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 끝에 담아낸 부처님의 가르침

▲ 박경귀 작(作), ‘가섭존자, 분소의를 입고 고요한 나무아래 앉자’

 

“불화(佛畫)를 그리는 것은 그분을 만나기 위한 수행인 것을, 내 마음 자리가 정토(淨土)를 볼 때 손 끝의 붓은 그곳을 그리고 있었습니다.”

불화에 대한 열정과 연구

예술의 거리 삼청동에 위치한 ‘선 아트 스페이스’는 불교복합문화공간으로 우리대학 박경귀(불교미술 89졸) 동문에 의해 설립(設立)됐다. 현재에도 ‘선 아트 스페이스’에서는 박경귀 동문의 붓이 여전히 부처님을 그리고 있다.
박경귀 동문은 친분이 있던 형의 영향으로 13살 때부터 불화에 입문해 전통도제식 교육을 받았다. 우리대학에 진학하기 전까지 박 동문이 접한 탱화는 주로 사찰 탱화를 지배하는 조선시대 불화였다.
우리대학 불교미술과에 입학한 후 처음으로 고려불화를 마주하게 됐고 그 순간부터 박 동문은 고려불화의 매력에 빠졌다. 그를 매료시킨 고려불화는 질서정연한 가족사진과 같은 조선불화와는 달리 불화 속 부처님들은 적극적인 동세를 취하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
박 동문은 “고려불화를 처음 접하게 되면서 불화에 대한 새로운 눈을 가지게 되었다”며 “고려불화는 나의 작품세계를 한층 성숙시켜준 계기이자 전환의 계기였다”고 당시 고려불화를 접하게 해줬던 은사 문명대 교수의 가르침을 추억했다.
불교미술과를 졸업한 후 그는 ‘선불화공방’에서 불화제작을 위해 일생을 바쳤다. 그 결과 박 동문은 성관사의 아미타극락변상도, 무량사 일백사위신중도, 조계사 시왕도, LA태고사 단청 등 수많은 절에 그의 흔적을 남길 수 있었다.
불화 조성에 매진하던 그의 열정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수많은 대찰(大刹)에서 수많은 탱화를 그렸던 그는 불화를 이 시대와 현대인들과 만나게 하고 싶었다. 이에 그는 전통불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기 위해 노력했으며 그 결과 불교복합문화공간인 ‘선 아트 스페이스’가 설립 될 수 있었다.
불화를 어렵게만 생각하는 현실이 안타까웠다는 박 동문은 “현대적 붓다가 존재하는 ‘선 아트 스페이스’를 통해 불교미술의 다양화와 대중화가 이뤄졌으면 한다”고 설립 취지를 밝혔다.

 

불교복합문화공간으로

‘선 아트 스페이스’는 지하 1층과 지상 4층으로 30~40평 남짓한 작은 공간이지만 불화와 관련된 많은 것을 담고 있다. 지하 1층에 위치한 작은 갤러리 ‘스페이스선+’는 비영리 복합문화공간으로 인간, 자연, 생명, 환경 등 불교의 공생적 가치가 요구되는 사회현실을 직시하여 사회에 이러한 가치를 쉽고, 재미있는 예술 언어로 소통시키고자 마련된 공간이다. ‘스페이스선+’에 대해 박 동문은 “자본과 마케팅에 의해 독점되는 예술시장에서 한 걸음 물러서 참된 사람의 숨소리를 듣고 나누고 모아내고자 하는 하나의 바람으로 시작했다”라고 설명했다. 또한 ‘선 아트 스페이스’ 4층에는 ‘스튜디오 선불화공방’이 있다.
‘스튜디오 선불화공방’은 1989년 개원하여 불교회화 연구에 집중해온 불교회화 연구소로 불화연구와 사찰장엄 현대화 시도를 꾸준히 해왔고 앞으로도 불교미술의 다양화와 대중화 작업들을 계속적으로 진행할 예정이다.
이 외에도 ‘선 아트 스페이스’에서는 ‘아카데미 선그림’을 통해 일반인을 대상으로 놀이형식의 전통회화체험 프로그램 등을 통해 전통회화를 보다 친근하게 가르치고 있다. ‘실용창작강좌’, ‘전통회화강좌’ 등 우리나라 전통미술에 대한 창의적 커리큘럼을 통해 우리나라 전통미술의 가치를 전파하고 있다.
또한 어린이와 청소년을 비롯해 일반인, 외국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계층을 대상으로 불교미술을 가르침에 따라 포교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이렇듯 포교의 효과까지도 기대할 수 있는 ‘선 아트 스페이스’는 현재 조계종으로부터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는 현재까지 ‘선 아트 스페이스’를 제외한 불교문화공간이 전무할 뿐만 아니라 그 지원 또한 미비하다. ‘선 아트 스페이스’의 경우에도 여러 가지 불교 커리큘럼을 통해 교육을 진행하고 있지만 지원이 적어 커리큘럼을 진행하는데 있어 속도가 더딘 문제점을 안고 있다.

아직도 연구는 끝나지 않았다

이에 대해 박 동문은 “‘선 아트 스페이스’는 이제 첫 발걸음을 시작했을 뿐이다. 첫 발을 내딛은 이상 조금씩이지만 초기 계획을 달성하기 위해 앞으로도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집에 쌀이 떨어져 곤궁할 때도 선화를 그리고 아이들에게 가야금을 켜고 대금을 불 만큼 호연지기(浩然之氣)적인 삶을 살아온 박경귀 동문의 소박한 꿈은 앞으로 더디지만 조금씩 구체화 되어나갈 것이다. 작지만 결코 작지 않은 공간 속에서 희망의 청사진(靑寫眞)을 그리는 그의 소망이 날개를 달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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