別冊(별책) 同時發刊(동시발간)도 고려할 수 있다. 校誌(교지)는 雜誌(잡지)로서 文藝誌(문예지)는 純粹文藝創作物(순수문예창작물)로서 存立(존립)시켜야 할 것이다. 이렇게 된다면 疎外(소외)되어 있는 文學志望生(문학지망생)의 發掘(발굴)도 가능해진다. 그들에게 용기와 믿음을 주어서 發表(발표)할 수 있는 空間(공간)을 제시해야 한다. 발표지면이 적으면 筆陣(필진)이 자연히 特定人(특정인)에게 偏重(편중)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우수한 作品(작품)을 쓰는 우수한 人材(인재)를 밖으로 進出(진출)시켜야 한다. ⑩新入生(신입생) 선발시에 특별전형으로 입학시킨다든지 재학셍에게는 ‘東國文學賞(동국문학상)을 제정하여 창작우수자에게 장학금을 수여하는 것도 하나의 방편이 되겠다. (東大新聞(동대신문)·李昌培(이창배)교수 ‘文學傳統(문학전통)의 復活(부활))참조) ⑪그리고 創作實技(창작실기)에 필요한 커리큘럼에도 신경을 써야 하며 교수진의 처우문제개선도 필요하다. 학교당국이 이상으로 열거한 11가지를 수용할 것을 前提(전제), 다음은 우리 文學徒(문학도)들이 반드시 가져야할 자세와 현황을 이야기해보겠다. 우선 자기나름대로 참다운 覺醒(각성)을 할 때가 왔다고 본다. 간혹 精神的(정신적) 貧困(빈곤)과 남루 때문에 결성되는 文學(문학)써클은 그 生命(생명)이 길지 못했다. 그리고 一部(일부) 文學徒(문학도)들이 너무 몰지각할 정도로 오만하다는 점도 들 수 있다. 자만이 너무 지나치다. 서로 자신의 쥐꼬리를 재보아야 그 길이가 그 길이일 텐데 停滯(정체)와 踏步狀態(답보상태)에서 스스로가 打開(타개)해야 할 方法(방법)을 모색하는 기미가 쇠퇴된 것 같다.
  극복하지 못할 대상이나 여건에 부딪친 것도 아니면서 極限狀況(극한상황)의 을씨년스런 樣相(양상)에서 허덕이는 이유는 무엇인가. 혹시 早老(조로)한 것은 아닌가. 능력 있는 문학청년들이 詩的(시적), 散文的(산문적), 思考力(사고력) 배양을 도외시하는 것은 아닌지. 우리의 혈맥에 맥맥히 흐르는 우리만의 文學的(문학적) 분위기가 혹시 다른 방향으로 앗기거나 탕진되는 것은 아닌가. 새삼 돌이켜 생각할 겨를도 없지만 정말 우리 東國文學(동국문학)의 찬란한 전통은 지금 어디로 갔는가. 혹시 우리는 그동안 너무 나태하지 않았는가. 오만할 정도였던 血氣方壯(혈기방장)한 ‘韓國文學(한국문학)의 主流(주류)’는 어디로 가고 ‘딜레탕티스트들의 함몰’마저 눈앞에 닥쳤단 말인가.
  東國文學(동국문학)의 風土(풍토), 이 현실을 직관하자. 그리고 부끄럽게 의식하자. 지금부터 출범이다. 東國文學(동국문학)의 傳統(전통)에만 급급, 황홀해 할 수만은 없다. 진실된 ‘表現(표현)’과 올바른 ‘傳達(전달)’을 위해서 精髓(정수)를 일집어내어 정예화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것만이 우리 東國文學(동국문학)의 살길이요, 路線(노선)이다. 뿌리 깊은 나무는 그 잎새의 빛깔이 퇴색되지 않는다.
  진실로 원하노니 학교당국의 정성 없이는 이 구멍을 메울 도리가 없다. 이것은 名正言順(명정언순)이요 眞實(진실)이다. 어쩐지 東國文學(동국문학)에 있어 ‘鷄肋(계륵)’이란 表題(표제)는 우리에게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뜯기고 뜯어먹을 살코기가 분명히 우리 눈앞에서 꿈틀거리고 있음에서다.

 

저작권자 © 대학미디어센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