哨兵(초병)의 告別(고별)

  우리 중의 하나가 질문이 있다며 손을 들었다. 그가 갑자기 큰 소리를 질렀기 때문에 모두는 저절로 귀를 기울였다. 그는 믿음을 갖지 않았음에도 세례를 받아야 하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당연히 받아야 한다고 보스는 말했다. 이것을 기회로 믿음을 갖게 되리라는 것이었다. 그러자 또 하나가 소리쳤다. 그는 믿음을 갖기 싫으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물었다. 보스는 잠시 생각하더니 그럴 리가 없다고 했다. 그는 하기 싫다고 그만 두어 버리는 정도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지 않느냐고 반문을 했다. 질문했던 그는 믿고 말고는 아무래도 자유가 아니겠느냐며 우물거렸다. 숨을 들여 쉬는 보스의 옷깃을 군목(軍牧) 하나가 슬그머니 잡아당겼다. 군목들은 우리가 모두 모이자 건물에서 나와 옆계단을 내려오며 하던 얘기를 마저 끝내서 유쾌하다는 듯 서로 웃었었다. 그들은 미소를 지은 채 그 문답을 듣고 있었던 것이다. 예의 군목은 보스에게 무엇인지를 말하며 두 손으로 한웅큼의 모양을 만들어 따로 놓는 시늉을 해 보이자 보스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보스가 두어마디 더 묻자 그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보스는 우리를 향해 빠르게 지껄이기 시작했다. 세례를 원하지 않으면 따로 모여서도 좋다는 것이었다. 그때 관사쪽에선 그녀를 태운 귀여운 지이프가 꼬리에 먼지를 달고서 언덕길을 굴려 내려왔다. 우리의 눈길은 자연히 그녀쪽으로 향했다. 만약 어떤 보스가 그것을 방해했다면 그는 굉장한 비난을 받았을 것이다.
  그녀는 차에서 내려 군목과 보스 하나에게 인사를 건네였고 묵묵히 서 있는 우리 쪽에는 놀랐다는 듯한 어깨짓을 해보이고 살짝 웃어주었다. 보스들의 황장한 영접을 받던 그녀의 미소와 우리들 향한 웃음을 동시에 본 우리들은 주춤했다. 그녀와 그들은 여전히 인사를 주거니 받거니 했는데 젊은 보스들은 수펄마냥 교태를 부렸다. 그녀 앞에서의 보스들은―특히 젊은 보스들은 묘하게도 그들을 우리와 비교시켜 우리를 낙심하게 만들었다.
  우리는 각자 그녀를 간직하고 있었다. 자기만의 비밀로서 그녀를 소유했다. 황사 속에서 짓던 그녀의 미소는 가슴 지릿하게 아껴왔던 바였다. 그러나 우리는 본능적으로 어떤 위험을 느꼈다. 그녀는 어느 누구에게도 소유당해 있지 않으면서 우리 모두를 소유하려 하고 있다는 것을….
  보스의 지혜로도 눈치 채이지 않는 천연스럼이 있었다. 갑자기 분연한 기운과 함께 우리는 행진하는 병정개미처럼 흩어져버렸다. 우리의 행동은 실연같은 파국을 의미했다. 노여움이었다. 그것이 또한 우리를 황홀하게 했다.
