禹鍾浣(우종완)교수 書藝展(서예전) 가져

  春圃(춘포) 禹鍾浣(우종완)(경상대 경제학과)교수의 첫 번째 서예전이 고려민속전시관에서 고려민속 주관하에 서울대학원 동기 일동과 英(영)·韓(한)어원사전출판후원회의 후원으로 지난 5월 1일부터 31일까지 열렸었다.
  당시 명필로 이름 있던 부친 밑에서 5살부터 글씨를 쓰기 시작한 春圃(춘포)선생은 어려서부터 재질을 발견해서 4학년 때 전국 어린이 대표로 글씨를 쓰기도 했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그동안 선생이 써온 50여점의 작품이 전시되었는데 보는 이마다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추사체와 왕희지체의 중간적인 成親王(성친왕)체를 가지고 있는 선생의 筆體(필체)는 秋史(추사)와 뼈대는 같으나 秋史(추사)의 괴팍스러움을 찾아볼 수 없는, 힘찬 가운데도 고운 데가 있다 날카롭고 秀麗華奢(수려화사) 가시 많은 장미꽃과도 같고, 중후하고 엄숙하며 예리하다는 평을 듣고 있는 春圃(춘포)의 글씨는 뭐니뭐니해도 삐침이 일품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이번 서예전으로 한국서화가총람 명사란에 등록을 하게 된 春圃(춘포)는 글씨란 수려하고 곧아야 하며 뿌리가 깊고 잎이 무성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마음이 괴롭고 세상과 뜻이 잘 맞지 않을 때는 글씨를 쓴다는 선생은 말을 40년이나 타기도 했는데 이것이 서예생활을 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 것같다고 했다.
  서울상대 대학원을 졸업한 선생은 7세에 四書三經(사서삼경)을 독파한바 있고 秋史(추사)의 제자였던 星坡(성파) 河東洲(하동주)선생으로부터 서예의 기초를 익히기도 했는데 오는 6월 15일부터 30일까지 조계사에서 약 30점의 작품전시회를 또 한 번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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