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容淑(박용숙)의 ‘神鐘(신종)’을 中心(중심)으로

  筆者(필자)의 자료수집에 의하면 說話文學(설화문학)을 텍스트로 하여 창작된 現代(현대)小說(소설)은 30편에 달한다. 이러한 현대 소설들의 작가명단 중에 창작빈도가 많은 것으로 나타나는 작가들은 金東里(김동리)․吳永壽(오영수)․朴容淑(박용숙) 등이다. 이들은 說話文學(설화문학)에 대해 남다른 관심을 보이는 작가들이라 할 수 잇는데, 이중에 가장 돋보이는 작가는 朴容淑(박용숙)씨이다. 그가 가장 돋보이는 것은 남들에 비하여 질적으로 우위성을 갖는다는 사실이기도하다. 그의 우위성은 說話(설화) 자체를 파괴하여 재조립하는 것에서 비롯된다. 이러한 창작방법을 사용하는 데에는 說話文學(설화문학)에 대한 학구적인 분석과 해석, 屑話(설화)에 대한 역사적 리얼리티 부여, 반항적인 作家精神(작가정신)이 內密化(내밀화)되어 있다. 上記(상기) 3가지 요소들은 悲劇的(비극적) 認識(인식)의 카테고리 속에서 소설의 구조를 형성시킨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가 朴容淑(박용숙)씨의 ‘神鐘(신종)’, ‘志鬼正傳(지귀정전)’, ‘견우와 직녀’를 읽을 때 感知(감지)할 수 있다.
  앞서 지적된 假設(가설)의 증명을 위해 소설 ‘神鐘(신종)’을 중심으로 하되, 방법은 聖德神鐘(성덕신종) 傳說(전설)과 小說(소설)을 비교 분석하는 것이어야 되겠다.
  (편집자註(주)․聖德新種(성덕신종)의 傳說(전설)은 생략)

  聖德神鐘(성덕신종)傳說(전설)의 <僧(승)의 顯示(현시)> <人柱(인주)> <아기의 울음>모티브와 에피소우드는 小說(소설) ‘神鐘(신종)’에서는 없어지거나 다른 각도에서 채색 변질되었다. <僧(승)의 顯示(현시)>는 없어졌다. 에피소우드를 結案(결안)하는 데 있어 가장 中核的(중핵적)인 <人柱(인주)>모티브는 외숙부와 임금과 만백성의 근심을 풀기위한 것으로 社會的(사회적)․宗敎的(종교적) 측면에서 긍정적이었다면 소설에서는 권력의 강압과 非理(비리)와 간계에 결부되어 부정적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傳說(전설)의 모티브, 에피소우드, 사건의 진행이 소설에 그대로 옮겨지지 않았으므로 결국 ‘神鐘(신종)’은 전설을 재구성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근 30년간 실패를 거듭하는 鑄鐘(주종)의 과정, 즉 전설의 發端部(발단부)가 소설에서는 역사적 리얼리티를 획득하면서 구체화되었다.
  小說(소설) ‘神鐘(신종)’ 첫머리는 세 번째 종을 만드는 종터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 종터가 王城(왕성) 곁에 둔 까닭을 ‘왕성 곁에 있으므로 해서 우선 종을 만드는 것을 방해하고자 하는 역도의 침입을 막을 수 있고, 그때그때 주종의 일을 맡은 관리들이 드나들며 감독하기 쉬운 곳이기 때문이다’라고 서술한다. ‘이런 곳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죽어나는 것은 누구보다도 막일꾼들이었다. 이쪽저쪽 도처에 왕성을 지키는 군사들이 망을 서 있고 또한 쉴 새 없이 어전에서 일을 다그치려 나오는 檢校里(검교리)들의 눈 때문에 쉴 사이가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서술에서 우리는 작가가 神鐘(신종) 공사를 부정적으로 처리하고 있음과 反抗意識(반항의식)으로 약자의 편에 서 있음을 알게 된다. 막일꾼과 역도들은 神鐘(신종)에 대한 작가의 인식의 分身(분신)들인 것이다.
