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가고프다. 왜 이렇게 허기가 지는지 몰라. 깊은 허기 위로 졸리운 눈꺼풀이 덮어씌운다. 눈을 떠야지. 정신을 차려야 해. 흐려지는 意識(의식)속에서도 自信(자신)과 박력과 예지를 함께한 젊은 敎授(교수)님의 목소리가 귓속에 맴돈다.
  ‘Professor…좀 더 유식한 말로 해보면…’
  그 교수님의 안광은 번쩍이며 빛나고 세치 혀는 고고의 힘을 갖고 있었다.
  진열장의 현란한 불빛에 눌려 흩어지는 어둠속 교통순경의 바쁜 호루라기 소리를 들으며, 달리는 버스를 쫓아 나도 함께 달린다. 이것도 치열한 生存競爭(생존경쟁)이라고 할 수 있겠지, 누군가 그러셨어.
  “선택을 해야 만이 살아나갈 수 있는 세상이다. 깨면서부터 우리는 바로 선택을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된다”
  탈 것인가, 더 기다릴 것인가. 그러나 나는 포기하고 짐짝처럼 버스에 몸을 싣는다. 언제나 이 時間(시간)이면 취한 사람들과 일에 지친 사람들로 버스는 만원이었다.
  나는 요술담요를 타고 있었다. 낮게는 지붕 위를 스치며 높게는 구름 위를 나르는 것이 스릴도 있고 아주 아주 즐거웠다. 바람은 시원하고 가고 싶은 곳을 마음대로 갈 수 있으며 발아래 경치에 心醉(심취)하기도 하였다. 저 아래 朴校長(박교장)선생님도 계시겠지. 보고 싶다. 박교장선생님을 뵙고 싶다. 사람들은 마치 개미처럼 모여 있기도 하고 떼 지어 움직이기도 하였으나 全體(전체)가 한 덩어리 약식(藥食)같기도 하였다. 장난감 같은 차에서 내려 장난감 같은 집속으로 드나들기도 하였다. 나는 그들의 머리위로 급강하하였다가 橫飛 (횡비)하고 斜飛(사비)하여 올라가며 그들을 놀려주곤 하였다. 아주 재미있는 데도 일말의 不安(불안)은 가시지 않았다.
  아차 하는 순간에 기어코 重心(중심)을 잃고 나는 담요에서 미끄러졌다. 갑자기 세상은 어두워지고 눈앞이 깜깜하여 나는 소리 질렀다.
  “아! 장가도 못가고 죽는 구나…” 소리는 메아리가 되어 온통 식은땀으로 축축하였다. 6時(시), 自鳴鐘(자명종)이 ‘기상’소리로 요란스레 울린다. 3년여 지긋지긋했던 기상소리, 마지막 불침번 소리를 원수같이 생각하며 모포 속으로 기어 들어가던 그때처럼 이불을 덮어 쓰지만… 지난날의 숱한 失手(실수)로 나는 더 이상 休息(휴식)을 취할 시간을 갖고 있지 못하였다.
  아침공기는 상쾌하고, 실눈을 살풋이 뜨고 푸른빛을 내는 화초들에 물을 주며 나는 어제의 피로와 오늘 닥친 피로를 함께 잊는다. ‘생명의 神秘(신비)’가 피부로 와 느껴진다. 겨우내, 마치 죽은 나무 같던 누른 색깔에서 어쩌면 저토록 청순한 生命(생명)의 및을 뿜어 낼 수 있을까.
  많다. 映畵(영화)제목 같지만 거리는 만원이었다. 정말 너무 많다. 낚시점에서 팔던 미끼, 구더기들이 생각났는데 그것을 한참 보고 있으면 사방연속무늬를 보는듯한 착각을 일으키게도 하였다. 나도 그 틈에 끼어 식량을 구한다. 초봄의 싱그러움, 그것도 쏟아지는 매연과, 먼지와, 사람들이 뿜어내는 탄산가스의 오염과, 빽빽이 密集(밀집)해 있는 빌딩 群(군)속에서, 서있을 틈을 갖지 못한다. 달래와 냉이와 씀바귀와 햇볕에 따스해진 논물속의 우렁이를 건지던 추억은 아스라히 멀다. 다만 미스鄭(정)의 분홍빛 원피스에서 진달래의 香氣(향기)를 맡는다.
  文明(문명)의 利器(이기), 전화벨소리는 종일이 짧다고 울린다.
  “어찌 된 겁니까 잠시 반짝이다가 연일 下終價(하종가)니…”
  “좀 기다려요. 자금이 달리는 건 그쪽뿐이 아니란 말이오.”
  “결재기일이 3개월이면 너무 길어요. 좀 봐주셔야지 어쩝니까.”
  “아니 무슨 原絲(원사)가 30%나 뀐단 말이오?”
  손끝에서 냄새가 난다. 무슨 냄새더라 뒷간에서 잘못 닦았나? 아닌데…. 아하, 쓸개냄샌가 보다. 어머니는 쓸개가 터지면 먹을 수 없다고 조심조심 내장을 들어내셨는데… 왜 쓸개가 터졌을까. 아버님은 닭고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으셨다. 언제나 고기는 건져 내 그릇 속에 넣어주셨으니까. 아버님은 순두부에 소주를 좋아하셨지. 그 바람에 어머니가 골탕 먹었지만… 아냐, 쐬주는 넷째 할아버지가 더 좋아하셨어. 바지가랭이에 방뇨를 하면서 엎어져 주무시기도 하였으니까.
  “야, 학교 안가니?”
  나는 깜짝 놀라 시계를 본다. 5시가 벌써 넘었다. 가자 가서 고명한 교수님의 지도편달을 받자. 촘촘히 삐져나오는 머리칼 속에다 그분들의 지식을 담자. 게걸스레 신발을 신고 열한 번째 버스를 탄다.
  東岳(동악)이라… 동악이든 南岳(남악)이든, 이놈의 언덕은 너무 높아, 그래도 가야지, Rock climbing 하는 기분으로, 山(산)을 타는 즐거움으로 올라가자.
  헐떡이며 라면을 먹는다. 최소한도의 비용과 최소한도의 서비스로 최소한도 끊여내진 라면은 살아있는 내 위장을 만족시킨다. 아니 만족을 하자.
  다정한 얼굴들이 모여 있다. 자칫 잊혀졌던 얼굴들 같은, 그래서 더욱 반가운지도 모르는 얼굴들 위로 어제처럼 다정한 교수님의 모습이 어린양을 이끄는 예수처럼 어린다. 淑(숙)아의 얼굴이 그 위에 겹쳐진다. 귀엽고 똑똑했던 아이. 곁에서는 팔짱을 끼어주던 아이, 안아 올리면 열린 듯 닫혀지던 입술과 눈, 그 아인 ‘To Sir with Love'를 좋아 했었지.
  교회의 종소리가 은은하다. 성경 말씀이 떠오른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어느새 바뀌어간다. ‘…아이가 아이를 낳고 아이가 아이를 가르치고, 아이가 어른을 가르치고…’ 악악대는 알아듣지 못할 ROTC 훈병들의 구령소리가 어우러져 들린다.
  “주여 힘과 용기를 주소서. 제가 李箱(이상)은 아닙니다만… 병아리의 날개라도 달, 그래서 아프락사스를 향해서 날, 날아가는 폼이라도 잡을, 퍼덕여 보기라도 할, 忍耐(인내)와 끈기와 결심을 굳게 하여주소서.”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양 허벅지에 힘을 주어 버텨 서지만…, 배가 고프다. 졸음이 덮쳐 온다. 兒(아)히처럼 엄마의 품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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