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정신으로 뭉쳤던 60년

1950~60년대
동대신문의 역사는 1947년 가을 창간된 동국월보(東國月報)로부터 시작됐다. 동국월보는 타블로이드 판형 4면으로 제작됐으나 필화로 파문을 일으켜 발간이 중단됐다.

이후 50년 4월 15일, 대판 4면의 동대신문 창간호가 발간됐다. 그러나 2호 조판 중 6.25 전쟁의 발발로 또다시 발간이 중단됐다.

이후 부산 피난지에서 타블로이드 4면으로 동대신문 2호를 52년 6월 속간했으나, 당시 기사에서 문제가 발생해 배부가 중지됐다. 전쟁 후 1953년 11월부터 타블로이드판 ‘동대월보’가 속간됐다. 이어 55년 2월 20일 발간된 제 19호부터 배대판 4면으로 증면됐고 그 해 7월 ‘동대신보’로 제호가 바뀐 데 이어 9월 다시 ‘동대시보’로 제호가 변경됐다. 59년 3월 16일 자로 지령 100호가 발간된 데 이어 그 해 10월 구내인쇄소에서 신문제작이 시작됐다. 60년 10월에는 주간제를 두고 초대주간에 정태용 동문이 취임했다. 이듬해 7월 5일에는 ‘깨져 가는 운동장의 꿈’이라는 제목의 호외 제 1호를 발간했다. 62년 7월 6일에는 제호가 ‘동대신문’으로 변경됐다. 63년에는 ‘동대신문사 학술상’이 제정돼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지령 500호가 71년 10월 발간됐으며 이듬해 2월 사무실이 본관 1층에서 학생회관 지하 1층으로 옮겨졌다.

70~80년대
75년 4월 15일에는 본지 창간 25주년을 기념하여 동대신문 논설집 ‘대학의 이상’을 발행했다. 79년 3월 총무를 편집국장제로 승격했다. 80년 4월 창간 3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송건호(전 동아일보 편집국장)의 ‘사회 변동과 신문의 역할’, 류재천(서강대 교수)의 ‘70년대 대학신문의 반성’ 등의 주제로 초청강연회를 개최했다. 이어 8월에는 동대신문 학술상 수상작품을 모아 ‘대학의 지성’을 발행했고 11월에는 본사가 꾸준히 모아온 사진을 중심으로 ‘제1회 보도사진전’을 개최했다. 81년 9월 15일에는 지령 800호가 발간됐다. 이듬해 6월 지령 825호 중 시위관련기사로 필화사건이 발생했다. 이어 10월에는 ‘제2회 보도사진전’이 개최됐다.

86년 2월에는 ‘파쇼헌법철폐’기획으로 필화사건이 발생했다. 같은 해 9월 ‘동대신문사 학술상’ 모집분야 가운데 창작문학부문을 독립시켜 ‘동대문학상’을 제정했다.
1988년 8월에는 지령 1000호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칼럼선집 ‘달하나 천강에’ 및 동대신문 축쇄판 제1권(1~181호 수록)을 발행했다. 이어 9월에는 국내외 대학신문전시회개최 및 ‘제5회 보도사진전’을 개최했다. 동시에 전국 고교신문 및 교지 경연대회를 개최했다. 그리고 9월 13일 지령 1000호를 발행했다. 89년 3월 제 1012호(3월 1일자)부터 전면가로쓰기 체제로 변경했다. 또 여초 김응현 씨가 ‘광개토대왕비문체’로 제작해준 제호 서체로 변경했다.

1990~현재
92년 5월 6일 지령 1200호가 발행됐으며 같은 해 10월 7일 ‘소나기 사건’이 발생했다. 97년 9월 1일 동대신문 제호를 좌측 상단으로 이동했다. 99년 3월 1일부터 12면과 8면이 교차 발행되기 시작했으며 첫  면과 끝 면이 컬러로 제작되기 시작했다. 또한 제호를 한글로 변경하며 우측상단으로 이동했으며 인터넷 신문 기사서비스를 제공했다.

2004년 2월에는 학생회관 지하 1층에서 V동 1층으로 이전했다. 이듬해 2월에는 지령 1400호가 발행됐다. 2007년 2월 대학본관 1층으로 이전했으며 같은 해 9월 동국미디어센터 대학미디어팀 산하기구로 개편됐다. 2009년 8월 24일 자로 베를리너 판 12면으로 판 변형 및 증면을 실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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