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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6.3 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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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스런 동국인 <4> 헌법재판관 김희옥 동문“사람 위한 법, 법 지배 받는 사람 그 기로에서 고민한다”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尊嚴)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權利)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이는 대한민국 헌법(憲法) 제 10조항이다. 이처럼 국민을 위해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고 헌법을 수호하기 위해 힘쓰고 있는 동문이 있다. 바로 헌법재판관으로 재직 중인 김희옥(법72졸) 동문이다. 

법은 사람을 지키는 틀이어야

김희옥 동문은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추천으로 2006년 헌법재판관에 부임했다. 김 동문은 “국민의 기본권을 수호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크다”면서도 “헌법재판을 통해 사회가 변화하는 모습을 보면 보람을 느낀다”고 헌법재판관으로서의 사명감(使命感)을 밝혔다. 또한 그는 “법은 사람을 위해 존재한다”면서 “하지만 법을 움직이는 주체도 사람이기 때문에 법을 운용하는 사람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법조인으로서의 어려움도 전했다. 특히 그는 최근 사형제도에 대한 판결을 내릴 때 가장 고민이 많았다고 한다.

그는 “사형이라는 것은 본질적으로 생명권을 침해하는 것이다”라며 “그것은 부처의 생명 존중 사상과도 거리가 멀다”고 언급했다. 

운문사서 싹튼 불교 인연 각별

김희옥 동문은 매일 하루를 절에서 시작할 정도로 불교에 대한 관심이 각별하다. 김 동문은 “놀 곳이 마땅치 않던 시절 운문사를 뛰어다녔다”며 “그 덕에 불교에 익숙해 질 수 있었다”고 불교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를 밝혔다. 김 동문은 사건을 접할 때마다 인연(因緣)사상이라는 불교적 가치를 먼저 생각하게 된다고 한다. 그런 그가 우리대학에 입학하게 된 것도 우리대학이 불교종립대학이라는 이유가 컸다.

김희옥 동문은 1968년 법학과에 전체 수석으로 입학했다. 그는 “수석을 했다는 것과 더불어 불교를 가까이서 접할 수 있는 환경에서 공부할 수 있다는 사실이 기뻤다”고 말하며 당시를 회상했다. 또한 그는 “어렸을 때부터 사회구성원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었다”고 법학과에 입학하게 된 이유를 밝혔다.

 한상범 교수 가르침 간직해


지방에서 온 김희옥 동문에게 근로장학사에서 함께 생활했던 선후배간의 정은 큰 힘이 됐다. 근로장학사는 지방에서 올라온 학생들에게 학교가 마련해 준 기숙사다. 김 동문은 “근로장학사에서 있었던 추억은 3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잊을 수 없다”며 그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근로장학사에서 술잔을 기울이며 암울했던 당시 상황에 대해 토론의 장을 열기도 했고 함께 북한산에 오르며 미래를 다짐하기도 했다. 더불어 교수들과의 인연도 그에게는 잊을 수 없는 추억이다. 김 동문은 재학시절 법학과 한상범 교수의 연구실에서 살다시피 했다. 그는 “내가 교수님 조교를 자청했다”며 “교수님 연구실에서 법에 대해 많은 토론을 나눌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교수님의 말씀이 아직까지도 판결을 내리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고 전했다.

‘여유를 가지고 서둘러라’

김희옥 동문은 학부 졸업 후 4년 만에  사법고시 18회에 합격했다. 그는 사법시험을 준비하면서 매일 ‘Eile mit Weile’라는 문구를 가슴에 새겼다고 한다. ‘여유를 가지고 서둘러라’라는 뜻으로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여유를 가지기 위해서는 항상 서둘러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는 조금 이라도 더 여유 있게 공부하기 위해 아침에 남보다 서둘러 일어나는 습관을 가졌다.

이런 그의 태도는 30여 년 공직자 생활에도 큰 도움이 됐다. 그는 일을 처리함에 있어 성실(誠實)함의 대명사로 알려져 있다. 그는 “공직은 국민으로부터 위임(委任)받은 것이다”라며 “성실하지 못한 것은 국민의 신뢰를 배신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김희옥 동문은 76년 검사로 부임해 법무부 차관을 거쳐 헌법재판관 까지 30여 년간 공직자로 생활하며 동국을 빛내왔다. 이러한 공을 인정받아 그는 총동창회가 선정한 ‘2007 자랑스러운 동국인상’을 받기도 했다.

모교에 대한 애정도 각별해

 

   
▲헌법재판관 취임 선서를 하고 있는 김희옥 동문.
 
늘 학교에 대한 애정을 잊지 않는 그이기에 그는 현재 학교 상황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었다. “과거에 비해 학교의 위상이 많이 떨어진 것 같아 아쉽다”고 말하는 김희옥 동문. 특히 그는 로스쿨에 선정되지 못한 것에 대한 답답함을 토로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로스쿨 탈락에도 열심히 공부해 매년 사법시험에 합격하는 후배들이 자랑스럽다”고 밝혔다. 그는 동국 후배들에게 “모든 것은 학교의 순위보다 자신의 노력에 달려 있다”고 조언했다. 그는 높은 목표를 지향하는 것이 중요하며 그에 맞는 피나는 노력을 한다면 뜻을 충분히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헌법재판소 뒷마당에는 ‘헌법수호자상’이 서있다. 이 헌법수호자 상은 오른손에 저울이 새겨진 책을 가슴에 품고 왼손은 쇠사슬을 감아 강하게 움켜쥐고 있다. 공평과 정의의 상징인 저울을 가슴에 새기고 자유를 억압하는 쇠사슬을 헌법을 통해 없애겠다는 의지를 상징한다. 30여 년 간 국민의 권리를 보호하고자 끊임없이 노력한 김 동문과 헌법수호자 상의 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닮아 있는 듯하다.  

프로필

▲1948 경북 청도 출생 ▲1972 동국대 법과대 졸업 ▲1976 제 18회 사법시험 합격 ▲1978 부산지방검찰청 검사 ▲1989 법무연수원 교수 ▲1995 사법연수원 교수 ▲1998 수원지방검찰청 평택지청장 ▲2003 대전지방검찰청 검사장 ▲2004 사법연수원 부원장 ▲2005 법무부 차관 ▲現 헌법재판관

최진아 기자  gina@dongguk.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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