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흥청댈 때 거리를 떠나…

  그 해의 숫자를 잊지 않을 만큼 익숙해지면 버얼써 겨울이다.
  처음 새 年度(연도)를 쓸 때의 서투름도 어느새 다음에 맞을 낯선 숫자로 바꾸어져야 하고 한참을 前(전)해와의 헛갈림 속에서 보내야 한다.
  그래서 가을이 되면서부터는 가슴에서 배반이 시작된다.
  줄기찬 분석과 안타까운 규정이 온통 혼동스러운 상태에서 1년이란 이름으로 삶의 수십페이지를 새로 받게 되면 낙서투성이로 범벅된 낙장을 그적거리며 다시 어제의 형편없는 자신을 거슬러 보게 된다. 백지장이야 차라리 깨끗하게 남아 뭔가를 기대하게 하지만, 이것저것 마구 질서 없이 적혀진 우리네 페이지는 한권의 책으로 묶기엔 필요 없는, 그리하여 버려져야할 부분으로 가득 차게 된다. 통일성 없는 엉망의 책이 되고 만다. 어느 한가한 날에 어느 만큼 채워진 몇 페이지를 읽노라면 너무도 무절제한 자신의 스무너댓페이지를 뭉텅 삭제하고 싶은 충동에 서글퍼짐을… 게다가 하늘의 축복이란 눈마저 그의 인색함을 여지없이 드러내는 1978년의 겨울은 따스운 옷 한벌 마련하지 못한 체온을 바닥까지 하강시키는데, 또 다른 반란, 그것은 저 심층에서 불리워오는 오만한 바람소리로 입때까지의 나의 살음을 네 계절로 단박 짓는 것을 거부하는 소리다. 1년씩 짜여진 한해살이 풀이 아닌 이상 연말연시가 크게 부각될 만큼 의미 있지 않다.
  어차피 나의 살음은 저 땅속에 있기 전까진(표면에 보이기로) 계속 되는 것이고 갑작한 횡사를 위해 주도면밀한 계획을 세워 착오없이 해살이를 하기엔… 하루도, 이십사시간이란 틀도, 의식하지 않고 꽉꽉 나의 시간으로 채우고 싶은 것을…살음의 반성과 시도는 늘 어느 때고 하는 것이지 능청스럽게 막바지라고 생각하면서 그저 최소의 양심을 얻기 위해 멈칫하는가. 
  난 그저 추위에 떨기위해 가장 흥청대는 시간에 이 거리를 뜨고 싶다. 눈 내리는 바다를 연모 하면서 열차만 보면 타고 어디든지 가고 싶다는 우리친구들 틈에 끼어 밤열차의 진득함과 새벽 낯선 역의 안개 속에 성큼 와 닿는 감촉을 만지면서.
  우리들 열심히 사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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