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秩序(질서)의 喪失(상실)과 諸(제)問題點(문제점)

1. 人間(인간)과 環境序說(환경서설)

  오늘날 ‘環境(환경)’이라는 말만큼 우리 인류에게 절박한 世界的(세계적) ‘잇슈’는 없다고 생각된다. 우리 人間(인간)의 역사는 곧 문명의 發達史(발달사)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오직 하나 밖에 없는 살기 좋은 地球(지구)를 상속받아서 全人類(전인류)의 叡知(예지)를 쏟으며 낙원으로 만든다는 것이 오히려 삼림을 마구 깎고 들판을 마구 파헤치는 大量破壞(대량파괴)의 都市化(도시화) 問題(문제)로 오염된 환경이 인간 자신을 괴롭히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여기서 人間(인간)과 環境(환경)의 本質(본질)은 각각 무엇이여 또 그 學問的(학문적) definition은 무엇인가를 논하기는 너무 광활하면서도 심오한 바가 많으며 本稿(본고)의 紙面(지면)제약으로 깊이를 줄여서 우선 人間(인간)과 環境(환경)과의 交互作用(교호작용)에 관한 P. Sears의 말을 인용하여보면 자원(resources)과 인구(population)와 문화(culture)라는 세 가지 요소의 相互作用(상호작용)에서 얻어진 時代的(시대적) 소산이라 하였다. 그러면 이 세 가지를 物理的(물리적)으로 함유하거나 구성하고 있는 環境(환경)의 巨視的(거시적) 요소가 무엇인가에 대한 W. L. Thomas의 地球環境(지구환경)의 構成要素(구성요소)를 인용하여 보면 重心圈(중심권)(barysphere), 巖石圈(암석권)(lithosphere), 大氣圈(대기권) (atmosphere)으로 大別(대별)하였다.
  따라서 인간은 삶의 바탕이 되는 地界(지계)(geosphere) 먹이의 질서가 이루어지는 生物界(생물계)(diosphere) 그리고 自淨力(자정력)과 移送力(이송력)의 근본이 되는 氣界(기계)(atmosphere)의 3요소 중 어느 한 가지를 떠나서도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人間文明(인간문명)의 발달과 自然(자연)은 함수관계가 성립되어서 문화가 발달되려면 자연이 蠶食(잠식) 파괴되어야만 하고, 자연이 원초적으로 보존되려면 文明(문명)이 위축당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猶太基督敎精神(유태기독교정신)이 서구문명의 도입과 함께 후진국에 파급된지도 근 1세기에 가까워진다.
  그러나 자연에의 敬畏(경외)사상이 동양적 자연관의 일부라면, 그것이 自然(자연)에의 屈從(굴종)과 隸屬(예속)을 의미하는 토속적 신앙 제도만으로 잘못 이해되어 성급한 발전의 自由(자유) 放任的(방임적) 開發觀(개발관)으로 전개되어 물리적 개발을 위해 자연 파괴의 척도가 발전의 지름길처럼 후진국과 특히 開途國(개도국)간에 있어 피할 수 없는 근대화 初期(초기)현상으로 간주되어 온 것은 문명과 자연의 미묘한 函數式(함수식)처럼 인간과 환경은 어느 누구도 어느 한 學問的(학문적) 체계로서 설명하기에는 너무나 부잡한 力學關係(역학관계)가 있어 그 함수방정식 즉 자연생태계의 균형을 유지하는 최대의 비결이 오늘날 先進諸國(선진제국)이 主唱(주창)하는 ‘zero grwth'라면 開途國(개도국)으로서는 이율배반의 혼돈에 빠지는 것이 아닐까?
  또한 오늘날 開途國(개도국)의 近代化(근대화)가 機械文明(기계문명)에 의한 自然破壞(자연파괴)의 현상을 수입하고 騷音(소음)과 煤煙(매연), 視覺公害(시각공해) 등 각종 후유증을 남기고 아름답고 신선한 물질만 選別輸出(선별수출)하는 오늘의 環境(환경) SOS를 화급히 脫皮(탈피)하지 않는 한 우리는 무서운 自家撞着(자가당착)에 빠질 것이다. 1971年(년) ‘로마’클럽의 最終報告書(최종보고서)(The Limits to Growth: A Report for the Club of Rome's project on the Predicament of Mankind)가 우리人類(인류)에 충격적인 赤信號(적신호)를 보내고 그 이듬해인 1972年(년) ‘Stockholm Conference'에서 전 세계적으로 표방된 ’Only One Earth' 즉 ‘오직 하나밖에 없는 살기 좋은 宇宙船(우주선) 地球號(지구호)’를 保全(보전)하자는 구호로 人間(인간)과 環境(환경)의 긴박한 대책으로 規正(규정)짓고 온갖 지혜를 투입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人間(인간)이 이룩한 近代化(근대화)의 거대한 그늘 속에서 시들어가는 諸問題點(제문제점)은 무엇이며 이들의 긴급한 대책과 長期的(장기적) 방안은 어떻게 회복되어야 하는가 하는 제반의 接近技法(접근기법)은 다양하겠지만 本稿(본고)에서는 生態學的(생태학적) 견지에서 자연에 대한 ‘秩序(질서)와 調和(조화)’의 再發見(재발견)으로 모색하고자 한다.


