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型(인형) <1>

  드문 일이었다.
<인형의 집>주인이 그날처럼 특정 손님을 기다려본 적은 일찌기 없었다.
  가게 문을 닫을 때가 되어도 일호(一浩)는 나타나지 않았다.
  ‘한 번 만들어 보시오.;
  일호가 마지막 말을 남기고 간 지 벌써 닷새가 지났다. 사흘을 넘기지 않고 가게에 들리던 일호가 닷새가 지나도록 나타나지 않을 것 같자 주인은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알아내야 한다’
  입안으로 중얼거리면서, 주인은 구석에 일호가 놓고 간 인형들을 쳐다보았다.
  일호가 <인형의 집>에 최초로 나타난 것은 근처에 빌딩 신축공사가 시작되고 나서였다. 반듯하고 반들반들한 고층건물을 짓기 위해, 신축 조감도를 설치하고, 포크레인이 기존의 조그만 집들을 사정없이 부수어댔다. 크르릉 소리를 내며 음흉하고 무지하게 생겨먹은 기다란 모가지를 내두르는 포크레인 앞에서 집채들은 푸석푸석 주저앉았다. 트럭들이 철근과 벽돌을 실어 날랐다. 커다란 쇠기둥을 박는 둔탁한 금속성이 동네를 위협했다. 무지한 쇳덩어리가 허공에서 움직일 때마다 쇠기둥이 조금씩 땅속으로 잠입해갔다. 대체로 조용했던 동네가 활기있게 움직이는 것 같았다.
  공사장으로 날품팔이꾼들이 모여들었다. 일호는 벽돌 나르는 일을 맡았다.
  자신이 나르는 벽돌이 하나씩 아귀를 맞춰서 쌓여질 때마다 일호는 피식피식 웃었다. 결국은 자기 자신에 의해서 경멸될 짓거리를 열심히 수행하고 있는 자신이 우스웠다.
  주위의 건물들이 길게 그림자를 드리우며 전깃불이 건물들의 창을 통해 흘러나오기 시작해서 해가 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그날의 작업이 끝났다.
  일호는 숙소를 향해 걸었다. 도중에 지하상가가 있었다. 그곳엔 똑같은 크기로 분할된 가게들이 즐비했다. 가게마다 화려하게 만들어진 상품들이 진열되어 있었고, 깔끔한 옷을 차려입은 사람들이 손님을 맞이하고 있었다. 모두 표정 없는 얼굴들이었다. 일호는 강력한 소외감을 느꼈다. 몇 개의 가게를 지나 일호는 걸음을 멈췄다. <인형의 집>앞이었다. 한평 남짓한 직사각형의 가게에는 인형들이 가득차 있었다. 가게주인은 사십이 좀 넘어 보이는 사내였다. 금빛을 내는 가느다란 안경테가 형광등 불빛을 받아 차디차게 보였다. 딱 맞는 양복에 잘 다려진 와이셔츠를 입고 넥타이를 단정하게 맨 주인의 모습은 거의 빈틈이 없어 보였다. 사내의 모습이 주위의 풍경과 잘 어울린다고 일호는 생각했다.
  주인은 인형들을 정돈했다. 조금이라도 제자리를 이탈한 인형을 정확한 위치에 진열하는데 열중했다. 때문에 자기 가게 앞에서 안을 유심히 쳐다보고 있는 허름한 차림의 사내를 알아보지 못했다. 설사 알아차렸다 해도 주인은 그에게 어떤 관심을 나타내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보잘것없는 사내가 자기 가게의 손님이 되기에는 적당치 않다고 생각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일호는 계속해서 인형들을 살폈다.
  인형들은 표면이 반질반질하게 처리되어 있었고, 앙증맞게 꾸며진 옷이 입혀져 있었는데 그 형태가 모두 일률적이었다. 대량생산된 것들이었다. 차이가 있다면 옷의 색깔이 조금씩 다르다는 것뿐이었다.
  ‘잘되어있군.’
  일호는 중얼거리며 가게 앞을 떠났다.
  다음날도 일호는 작업을 끝낸 후 <인형의 집>앞에 멈춰 섰다. 가게 안에 손님들이 몇 명 있었다. 주인은 손님들에게 자기 가게의 인형에 대하여 열심히 설명하고 있었다. 주인은 인형의 팔다리를 움직여 보였다. 그의 손이 요구하는 대로 인형의 팔이 회전운동을 했고, 다리가 전후좌우로 움직였다. 손님들은 흡족한 표정으로 인형을 사들고 가게를 나갔다. 주인의 얼굴에 손님들이 흘리고 간 흡족함이 배어들었다.
  손님이 잠시 끊어졌을 때 주인은 진열장 앞에서 있는 일호를 발견했다. 그러나 그는 역시 일호에게 관심을 보내지 않았다. 다시 손님이 나타났고 일호는 그곳을 떠났다.
  ‘역시 잘되어있군.’
  자리를 뜨면서 일호는 전날처럼 중얼거렸다.
  일호가 노동을 끝내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인형의 집>앞에서 상당한 시간을 보내는 일은 그후로도 며칠간 계속되었다.
  가게 주인은 차츰 때에 절은 작업복을 입은 초라한 사내를 의식하게 되었다. 그는 며칠씩이나 자기 가게 앞에서 어정거리는 일호가 못마땅했다. 그는 일호의 몰골이 자기 가게의 이미지에 악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했고, 그 꾀죄죄한 녀석이 가게에 나타나는 것을 막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저녁때가 되자 일호가 모습을 나타냈다. 주인은 이제 그 가게앞에 멈춰서면 따끔하게 혼을 내주리라고 마음을 다졌다. 그러나 일호가 가게 안으로 불쑥 들어섬으로해서 사정은 달라졌다.
  그날은 작업이 끝나자 일호는 서두는 걸음으로 공사판을 떠났다. 벽돌을 나르면서 일호는 오늘은 그 가게 안으로 들어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었다.
  가게에 도착하자 일호는 망설임 없이 가게 문을 열었다. 알미늄 샷시로 짜여진 출입문이 알미늄 빛깔의 얇은 마찰음을 냈다. 가게안으로 들어선 일호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밉살맞을 정도로 깨끗하게 정돈된 가게의 풍경이 자신의 모습으로 인하여 파괴되고 있음을 알았다.
<계속>

저작권자 © 대학미디어센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