民族文化(민족문화)의 源流(원류) 新羅硏究(신라연구)와 그 課題(과제) : 神話(신화) 分野(분야)

  韓國神話(한국신화) 硏究(연구)를 위한 문헌적인 大宗(대종)이 三國遺事(삼국유사)인만큼, 연구 그 자체의 大宗(대종)도 檀君神話(단군신화)에 있게 된 것은 매우 자연스러워 보인다. 그것은 三國遺事(삼국유사)가 檀君神話(단군신화)를 책의 冒頭(모두)인 紀異第一(기이제일)의 서두에 게재하면서 韓民族(한민족) 최초의 建國神話(건국신화)로 내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이같이 단군신화를 掲載(게재)․記述(기술)하는 三國遺事(삼국유사) 著者(저자)의 태도로 말미암아 단군신화는 신화 중의 신화, 그래서 한국의 <原神話(원신화)>라는 자리를 굳히게 된 것이다. 그런 점에서 단군신화는 駕洛(가락), 고구려, 신라의 신화와는 달리 別格(별격)으로 다루어지게도 된 것이다. 그것은 여타의 신화들이 단지 주어진 王國(왕국)의 建國神話(건국신화)로 머물러 있는데 비해 단군신화는 汎韓國的(범한국적)인 原祖神話(원조신화)로 浮上(부상)되어 있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단군신화는 나머지 신화들에 비해 남다른 時差(시차)와 民族史的(민족사적)인 의의의 차를 지니기에 이른 것이다.
  民族史的(민족사적)인 처지에서는 단군신화의 原祖性(원조성)은 내세워질 만한 것이었다. 또 지금까지 이 땅의 神話(신화) 硏究(연구)가 歷史學(역사학)의 테두리 속에서 보다 더 많이 이루어져 왔기 때문에 신화를 民族史的(민족사적)으로 硏究(연구)․記述(기술)해가는 과정에서 단군신화는 필연적으로 別格(별격)으로 대접받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단군신화의 原祖性(원조성), 汎民族的(범민족적)인 原祖性(원조성)도 이에 힘입어 이끌어 내어진 것이다. 그만큼 韓國神話(한국신화)의 硏究史(연구사)도 단군신화의 硏究史(연구사)를 주축으로 하여 전개되었던 것이다.
  이에 비해서 檀君(단군)과 古朝鮮(고조선)의 역사적 실존에 관한 논란이 빚어진 것은 衡平(형평)의 원칙에 어긋나 보인다. 그것은 오늘날 三國遺事(삼국유사)에 전해진 文面(문면) 그대로 놓고 보았을 때 단군신화가 赫居世(혁거세) 首露(수로), 朱蒙(주몽) 등의 신화와 마찬가지로 神話性(신화성)과 歷史性(역사성)을 겸해서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역사적 실존성이 유독 檀君(단군)과 그가 創建(창건)하였다는 왕국의 경우에 한해서만 논란되는 것은 아무래도 균형을 잡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단군은 神話時代(신화시대)에 편입되고 首首露(수로)․朱蒙(주몽)과 赫居世(혁거세), 脫解(탈해) 등은 歷史前代(역사전대)에 편입되는 것은 視點(시점)의 통일성을 缺(결)하고 있다.
  따라서 神話學的(신화학적)으로 보았을 때 檀君神話(단군신화)가 民族史(민족사)의 기점에서 얘기되는 사실에 대응될만한 原流性(원류성)을 독점적으로 지니고 있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말하자면 단군 신화만이 여타의 이땅 신화들의 유일한 <本(본)>이라고 내세울 수는 없는 것이다. 흔히 倍達民族(배달민족)이 단군의 후손이라고 하듯이 신라와 駕洛(가락), 그리고 고구려 신화 등이 단군신화의 후손이라고 말하기는 힘든 것이다.
