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국의 가르침으로 40여 년간 248편의 작품 연출한 김재형(국문61졸) 동문

 프로필 
△1936년 서울 출생 △1961년 동국대 국문학과 졸업 △1962년 KBS 입사 △1997년 한국 프로듀서상 공로상 수상 △2005년 동국대 석좌교수 △2010년 한국공연예술종합학교 학장 대표작 △국토만리(1962作) △민며느리(1964作) △사모곡(1972作) △임금님의 첫사랑(1975作) △별당아씨(1976作) △달동네(1980作) △한명회(1994作) △서궁(1995 作) △용의 눈물(1998作) △여인천하(2001 作) 등

"뭬이" 라는 드라마 속 대사를 기억하는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든 한번쯤 따라해 봤을 법하다.
이는 2000년대 초반 우리나라에 사극 열풍(熱風)을 불러온 드라마 ‘여인천하’에 등장한 명대사다. 그 당시 ‘여인천하’는 전국 평균시청률 48.6%를 기록하며 드라마의 모든 것이 연일 화제를 모았다. 특히 정난정, 문정왕후 등의 여자주인공들이 드라마의 엔딩장면에서 강렬한 눈빛으로 무언가를 응시(凝視)하던 모습은 8년이 지난 지금도 사극계의 명장면으로 꼽힌다. 이 강렬했던 장면의 뒤에는 그보다 더 강한 카리스마로 40여 년 간 촬영장을 이끌어 온 김재형(국문61졸) 동문이 있었다.

김재형 동문은 우리나라 TV 최초(最初) 사극인 ‘국토만리’를 시작으로 ‘사모곡’, ‘한명회’, ‘서궁’, ‘용의 눈물’, ‘왕의 여자’ 등의 사극을 연출(演出)해 온 우리나라 사극계의 산 역사다.

40여 년 연출의 힘, 동국

지난 40여 년간 248편의 작품을 연출해 온 그의 힘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김 동문은 “동국대”라고 거침없이 대답했다. 그는 “동국대 재학시절 서정주, 양주동 교수의 강의가 지금의 나를 있게 한 씨앗”이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희곡이 쓰고 싶어 국내 최고로 손꼽히는 우리대학 국문과에 입학한 김재형 동문은 입학을 하자마자 서정주, 양주동 교수의 강의에 매료됐다. 그는 매 강의시간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던 양주동 교수님의 강의는 졸업한 지 50여 년이 가까이 된 지금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연극부 활동하며 연출가 꿈꿔

 

그는 당시 최고의 위상을 자랑하던 우리대학 연극부로 활동하며 연출에 대한 꿈을 키워갔다. 1950년대 ‘동대극예술연구회’를 주도하며 연극부의 부흥기(復興期)를 마련했던 장한기, 유치진 교수의 가르침은 김 동문이 연극부 내에서 힘든 일을 도맡아 하면서도 활동을 지속할 수 있는 원동력이었다. 또한 선배였던 유현목 동문 역시 그에게 많은 가르침을 줬다. 그는 “청소, 심부름 등을 하느라 힘들었지만 실력 있는 교수와 선배들이 나를 이끌어줬다”며 “그 때의 가르침이 PD생활을 하는 데 큰 힘이 됐다”고 말했다.

김재형 동문이 처음으로 연출을 맡은 작품은 동기였던 오학영 동문이 쓴 ‘명암시대’. 공연이 진행되던 사흘 내내 중강당이 만원세례를 이룰 정도로 인기가 대단했다고 한다.

그는 첫 작품의 성공으로 인해 연출에 대한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다고 했다. 또한 그는 중앙대와 서라벌예대에 다니던 학생들과 모여 신무대실험극회를 결성해 대학 연극계를 주도(主導)했다. 그 때 그가 원각사에서 연출한 ‘원고지’는 전국적으로 관심을 모았다.

 ‘원고지’는 우리대학에 재직 중이던 이근삼 교수의 작품이었다. 김 동문은 내심 이 교수의 조언을 기대했지만 이 교수는 김 동문이 자신에게 의존할까 걱정돼 관심 한 번 주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이근삼 교수는 공연 첫 날 직접 관람하러 와 김 동문의 어깨를 톡톡 두드려주었다고 한다. 그것이 김재형 동문에게는 열 마디의 말보다 더 크게 와 닿았다고 한다.

새로운 것에 도전하라

그런 김재형 동문이 연극에서 TV 드라마로 눈을 돌리게 된 것은 우리대학 선배이자 당시 KBS의 국장이었던 윤길구 동문의 권유(勸誘)때문이었다. 졸업을 앞두고 KBS 성우로 활동하고 있던 김 동문에게 처음으로 텔레비전을 소개한 것이다.

그는 텔레비전 이야기를 듣는 순간 눈이 번쩍 뜨이며 ‘이거다!’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텔레비전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그는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이 많았다”며 “텔레비전이 나에겐 새로운 존재였다”고 말했다. 그 때는 텔레비전과 관련된 서적들을 국내에서 구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래서 그는 영국에서 공부하고 있던 아버지에게 텔레비전에 관련된 서적을 받아 공부하기 시작했고 1961년 시험에 합격하며 KBS 개국 요원으로 PD가 됐다. 

 드라마를 통한 통일이 소원

당시 대부분의 PD들은 현대극에만 집중했지만 김 동문은 과감하게 사극연출을 선택했다. 아무도 하지 않은 새로운 도전이라는 이유에서였다.

결국 그는 TV 사상 최초 사극인 ‘국토만리’를 시작으로 ‘사모곡’, ‘인목대비’, ‘한명회’, ‘용의 눈물’, ‘왕의 여자’ 등 40여 년간 248편의 작품을 연출하며 사극 연출의 산 역사가 됐다.

김재형 동문은 우리대학 영상대학원 문화컨텐츠 학과의 석좌교수로 지난 2005년 임명(任命)됐다.

그는 석좌교수로 임명된 순간 후배들을 강단에 서 마주할 생각에 한없이 기쁘고 떨렸다고 한다. 아직도 그는 눈빛이 살아 있는 열정이 가득한 학생들을 볼 때마다 가슴이 설렌다고 한다. 김 동문은 “내가 아는 모든 걸 쏟아내 전해주고 싶다”며 후배들에게 명강의 보다는 진지한 강의를 하고 싶다는 뜻을 내비쳤다.

지금까지 40여 년간 방송계에서 완성도 있는 사극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 온 김재형 동문의 도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는 마지막 작품으로 조선왕조 오백년사를 다룬 남북합작드라마를 제작하고 싶다는 소원을 드러냈다.

어린 시절 분단의 아픔을 겪었던 그이기에 그는 대한민국의 연출가로 문화적으로나마 통일(統一)을 이루고 싶다고 했다. 그의 40여 년 사극 연출 노하우와 정성이 고스란히 담긴 남북합작드라마를 곧 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저작권자 © 대학미디어센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