  <이 사람아! 이 더위에 무슨 술인가? 차라리 낮잠이라도 한잠 푹 자면 좋겠구먼, 안 그런가?>
  그러자 말을 받을 사람은 무엇이 두려운지 한번 사방을 둘러본다.
  <이 사람이, 정말 얼이 빠졌군 그래? 낮잠이라니!>
  세번째 종이 만들어져 그 모습을 드러내는 날 잡공들의 이런 대화에서 당시의 民心(민심)과 世態(세태)를 추측할 수 있다.
  그 종이 훌륭한 소리를 내자 각관은 다음처럼 선전한다. ‘성덕대왕의 신음은 온 나라안에 울려 퍼지어 백성들이 이에 순응참배하며, 그로 하여 위론 황상으로부터 아래로 어진 백성에 이르기까지 한마음 한 뜻이 되어, 이 나라의 사직을 탐하는 안팎의 적들을 물리칠 수 있을께요! 그러하니 이 신종이야말로 이제 이 나라를 구하는 寶器(보기)의 하나임이 틀림없소’ 이 言意(언의)는 鐘(종)의 銘文(명문)에 기록된 佛敎的(불교적) 圓音思想(원음사상)과 결부된다. 그러나 作家(작가) 朴氏(박씨)는 그 의미를 부정한다. 神鐘(신종)을 만들기 위해 백성들의 많은 희생이 소비되었다는 것이다.
  神鐘(신종), 그것은 민폐요, 각관의 虛言(허언)은 정치적 속임수와 다를 바 없는 것으로 小說(소설)에 表出(표출)된다. 변란이 일어나 그 종을 얼싸안고 지키던 공장을 폭도가 ‘이반역자, 이 더러운 놈아! 끝끝내 뉘우치지 못하느냐! 자, 저승에나 가라!’하고 목을 베었고, 군사는 종을 부수며 ‘천추의 역적 성덕을 잡아라’고 외쳐댔다. 폭도들이 聖德王(성덕왕) 神鐘(신종)을 반대하는 데에는 복잡 미묘한 정치적 사회적 배경이 얽혀있다.

  ①王統(왕통)을 바꾸고 이를 合理化(합리화)시키기 위해 당나라식 王道(왕도)를 채택한 것 (이는 聖骨係(성골계)의 세력가 三帝道(삼제도)를 흠모하는 백성들로부터 배척을 받음) ②태종 이래 신라세력에 의해 반도에서 밀려난 일본이나 발해가 ①로 인한 내란을 엿보고 있다는 시대적 불안감 ③토박이 종교와 인물들과 神宮(신궁)을 최종적으로 말살시킨 장본인이 聖德(성덕)이란 것이다.

  이상과 같이 傳說(전설)에 나타나지 않았던 많은 사건들을 소설에 개입시켜 놓음은 전설의 구체화, 再構成法(재구성법)이다. 朴容淑(박용숙)氏(씨)는‘無影塔(무영탑)’에서의 玄鎭健(현진건)처럼 사건의 발전에 현실적 必然性(필연성)의 리얼리티를 부여하는데서 끝나는 게 아니라, 국가 정치적 권력과 庶民(서민)의 반항이 얽혔던 당시의 역사성도 추구한다.
  神鐘銘文(신종명문)에 의하면 佛陀(불타)의 말씀인 圓音(원음)을 깨닫기 위해 神鐘(신종)을 縣擧(현거)한다는 것이다. 神鐘(신종)은 평범한 物體(물체)가 아닌 神器(신기)이며 ‘圓空神體(원공신체)’라는 것이다. 神鐘(신종)의 圓形(원형)은 佛敎(불교)의 상징이요, 그 소리는 佛陀(불타)의 圓音(원음)이므로 有頂天(유정천)으로부터 無底之方(무저지방)까지 들리며, 따라서 이 소리를 듣는 사람은 福(복)을 받는다고 했다. 그러나 이러한 ‘범종의 本質(본질)에 가탁하여 主權(주권)의 권위와 존엄성을 나타내고, 그에 도전하는 반란을 일으킬 수 없는 상징적 표현으로 본다.