  天神(천신)의 하강, 天神(천신)의 地上女人(지상여인)과의 結緣(결연), 王國(왕국)의 건립 그리고 死後(사후)의 異蹟(이적) 등에 걸친 큰 줄거리의 유형 외에 卵生(난생) 모티브의 共通性(공통성)을 한국신화가 지닌 보편성으로서 지적할 수 있다. 그리고 이들 서사적인 보편성의 基低(기저)에 있을 祭儀(제의)의 共質性(공질성)도 아울러 드러내 보일 수 있다. 桓雄(환웅)의 神市降下(신건강하), 高句麗(고구려)의 수神祭(신제) 駕洛(가락)의 迎神儀(영신의) 등은 오늘날의 별신굿 및 서낭굿의 원형이기도 하거니와 그것들은 또 그만큼 서클 共質性(공질성)을 나누어 갖고 있기도 한 것이다. 天降(천강)한 始祖(시조)라는 모티브는 新羅(신라) 六姓(육성)의 村長(촌장)들이 지니고 있었던 것이기도 할 뿐만 아니라 이들은 赫居世(혁거세)에 앞서서 이 모티브를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보편성을 고려할 때 檀君神話(단군신화)에 치중했던 神話(신화) 硏究(연구)는 분명히 偏向(편향)된 것이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駕洛(가락)의 신화는 三國遺事(삼국유사)가 轉記(전기)하고 있는 文面(문면)만 가지고 본다 해도 명백하게 <開闢(개벽)>初(초), 아득한 태초의 일을 전해준다는 의식을 갖고 있다. 首露(수로) 神話(신화)를 傳承(전승)하던 집단에 있어 그들의 神話(신화)는 까마득한 太初(태초) 어느 순간에 창조된 것으로 의식되었던 것이다. 이 같은 의식을 무시한 채 民族史的(민족사적)인 編年上(편년상)의 機先(기선)만으로 神話(신화) 그 자체의 기선으로 代替(대체) 시킬 수는 없는 것이다. 따라서 神話(신화) 硏究(연구)가 歷史學(역사학)쪽의 영향을 받아서 偏向(편향)치중하였던 檀君神話(단군신화) 優先主義(우선주의)는 시정되어야 할 것이다. 英雄叙事文學(영웅서사문학)으로서 高朱蒙(고주몽) 神話(신화)가 지닌 가치, 地中(지중)에서의 인간탄생을 말하고 있는 제주도신화의 특이성, 迎新祭(영신제)의 세부적 절차를 충실하게 기술하고 있는 駕洛(가락) 神話(신화)의 의의 등은 檀君神話(단군신화)의 民族史的(민족사적) 우위에 의해 가려질 수 없는 것이다.
  더욱 資料的(자료적)인 다양성의 면으로 여타의 神話(신화)를 압도하고 있는 新羅(신라) 神話(신화)는 檀君神話(단군신화)의 그늘에 묻혀 둘 수 없다.
  한마디로 新羅(신라)의 神話(신화)라지만 朴(박), 金(김), 昔(석)의 三王姓始祖(삼왕성시조) 神話(신화)와 六姓始祖(육성시조) 神話(신화)가 이에 포함된다. 그러나 이들 王姓始祖(왕성시조) 神話(신화)와 家姓始祖(가성시조) 神話(신화)는 워낙 유형을 같이 했을 것으로 믿어진다. 다같이 氏族祖(씨족조)신화가 그냥 氏族(씨족)의 차원에 머물러 버린 것과 王家(왕가)를 창립함으로써 부상된 것으로 나누어진 것이라고 생각된다. 지금껏 神話(신화) 學界(학계)는 이점을 비교적 등한히 한 것 같다. 진화론적인 선진관계로서보다는 論理的(논리적) 선후관계로서 氏族祖(씨족조) 神話(신화)와 王族祖(왕족조) 神話(신화)의 相關性(상관성)이 설명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기왕에 제각기 族祖(족조) 神話(신화)를 가지고 있는 氏族(씨족)들 위에 통합적으로 군림하게 된 氏族祖(씨족조)의 신화가 국가적 차원의 神話(신화)로 승화되면서 新羅(신라)의 王權(왕권) 神話(신화)는 형성되어 간 것이라 보여진다. 李氏(이씨)의 조상인 謁平(알평)의 신화가 가장 설득력 있게 그 유추를 해 볼 수 있게 만들어 주고 있다.