  우리가 흩어져버리자 지휘를 맡았던 보스가 가장 당황을 했다. 군목들도 손을 앞으로 마주 쥐었다. 그녀는 흠칫 놀라 얼굴이 굳어졌다. 불려간 보스가 무어라 설명을 했다. 바보같이―. 그녀는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보스들이 우리에게 절실히 요구하는 것은 예의―즉 질서였다. 그들은 우리가 그들의 의사를 언제고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길 원했다. 우리의 준비가 그렇지 못하면 그들은 아무런 명령도 말할 수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녀로부터 무언의 꾸지람을 들은 보스는 우리를 향해 돌아섰다. 그는 입을 열자 말이 자꾸 빨라졌다. 다른 보스들은 손가락을 꺾는다든가 그녀를 흘끗거리며 서성였다. 보스는 세례의 필요성을 말하는 중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다른 보스들은 맥이 빠진 듯했다. 예의 보스는 그들을 흘깃 쳐다보더니 한 가지 고백을 하겠다고 말했다. 자기도 이번 기회에 우리와 같이 세례를 받을 작정이었다는 것이었다. 세례는 기도를 올린 누구나가 받아야 할 어쩔 수 없는 도리라고도 했다. 그는 다시 그의 동료들을 돌아보았다. 그의 얼굴은 창백해졌다. 그는 여러분들이 세례를 받지 않으려는 이유가 무엇이겠느냐고 물었다. 그럴 이유가 없다고도 했다. 또 세례를 받는대서 당장 어떻게 되는 것도 아니라고 덧붙였다. 우리가 여전히 서있자 보스 하나가 단위에서 내려왔다. 다른 보스들은 무슨 일인가 하는 얼굴이더니 곧 그의 뒤를 따라 내려왔다. 몇은 주저할 여유도 없이 깡충 뛰어 내리기도 했다. 그들은 내친김이란 듯 우리 앞에서 무릎까지 꿇어보였다. 지휘를 하던 보스는 얼굴이 그제야 풀려서 어쩌겠느냐는 교활한 안도의 표정으로 우리를 내려다 봤다. 그러나 우리는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보스들이 단위에서 우리와 같은 높이의 땅으로 내려왔으나 우리는 감격하지 않았다. 꿇어앉은 보스들의 머리가 술렁거렸다. 단위의 보스는 다시 창백해지더니 이 새끼들 모두 그 자리에 꿇어 앉아 하고 소리쳤다. 놀라운 포효였다. 우리는 모두 무릎을 꿇었다.
  보스가 돌아서서 이제부터 세례가 시작되겠다는 보고를 했을 때 단위에는 그녀 하나만 서 있을 뿐 다섯의 군목들이 손에 물을 적시는 중이었다.
  의식이 진행되자 가느다란 한숨 같은 소요가 번졌다. 군목들은 인간이 아닌 죽어버린 듯한 얼굴로 하나 하나의 머리를 짚어나갔다. 점점 다가오는 그림자 같은 그들은 누구인가? 그 무표정한 권위가 우리에게 주는 위안은 무엇인가? 그들은 검고 풍만한 긴 척추동물의 동작처럼 느릿느릿 그러나 순식간에 눈앞까지 다가왔다. 그 손에 짚힌 머리는 굳어서 바르르 떨다가 뒤에 남겨졌다. 잿빛 얼굴은 입 속에서 무어라 주문을 날름거리며 순간을 음미하다가 금방 옆으로 손을 옮겼다. 그들로부터 발생한 오금과 턱이 굳게 하는 차거운 심정으로 그녀를 찾았으나 그녀는 굳어있었다. 그녀는 영원히 웃을 수 없이 되어버린 것인가? 그 표정은 감지할 수 없는 석고상의 그것이었다. 아름답던 그녀의 얼굴은 조그마한 여유도 나눠 주지를 못했다. 모든 의식이 내부로 응집되어 굳어버린 소금기둥에 불과했다. 그녀가 걸친 검은 옷에 눈이 부셨다. 나는 악치듯 일어나 천천히 무릎의 먼지를 털었다. 얼굴 높이에서는 바람이 불고 있었다. 의식(儀式)은 햇빛 아래가 아닌 밀교의 그것처럼 은밀하게 행해져야 할 성질의 것이었다. 도대체 빛나는 태양아래서 무엇을 용서받을 것이 있다는 말인가. 나는 끝내 그러고 있을 수가 없었다. 휴―한숨이 나왔다.
<끝>
 

저작권자 © 대학미디어센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