  (中略(중략)) 弱體化(약체화)한 主權(주권)을 앞세워 金邕(김옹) 金良相(김양상)이 政權(정권)을 독점하고 있는 현실에서 반란을 막기 위해서는 聖德王代(성덕왕대)를 태평성대로 보고 그 시기를 극구 찬양하여 欽望(흠망)하는 銘文(명문)에서 더욱 그러한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李旲榮(이대영) ‘聖德(성덕)大王(대왕) 神鐘銘(신종명)의 해석에 관한 몇 가지 문제’ ‘考古美術(고고미술)’ 125호) 이러한 기술로 짐작하면 앞서 소개한 小說(소설) ‘神鐘(신종)’의 사건들은 허무맹랑한 상상의 소이가 아니라 당시 역사성에 충실한 개연성 짙은 虛構(허구)임에 틀림없다. 朴容淑(박용숙)씨는 傳說(전설)을 역사적 産物(산물)로 본다. 전설이란 역사를 왜곡하여 신비와 아름다움으로 도배하여 놓은 것이라 보고 그 신비와 아름다움의 베일을 벗겨 어둔 역사의 참모습 속에서 약자의 희생과 반항적 행위의 비극적 가치와 진실, 그리고 인간 실존을 찾으려 한다. 이러한 作家(작가)의 창작 태도는 그의 小說(소설) ‘志鬼正傳(지귀정전)’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이러한 作家(작가)의 능력은 說話文學(설화문학)에 대한 남다른 연구의 소산일 것이다. 이점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朴容淑(박용숙)씨 자신은 ‘志鬼正傳(지귀정전)’에 대해 다음과 같이 고백한다. <<志鬼(지귀)>에 관한 이야기는<新羅殊異傳(신라수이전)>에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그 기록은 다른 史記(사기)의 자료와 마찬가지로 그 時代(시대)의 여러 가지 복잡한 政活的(정활적) 상황에 의해 왜곡되거나 암시적인 방법으로 교묘히 위장되어 있음을 발견했다. 그러므로 이 작품은 하나의 考古學的(고고학적)방법을 통한 復元(복원)작업이다.>(‘文學思想(문학사상)’ 통권 6권<筆者(필자)와 對話(대화)>)
  또 다시 神鐘(신종) 工事(공사)가 계획된다. 鑄鍾大博士(주종대박사)가 임명되고, 名匠(명장)이 된 朴韓味(박한미)는 下典(하전)을 감언이설과 협박으로 꾀려하지만 下典(하전)은 ‘기와집이나 녹을 받지 않아도 즐겁게 살 수 있읍니다’라 거절한다. 下典(하전)은 박한미를 매국놈으로 취급한다. ‘성덕왕은 천하가 다 미워하는 폭군이요 독재자였어. 그는 唐(당)을 등에 업고 이 땅에서 수없는 양민을 학살하고 또 몰아냈어. 그런 사람의 幽宅(유택)을 위해 내가 어찌 신종을 만든단 말이야’ ‘내가 만든 신종이 황룡사의 종처럼 봉덕사에 달리어 덩! 덩! 하고 울릴 때마다 나라에선 국법으로 그 종소리가 들리는 봉덕사 쪽을 향해 합장토록 만들고, 그러면 우리는 그 소리를 들으면서 성덕왕의 神音(신음)이라고 생각해야 한다니, 정말 생각만 해도 피가 거꾸로 설 일이야(中略(중략)) 만일 종이 울려 퍼지게 되어 백성을 괴롭힐 때 그 종을 만든 나를 무어라고 저주하겠는가 말이야.’ 누이에게 한 이 말과 박한미에게 던진 거절의 말을 종합하면 그러한 거부와 가치관에서 下典(하전)의 가치추구에 대한 충성의 열도와 이를 방해하는 존재에 대한 반항심과 고통을 느낄 수 있다.
