開講(개강)을 맞아

  참으로 오랜 여름잠이었던 듯 싶다. 끈질기게 내리는 비와 휴강으로 인해 더욱 더 지루하게 느껴졌던 나날들. 며칠사이의 일들은 마치 몇십 년이 지난 것 같이 느껴지게 하고 나 자신 또한 그만큼 성숙하고 커진 기분이다. 백여일만에 활기를 띠는 캠퍼스를 찾아 서로 웃음과 반가움으로 대하는 친구들의 얼굴에서도 참으로 萬感(만감)이 오가는 듯하다.
  휴교와 개강.
  지금에서와 우리는 무엇을 탓할 수 있을 것인가. 무엇을 탓하거나 누구의 잘잘못을 가리기에 앞서 우선은 자신의 자세부터 돌아보고 지나간 과거를 미래를 위한 거울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 휴교를 하고 있는 동안의 엄청난 공백의 시간 되돌려 받을 수 없는 소중한 시간을 그것은 학문에의 정진과 탐구에 경주해야 할 학생들이 자의에서건 타의에서건 물을 잃고, 그 물을 잃은 물고기는 물 밑을 헤아리기 어려운 깊은 강물 같은 슬픔을 절감하며 바라는 미래가 이렇게 일그러지고 지친, 헤어나려는 안간힘마저 상실해 버린 것 같은 얼굴에서 통철한 아픔을 느끼게 된다.
  나 자신을 돌아보기 위한 기회로 혹은 여러 가지 면에서 전화위복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서 시간이 없다거나 바쁘다는 핑계로 이루어 오랜 일들에 시간을 할애해야겠다는 생각과는 반대로 실제로는 어수선하고 불안한 마음속에서 그 어느 것에도 손댈 수 없었던 나날들. 하지만 많은 학생들이 생각과 행동을 일치시켜, 새벽부터 도서관을 찾는 젊은이들의 눈에서 샛별의 초롱함을, 간단한 행장을 꾸려 야외와 여행길에 오른 학생들에게서 싱싱한 젊음을, 노동관이나 기타작업장에서 땀 흘리는 얼굴에서 나 아닌 다른 세계의 사람들의 생활을 알고자하는 열망을 읽으며 각자들 나름대로 적절하고 유용하며 보람되게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생각에 가슴 뿌듯해지기도 했고, 사실 그 많은 밤사이로 수많은 생각이 다녀간 것을 기억하며 쉬지 않고 정확하게 제 위치를 지키고 회전하는 시계 바늘을 보고 불현듯 생활의 나태함을 느끼기도 했다.
  그 생활이 옳고 그르고 간에 사람은 항상 자기의 주관에 따라 행동한다고 생각한다. 그 주관은 인생이라는 바다를 향해하는데 있어 하나의 노가 될 수 있다. 익숙한 뱃사공은 어두운 바다에 처해 있을지라도 노를 잘 저음으로 해서 밝은 곳으로 나아갈 수 있으나 서투른 뱃사공은 어두운 바다에 처했을 때 서투른 노를 젓게 마련이고 자연히 그 배는 어두운 곳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된다. 대학이라는 곳도 일종의 익숙히 노 젓는 기술을 배우는 곳이라면 올바르고 뚜렷한 목적의식을 가진 주관으로 키워 어두운 곳에서 자신은 물론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까지도 구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을 익혀야 하지 않을까.
  교육을 남보다 더 받고 있다는 사실은 굳이 나라와 사회에 유형무형의 빚을 그만큼 많이 졌다는 것이다. 우리들은 할 일이 많다. 이 유형무형의 빚을 갚아야 할 일이다. 마치 특권을 누리고 있는 듯한 태도에서 벗어나 겸손하고 겸허한 마음가짐으로 많은 것을 배우고 익혀 그 닦은 인격과 얻은 지식을 활용하여 사회에 환원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회에의 환원은 기업가들이 자본을 되돌리는 것만은 아니리라.
  가을은 한걸음 한걸음 다가오고 있는데 우리는 풍성해야 할 가을에 무엇을 거둘 수 있을 것인가. 함께 공부하고 이야기를 나누면 학ㅎ여과 학우들끼리 되도록 빨리 흉금을 터놓고 이야기하고 웃을 수 있는 날이 다시 오기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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