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나는 고양이 스토커

 

영화제에 가면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만큼 꼭 한 편 정도는 일본영화를 보게 된다. 상대적으로 진지하고 무거운 영화제 특유의 예술영화들 중 그나마 가볍게 볼 수 있을 것 같은 인상 때문일 것이다.
가볍다고 하면 얼핏 부정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영화제에서 종종 눈에 띄는 재밌는 일본영화에서는 흔한 팝콘 무비와는 질이 다른 표홀(飄忽)함의 향기가 묻어난다.
일본영화 특유의 소소함의 미학이라 해도 좋다. 영화가 될 것 같지 않은 일상의 소재를 찾아내는 그들의 눈높이는 고양이의 신중함을 닮았다. 엄숙주의의 무게에 눌리지 않고 일상에 어루만지면서도 깊이를 잃지 않는 카메라의 발걸음 또한 딱 고양이의 그것을 닮았다. 일본인들이 유난히 고양이를 사랑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진 않을 것이다.
 올해 전주영화제에서 상영된 <나는 고양이 스토커> 역시 제목만으로도 능히 일본영화임을 짐작할 수 있는 영화다. 사람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닮아 간다.
동네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고양이 사진을 찍고 고양이 지도를 만드는 것이 취미인 헌책방 아르바이트생 ‘하루’는 고양이의 눈높이에서 세상을 바라볼 줄 안다. 그만큼 인간관계에 서툴고 낯선 사람을 경계하지만 그러다가도 문득 관심을 자극하면 스스럼없이 다가가 눈망울을 반짝이는 고양이 스토커 ‘하루’의 모습에서 우리는 그녀가 좋아하는 고양이의 그림자를 발견할 수 있다.
아사오 하루미의 동명 인기 수필을 영화화한 이 영화는 일종의 성장영화인 동시에 고양이 스토커가 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영화이기도 하다. 이 영화의 서사는 비교적 단순하다.
어느 날 사라진 서점주인 부부의 고양이 치비톰을 고양이 스토커 하루가 자신의 ‘스토커’ 능력으로 찾아 나선다는 것이 이야기의 전부이다.
하지만 그것뿐이라면 일본의 저명한 평론가 하스미 시게히코가 이 영화를 2009년 Best 10에 올리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고양이 스토커>는 결과가 아닌 과정을 즐겨야하는 영화다.
이 영화의 진정한 매력은 고양이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보여주는 형식과 내용의 조화로운 일치에 있다.
주인집 고양이를 찾아나서는 고양이 스토커 하루의 행동을 담아내는 카메라 역시 고양이의 발걸음을 닮았다.  
롱테이크는 종종 관습처럼 쓰이기도 하고 그것이 마치 예술영화의 표상인양 사용되기도 하지만, 형식이란 내용을 담는 그릇이 되어야 한다.
<나는 고양이 스토커>의 카메라는 두드러지게 롱테이크를 선호하지만 고양이를 쫓는 하루의 시선이 될 때면 격렬한 핸드핼드의 사용도 서슴지 않는다.
고양이의 시점에서 격렬히 움직이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 카메라는 어느 순간 가만히 멈추고 도쿄의 따뜻한 골목풍경을 온전히 담아낼 줄 안다.
일상이 묻어 있는 골목길에 함부로 가위질 하지 않고, 두레박으로 고스란히 길어 올린 것처럼 공간 그대로를 카메라에 담아내는 영화는 롱테이크라는 형식과 그것이 지향하는 목표가 일치했을 때 얼마나 화면이 깊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 순간 서로 닮은 고양이와 여주인공의 삶은 공명하고 그들을 닮은 카메라를 통해 이러한 공명은 관객에게까지 자연스레 전이된다. 고양이처럼 영민하고 사려 깊은 카메라 앞에서, 우리는 기꺼이 그녀의 혹은 그녀가 쫓는 고양이의 스토커가 될 준비가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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