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의 책 - 옛 시에 취하다

사물(事物)을 객관적(客觀的)으로 보기 위해선 남들보다 한 발짝 뒤에서 볼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남들보다 한 걸음 뒤처진다는 것은 빠르게 급변(急變)하는 현시대를 살아가는데 있어 뒤쳐짐이 될 수 있지만, 앞선 사물을 바라보기에는 좋은 위치이니 꼴찌로 사는 이의 판단(判斷)이 가장 정확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남들보다 한 걸음 뒤에서 자기 자신, 그리고 사건, 사물들을 냉정(冷情)한 시선으로 그것들을 객관화(客觀化)하려고 시도한 글이 있다. 뭐든 1등이 아니면 주눅이 들어 어깨가 움츠러드는 오늘의 대한민국 사회에서 꼴찌로 살아왔노라고 자처하는 한문학자(漢文學者)의 짧은 글 60편을 묶은 책 ‘옛 시에 취하다’가 출간(出刊)되었다. 이 책은 옛 시를 통해 현대인의 사는 모습을 다시 한 번 되돌아보는 이야기들을 담고 있으니 온고지신(溫故知新)의 가르침과도 다르지 않다. 저자는 한 발 물러서서 사물을, 그리고 세상사를 바라보라고 권한다. 그래야만 모든 것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일상의 여러 사건, 혹은 사물들을 이렇게 다른 시각(視覺)으로 들여다보는 저자의 뒷배경에는 선시(禪詩), 게송, 유교 경전 등 고전(古典)을 통해서만 느낄 수 있는 깊이와 깨달음이 있다. 독자들은 저자가 풀어내는 옛 시를 읽으면서 수많은 사연과 감성을 지닌 인간의 삶 속에서, 보다 깊고 선명(鮮明)한 이야기를 길어 올리는 현장을 목격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옛 시를 억지로 설명하지도, 강요하지도 않는다. 연륜이 묻어나는 너그러운 문체(文體)로 우리네 삶의 이곳저곳을 천천히 더듬어 갈 뿐이다. 그 과정에서 우리들이 쉬이 접해 보지 못했던 옛 시의 속살을 우리네 삶과 밀접하게 연결시킨다. 그리고 시가 가진 특유의 고요함으로, 바쁜 삶 속의 우리들이 나와 내 주변(周邊)을 돌아볼 수 있는 고즈넉한 순간을 마련해 준다. 문학과 삶을 온전히 즐기고 있는 저자의 손길을 천천히 따라가다 보면, 독자들은 저자가 말하는 ‘생애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 곧 이 순간임을 깨닫게 된다.
고전은 읽는 이의 내면을 비춰주는 거울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에 그 존재의 필요성이 있다. 독자에게 문학의 참된 가치인 정화(catharsis)의 기회를 부여(賦與)해 주는 것이다. 정화는 해소(解消)며, 유희(遊戱)고, 동시에 치유(治癒)다. 나를 찬찬히 들여다봄으로써 인생의 즐거움과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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