2. 近代化(근대화) 機械文明(기계문명)의 諸問題點(제문제점)

  오늘날 서구기계문명의 특징을 西歐文字(서구문자)로 약기하여 볼 때 다음과 같이 표현될 수 있다.
  즉 atomic bomb의 발견으로 인한 ‘核化(핵화)’시대는 biological environment를 무분별하게 파괴하여 그 반대 給付(급부)로 얻은 문명의 유산(?)은 3C(Computer, Control-system, Communication)로 인한 기동성의 민첩과 물질적 극치를 이룬 3E (Electronic-brain, Exotic-materials, Energy-conversation)가 전 세계적 resource를 고갈시켜 이제는 3M(Machine-culture, Mammon-dealing, Mass-production)의 생활범주를 벗어나서는 살수 없는 인간정신의 心弱(심약)이 거대한 도시열도(Urban Heating Island)라는 이물질의 현대공룡에 나포된 나머지 인류는 3P(Population, Pollution, Poverty)의 난제를 풀기 위하여 과거에 잃어버렸던 ‘大自然(대자연)의 질서와 조화’의 위력에 굴복하여 Conservation에서 다시 zero growth에서 겸허한 절규를 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人類(인류)의 찬란한 문화소산 중 千廬一失(천려일실)이 있다면 그것은 自然環境(자연환경)의 파괴일 것이다. 즉, 古代(고대) ‘이집트’의 ‘피라밋’이 당시의 力學的(역학적) 지혜의 쓸모없는 거대한 靜的(정적) 遺産(유산)이라면 오늘날 유도탄에 의한 ‘아폴로’나 ‘바이킹’의 Project가 황막한 惑星(혹성)에로 한 人間(인간)의 移動(이동)을 가능케 하는 現代人(현대인)의 부질없고 쓸모없는 巨大(거대)한 動的(동적) 機械(기계)에 불과하다는 것이 1969년 달에 착륙했던 암스트롱의 제1聲(성)이고 보면, 人類(인류)는 自然(자연)에 대한 용서받지 못할 原罪(원죄)를 짓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러면 여기서 都市(도시)라는 安樂生活(안락생활)의 온상은 무엇이며 이에 따른 긴장과 마찰은 어떻게 우리를 괴롭히고 있는가를 고찰해본다.
  무엇보다도 도시생활의 이 점은 상술한 西歐文字(서구문자)의 約語(약어)에서도 언급되었지만 學術的(학술적) 견지에서 都市活動體系(도시활동체계)로 논하여 보면 그 이점은 생산 활동(채취, 가공, 집산, 운반, 교통, 운수, 분배, 수집 등)과 제도적 활동(교육, 문화, 정보, 교류, 연구 등)이 절대로 유리한 나머지 즉 人間生活(인간생활)의 기본인 家計活動(가계활동)(의, 식, 주의 제반사항)이 가장 매력을 끈다고 보겠다.
  그러나 이것은 인간과 환경의 교호작용에서 발생함으로 다음과 같은 심각한 환경문제의 후유증을 수반하게 되는 것이다.
  즉 1. 汚染(오염) 問題(문제)(大氣(대기), 水疾(수질), 騷音(소음)) 2. 廢棄物(폐기물) 및 放射能(방사능) 殘餘(問題(잔여문제)(固形異物質(고형이물질), 放射線(방사선)) 3. 資源枯渴(자원고갈)(天然資源(천연자원), 食糧(식량) 保存(보존)) 4. 人口(인구)증가문제에 따른 社會環境(사회환경)의 惡(악)(빈곤, 도덕부재, 범죄, 拜金主義(배금주의) 등에 따른 非人間化(비인간화))로 大別(대별)하여 볼 때 여기서 매일 ‘매스콤’을 통해서 感知(감지)되는 都市(도시)와 환경공해의 사례를 數字的(숫자적)으로 나열치 않더라도 대략적으로 집약될 것이다.
  그러면 이상과 같은 제문제의 최소한 방안은 무엇인가에 대한 序頭(서두)는 상술하였으므로 다음의 생태학적 접근으로 ‘이슈’만 제기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3. 生物學的(생물학적) 環境(환경)의 摸索(모색)

