東大美術(동대미술),ㅡ어디에 있나

  예술작품은 한 인간의 內的探究(내적탐구)의 結實(결실)이다. 이 결실은 예술가의 美(미)를 향한 끊임없는 探究意志(탐구의지)없이는 참되게 이루어질 수 없다. 이 말은 美(미)란 감각적인 현란함이 아니라, 마음에 의해 생겨나는 광휘, 즉 精神(정신)의 所産(소산)임을 암시한다.
  大學(대학)에서 美術(미술)을 전공하고 있다는 사실은 他學問(타학문)과는 달리 바로 각 개인의 어떤 ‘造形(조형)에의 意志(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전반적으로 볼 때, 이번 美術科作品展(미술과작품전) 첫인상은 수준의 高下(고하)를 떠나, 作品製作(작품제작)에 임한 學生 모두의 열성으로 각자의 作品世界(작품세계)를 엮었다는 점이다.
  향的(적)으로도 작년 수준을 훨씬 넘어 G건물 2층 전시 空間(공간)을 메운 4백여점의 작품이 그것을 말해주고도 남는다. 또한 그동안 이 美展(미전)과는 별도로 제작되어온 寫眞(사진), 陶磁器(도자기) 등 2개 부문이 다시 등장, 展示內容(전시내용)을 알차게 했다고 할 수 있다.
  質的(질적)으로 볼 때, 가장 두드러진 수확은 彫塑(조소)부분인 듯.
  이점원(4)君(군)의 ‘알에서 껍질로’, 진철문(4)君(군)의 ‘神(신)’ 등 총 60여점에 달하는 이 부문은, 材料(재료) 또한 기본 質料(질료)에서 탈피, 브론즈를 비롯한 木材(목재)․철조․플라스틱을 다양하게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東大美展(동대미전)의 전체적인 특징은 非具象(비구상)계열이 저조하다는 評(평)과 더불어 조소부문도 여기서 벗어나지 못한 맹점이 있다.
  구상적인 것보다 質料(질료)로서의 오보제化(화)를 추구하는 앵포르멜 계열의 作品(작품)도 어느 정도 눈에 띄었으면 했다. 이것 역시 現代美術(현대미술)의 특성으로 기초조형을 등한시, 나열에만 그칠 위험성을 충분히 극복할 여건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大學美術(대학미술)은 무엇보다 學生(학생) 各個人(각개인)은 學生나름의 實驗意識(실험의식) 내지 歷史意識(역사의식)이 내포된 內的表出(내적표출)이기 때문이다.
  거기에서 우리는 그의 예술적 가능성을 엿 볼 수 있는 것이다.
  西洋畵(서양화)․東洋畵(동양화)에서 아쉬웠던 것은 學生作品(학생작품)이란 느낌을 받지 못했던 점이다. ‘實驗(실험)’이란 大學(대학)만이 가진 유일한 內的(내적) 自由(자유)이다. 大學(대학)4년 동안 충실하고 견고한 實驗性(실험성)을 기반으로 새로운 造形世界(조형세계)를 추구한 흔적을 기대하기 때문이라 하겠다. 아무리 ‘習作(습작)’을 많이 했다 해도 확고한 造形(조형)이나 歷史意識(역사의식)이 결여되었다면 그것은 실패한 일개의 習作(습작)에 불과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이것은 학생 개인의 문제만은 아니다. 지도하는 교수의 資質(자질), 혹은 趨向(추향)문제도 따른다. 소위 말하는 自己亞流(자기아류)를 형성하는 교수도 없지 않다면, 그것은 자신은 물론, 韓國美術(한국미술)의 미래에도 커다란 문제가 될 것이다.
  특히 西洋畵(서양화)는 다양한 技法(기법), 形態(형태)의 해체 및 재구성 등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부문이다. 지도교수는 이러한 기본방향을 감안 학생의 재질에 따라 최대한으로 살려줘야 마땅할 것이다.
  韓國美術(한국미술)의 새로운 개척분야로 본교 美術科(미술과)가 자부하는 점은 傳統(전통)을 基低(기저)로 새로운 미술에 활력을 넣을 佛敎古美術部門(불교고미술부문)이라 하겠다.
  김창균, 문연순, 이성환 등의 60여점이 전시되었는데 이 불교 고미술은 본교의 이미지 부각에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또한 韓國美術(한국미술)의 향방에도 새로운 미개척분야로 연구되어야 할 가치가 있다고 본다. 옛 조형전통을 기반으로 하여 現代美術(현대미술)분야는 한국미술의 새로운 章(장)을 담당하고도 남는다고 하겠다.
  歷史(역사)가 日淺(일천)함에도 불구하고, 一個(일개) 科(과)로서 단과대학에 버금가는 大型展示(대형전시)를 한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전시가 대형화되었다는 것은 교수들의 적극적인 지도와 학생들의 參與意識(참여의식)이 고조되었다는 것을 말한다. 미술과의 李芬(이분)조교는 ‘그동안 밤샘을 하루 이틀 한 게 아니었어요. 정말 모두 미술만 위해 사는 사람들처럼 열심이었어요’하고 학생들의 노고를 대신 털어 놓는다.
  이러한 열의를 ‘量(양)이 아닌 質(질)’로 돌린다면 東大美術(동대미술)의 앞날은 어둡지만은 않다.
  ‘전시를 위한 美術(미술)’ ‘質(질)보다 量(양)’을 앞세우지 않고, ‘小型展示(소형전시)(小品展(소품전))라도 알차고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밑바탕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미전에 되었으면....’하고 國敎科(국교과) 김미경양은 관람소감을 말하기도.
  해가 거듭 될수록, 5회 전시회로 끝날 美展(미전)이 아닌 이상, 그것이 객관적 문제로 등장한 것은 시정되어야만 한다. 그것이 설사 다른 문제를 야기시킨다 하더라도 學生(학생), 交手(교수) 모두가 힘을 합해 고치도록 노력해야 한다.
  여기서 大學美術(대학미술)만이 공통적으로 가지는 精神的(정신적) 자유가 성립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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