  주종을 맡으라는 ‘御命(어명)을 받은 날, 하전은 오히려 마음이 편하였다. 그럴 것이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기로 결심했기 때문이다.’ 환도를 갖고 자결을 시도했지만 龍宮(용궁)의 노인 때문에 허사가 된다. 실패작만을 만들라는 노인의 권유에 따라 下典(하전)은 신종을 만든다. 주위에서 변절자라 하여 소외됐고, 국가에서 내린 부귀만큼 괴로움도 컸다. 쇠를 녹여 배합을 틀리게 하여 실패를 거듭한다. 어명으로 동이 난 금붙이를 백성들에게서 강제로 빼앗았다. 下典(하전)의 농간을 눈치 챈 조정에서는 다음 만들 종에는 ‘辰年(진년) 辰月(진월) 辰時(진시)’에 낳은 아이를 넣어 만든다는 소문을 퍼뜨렸다. 바로 下典(하전)의 외조카 봉덕이 辰年(진년) 辰月(진월)生(생)이다. ‘술을 마실 때마다 그는 조카인 봉덕을 안고 남몰래 눈물을 흘렸다.’
  물론 그것은 조카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모든 용띠 용달에 낳은 아이들을 생각하면서 우는 울음이었다.’ 이것은 생명의 가치와 존엄을 지키려는 약자의 울음이다. 까뮈의 말처럼 下典(하전)은 이기적인 동시에 이타적인 참된 반항인이다. 아이를 낳더라도 결코 종은 만들지 말아야 한다고 작심했지만 실패를 거듭하면 용띠 아이의 희생만 늘어날 것이란 생각에 미치자 자유 없는 선택의 갈등, 한계상황에서의 가치 추구의 고통들이 교차되는데, 각간은 下典(하전)의 고의적인 실패를 꿰뚫어 밝히고 데려온 봉덕을 꿇는 물에 넣으려한다. 下典(하전)은 역도들과 내통했다는 자백과 같은 결과를 초래하더라도 봉덕을 살리기 위해 결국 종을 완성시킨다. 혜공왕 7년, 12척 12만근의 종은 장안 구석구석 울렸다. ‘종소리가 흐느끼듯 울려 퍼지자 장안의 모든 사람들은 일제히 봉덕사를 향해 합장하였다. 이미 며칠 전에 어명이 내려졌기 때문이다. 늙은이, 아낙네 어린아이 혹은 귀족에서부터 숯쟁이나 소금쟁이에 이르기까지 모두 일손을 멈추고 봉덕사 쪽을 향해 머리를 숙였다. 그러나 그들은 봉덕사의 그 종소리에서 성덕왕의 福音(복음)을 듣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종을 위해 억울하게 목숨을 잃은 세 사람의 울음소리를 듣고 있는 것이다. 그 세 사람이란 바로 하전과 그의 누이, 그리고 조카 봉덕이었다.’ 그들은 역적이란 죄명으로 사형을 당했던 것이다. 이러한 비극적 파토스에서 권력의 非理(비리)와 모순에 자신의 가치 추구로 반항하고 투쟁했던 이들의 죽음과 울음소리의 意味(의미)는 時空(시공)을 초월해서 긍정되리라.
  이상으로써 序(서)의 假說(가설)은 입증된 셈이다. 朴容淑(박용숙)씨의 作家精神(작가정신)인 悲劇知(비극지)에 의하여 전설이 새롭게 해석되고 없던 에피소우드와 사건들이 再構(재구)되어 미성숙의 비극적전설이 훌륭한 비극으로 소설화되었다. 환언하면, 下典(하전)의 가치추구에 대한 충성, 이것의 방해물인 권력에 대한 반항, 투쟁, 인간의 존엄성과 실존, 파토스 등의 비극성이 內密化(내밀화)된 소설이 ‘神鐘(신종)’이다. 또한, 전설의 주제가 새로워졌고 作家(작가)의 想像(상상)과 개성이 가미됐을 뿐 아니라 근대사회의 市民精神(시민정신)과 같은 집단적 반항의식이 잘 표현된 작품이다.
 

저작권자 © 대학미디어센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