  20世紀(세기) 모든 학문에서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 環境生物科學(환경생물과학)이 될 것이다.
  生態學(생태학)의 효시는 1백여년전 獨逸(독일)의 生態學者(생태학자) Ernst Haeckel (1869)의 시대로부터 비롯하여 ‘oikos’ 즉 살기위한 適所(적소) ‘집’이라는 말과 ‘logos'(學問(학문))라는 두 희랍語(어)의 合成(합성)이 오늘날 ’ecology'란 단어로 등장된 이래 環境(환경)문제 접근에 커다란 몫을 하고 있다.
  즉 인류의 공간에 대한 집약적 利用(이용)이 ‘벌의 巢礎(소초)(comb foundation)에 비롯되었고 오늘날 Subtopia(地下鐵(지하철), 地下商街(지하상가), 地下水(지하수), 地下資源(지하자원) 등)가 개미, 들쥐, 땅강아지, 두더지, 박쥐 등의 생활과 個體機能(개체기능)에서 hint를 받았다고 하면 가소롭다는 表現(표현)이 인간위엄의 一聲(일성)이 될지 몰라도 ’미사일‘의 유도장치가 개구리의 눈이 열을 추적한다는 Bionics와 Cbernetics는 오히려 권위손상이 될 것이다.
  따라서 인간과 환경과의 다양성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生態(생태)학자 Odum(1969)과 Mc Harg의 환경적응성기준을 구분하여 보면 Odum은 生産(생산)(Production)↔보호(Protection), 성장(Growth)↔안정(Stability), 量(량)(Quantity)↔질(Quality)를 절대적으로 주장하였다. 그러나 Ⅰ. Mc Harg는 더 좀 상세하게 구분하여 생태학의 진면목을 보여주었다.
  즉 單純性(단순성)(Simplicity)↔複合性(복합성)(Complexity), 劃一性(획일성)(Uniformity)↔多樣性(다양성)(Diversity), 不安定(불안정)(instability)↔安定性(안정성)(Stability), 小數(소수)의 種(종)(Low Number of Species)↔다수의 共生(공생)↔High Entropy↔Low Entropy등으로 구분하여 우리에게 해결방법의 테마를 명확하게 제시하였다.
  그러면 마지막으로 도출해내야 하는 최후의 主題(주제)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방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4. 人間(인간)과 自然(자연) 그 秩序(질서)의 再發見(재발견)

  생태계의 구성요인 가운데 光合成機能(광합성기능)(炭素同化作用(탄소동화작용))을 지니고 있는 위대한 생산자(Producer)가 바로 綠色植物(녹색식물)(Green)이며 이것을 몇 단계로 걸쳐 먹이의 연쇄(food chain)로 이용되는 中間消費者(중간소비자)(consumer)가 동물이고 最終消費者(최종소비자)가 인간이라면 이 인간의 最終回歸(최종회귀)가 자연일진데 생산자나 중간소비자가 존립 못하는 환경하에서 인간만이 존재하겠다는 것은 너무나 모순된 것이다.
  따라서 光合成機能(광합성기능)의 函數方程式(함수방정식)(6CO₂+5H₂O=C6H10O5+60₂→264lbs+90lbs=162lbs+192lbs)을 人間(인간)이 겸허하고 숭고하게 유지관리 하는 物理的(물리적) 지혜를 先投入(선투입)한다면, 오늘날처럼 불난 다음 불 끄는 소화 작업처럼 각종 공해현상에 대한 百家爭論(백가쟁론)의 愚(우)는 범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현재 황량한 죽음의 사막이 古代(고대)에는 森林(삼림)으로 무성하였던 有機的(유기적) 文明社會(문명사회)였던 것을 생각하여 볼 때 자연은 인간의 파괴에 대하여 무섭고 가공할 보복으로 맞서며 이의 슬기로운 保全(보전)과 維持營理(유지영리)에 人間(인간)의 예지를 조금이라도 투입하면 현재, 우리의 환경에 대한 掛念(괘념)이상으로 그 심오한 질서와 조화의 은총이 올 것이라고 확신하면서 과거 우리 선조들이 즐겨 쓰던 十長生(십장생)(해, 산, 물, 돌, 구름, 솔, 불로초, 거북, 학 사슴)의 추앙은 곧 인간과 자연의 질서를 존중하는 데서만 再發見(재발견)된다는 것을 새삼 강조하여 본다.
  또한 西歐(서구)의 理想的(이상적) Utopia의 出發(출발)이 오늘의 motopia와중 속에서 dystopia(혼란의 社會(사회))로 될 것이란 것을 想起(상기)할 때 남의 뒤를 따라가는 Utopia보다는 우리의 독창적인 環境條件下(환경조건하)에서 우리의 entopia를 창조하여 볼 때가 왔음직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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