  朴(박), 金(김), 昔(석) 三王姓祖(삼왕성조) 神話(신화) 가운데 朴(박), 金(김) 두 神話(신화)는 대체로 같은 類型(유형)에 들 것으로 믿어진다. 張籌根(장주근) 敎授(교수)가 지적하고 있듯이 두 神話(신화)는 다 같이 서낭당 信仰(신앙)의 원류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金(김)이 성역화되어 있고 거기에 天降(천강)한 것으로 믿어진 神(신)이 座定(좌정)을 하게 되는 두 神話(신화)의 類型(유형)은 오늘날 마을의 별신굿에서 모셔지는 서낭神(신)의 성격이며 그 來臨(내림)에 대해 말해주고 있다. 그런 점에서는 檀君神話(단군신화)나 首露(수로) 神話(신화)도 다를 바 없다. 이들 神話(신화)와 함께 朴(박) 金(김) 두 王姓(왕성) 神話(신화)는 오늘날의 서낭굿에 그 자취를 남기고 있는 것이 확연하다. 따라서 이들에게 神話(신화)는 오늘날에도 살아있는 神話(신화)들이다.
  서낭神信仰(신신앙)이 우리 民俗信仰(민속신앙)의 대종임을 생각할 때 新羅(신라) 神話(신화)도 檀君神話(단군신화)와 함께 민족의 종교적전통의 원류로 간주되어야 할 것이다.
  金(김), 朴(박)씨 두 神話(신화)에 비해 昔氏(석씨) 神話(신화)는 매우 이질적이다. 金(김), 朴(박) 두 王姓(왕성) 始祖(시조)가 天降(천강)한데 비해 昔脫解(석탈해)는 水平(수평)의 彼岸(피안)에서 來臨(내림)한 神(신)이다. 이 수직과 수평의 대립을 여태 흔히 지적되어 왔다. 그러나 이 두 대립은 오늘날의 巫歌(무가) 등으로 보아 어느 점에서는 일치한다.
  그것은 수평선의 끝이 하늘에 닿아 있다는 視覺上(시각상)의 경험이 곧 수평선을 향해 한없이 간 지점에 있는 하늘이란 관념을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脫解(탈해)가 남다른 競合(경합)이나 투쟁을 통해서 王位(왕위)를 쟁취해 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高朱蒙(고주몽) 神話(신화)와 좋은 대비를 지니면서 한국神話(신화)가 지닌 英雄的(영웅적) 서사성의 原型(원형)에 대해 말해주게 된다. 우주적 규모에 걸친 모험과 시련 끝에 民族的(민족적) 집단의 지도자 내지 救援者(구원자)로서의 자격을 쟁취해 가는 과정을 그린 것이 신화적 英雄譚(영웅담)이라면 脫解(탈해) 神話(신화)는 高朱蒙(고주몽) 神話(신화)와 함께 우리 敍事文學(서사문학)의 원류에서 남다른 특성을 빛내고 있는 것이라고 강조해도 좋을 것이다.
  서낭信仰(신앙)에 줄기가 닿아 있는 原始(원시) 信仰(신앙)의 祭儀的(제의적) 현실을 바탕에 깔고 있다는 점에서는 新羅(신라) 神話(신화)는 檀君(단군)․首露(수로) 神話(신화)와 필경은 同工異典(동공이전)이다. 그러나 家庭(가정) 神話(신화)와 王族(왕족) 神話(신화)의 相關性(상관성), 그리고 신화의 敍事文學的(서사문학적) 원류 등을 말해주고 있는 점에서 신라신화는 남다른 값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이 방면 연구는 이제 겨우 윤곽이 드러나 정도다. 앞으로 더욱 깊은 연구가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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