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애하는 동국 가족 여러분!
불기 2550년의 새 아침이 밝았습니다. 오늘은 일본의 침략에 대응하고 민족의 요청에 부응하기 위해 우리 동국대학교의 전신인 명진학교가 설립된지 꼭 100년이 되는 해의 첫날입니다.
우리 선배들께서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현대적인 방식으로 해석함으로써 중생들에게 접근하여 혼탁한 사회를 정화하기 위해서, 당시 정치 권력으로부터 핍박과 멸시를 받아 사찰 재정이 심히 어려운 상황에서도 전국 17개 사찰에서 기금을 모아 명진학교를 설립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지금은 교직원 일천명 재학생 이만명 병원 6개소에 이르는 엄청난 규모의 대학으로 성장하였습니다.
또한 일제 강점의 시기에 민족 정신의 함양과 독립운동에 적극적으로 기여하였고, 그 때문에 총 두 번에 걸쳐 강제 폐교 조치를 당했습니다. 이처럼 그 어느 나라 어느 대학에서도 찾아 보기 힘든 탄압을 받으면서도, 우리의 선배들은 이에 굴복하지 않고 고고한 학풍을 올곧게 지켜왔습니다.

탄압에 굴하지 않고 지켜온 학풍

그러므로 우리 동국대학이 한 세기라는 적지 않은 세월을 올바르게 존속할 수 있었던 것은 안으로는 불교계의 근대화에 노력하고 밖으로는 민족의 자주 정신을 선양하는 데 앞장섰던 여러 선배 선각자 불교인들의 희생 때문에 가능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분들의 희생과 불퇴전의 전진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현재 위치는 당연히 도달해야 할 위상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 같아 심히 안타깝습니다. 우리의 선배들이 격동기의 민족사를 선도했듯, 우리 후인들도 무한 경쟁 시대의 학문 세계를 주도해야 하지만, 작금의 평가가 그에 부합하지 못함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만시지탄만 하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의 이런 난처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 저는 화합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불가에선 선도 생각하지 말고(不思善) 악도 생각하지 말라는(不思惡) 가르침이 있습니다. 이것은 선악에 초연한 채 현실을 방기하라는 뜻이 아니라, 자기만의 선과 악을 생각하여 강요하기에 앞서, 그 주장의 근거가 자신만의 아집이나 집단의 독선은 아닌지 되짚어 보라는 말입니다.
이렇게 둘로 나뉘어 어느 한 편의 입장을 강변하지 않으므로, 토론과 의견의 개진은 자유롭되 그런 주장들이 다양성 속에서 창조적으로 조화를 이루는 것이 바로 불이(不二)적 중도의 화쟁이라 할 것입니다.
이처럼 불이적 중도로 화쟁과 화합을 일구어가는 것, 그리하여 혼돈 속에서도 여법(如法)한 질서와 이치를 찾아 바람직한 방향으로 지혜를 모아가는 것, 이것이야 말로 부처님 이래의 불교적 시대정신일 것입니다.
이런 정신으로 화합할 때 우리들은 역사 앞에서 당당해질 수 있습니다. 역사의 계승과 역사의 창조는 동시적인 것입니다.
사업(私業)과 공업(共業)으로 이루어지는 이 역동적인 시공간 속에서, 우리는 과거의 전승과 미래로의 전진이 함께 어우러진 조화로운 시대상을 재정립해야 합니다.

치우침 없는 균형된 시각 필요

따라서 우리는 불교를 비롯한 인류 정신문화의 위대한 유산들을 충실히 계승하면서도, 그것이 바람직한 생명 세계의 건설이라는 진취적 방향의 토대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개인적 아집의 울타리를 넘어 인류와 생명 세계라는 전체를 향해 관심과 배려의 범위를 확산시켜 나아가는, 거시적이면서도 균형잡힌 시각을 도출하는 것이야말로 바로 반야(般若)의 묘용(妙用)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향하는 대학은 학문 따로 생활 따로의 직업적 지식 전문가를 양산하는 세칭 일류대가 아니라, 지적 깊이와 인격적 넓이를 아울러 갖춘 존경받는 지도자를 키워내는 사표(師表)로서의 대학이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바로 이런 대학을 만들어내야만 하는 사명과 아울러, 그렇게 능히 해낼 수 있다는 희망과 능력도 또한 갖추어져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잡아함경(雜阿含經)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은 모든 흐름을 건너게 하고,
게으르지 않음은
넓은 바다를 건네주며,
정진으로 모든 고통을 버리고,
지혜로써 맑고 깨끗하게 되느니라.”

이를 우리의 현실에 맞게 옮겨 보면, 우리에게 희망과 능력이 있음을 믿고, 화합과 지혜로써 정진해 나아가면 저 요원해 보이는 듯한 이상과 사명도 능히 성취될 수 있다는 말씀일 것입니다.
삼동(三冬)의 추위가 뼈에 사무치게 느껴지지 않으면, 어찌 봄의 매화향을 느낄 수 있겠습니까? 지난 겨울이 추웠기 때문에 봄이 반가운 것이고, 추위가 있기에 꽃향기가 좋은 것을 압니다.
우리의 현재가 고달프고 시련이 크기 때문에, 단비처럼 내린 부처님의 가르침을 참으로 반길 수 있는 것이고, 미래의 희망이 그만큼 소중한 것입니다.

일관되게 유지해 온 도덕적 정당성

다시 한번 돌이켜 보건대 우리 동국대학교만큼 순수 민족 자본과 사상에 의해 설립되어, 그 도덕적 정당성을 일관되게 유지해 온 대학도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의 선배인 만해 한용운 스님께서 끝까지 홀로 변절하지 않으신 것은 비단 동국대학교 뿐만 아니라 우리 민족 전체의 긍지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우리들이 지닌 도덕적 정당성이야말로 이 혼탁한 시대에 사표가 되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비록 다소 정체된 듯이 보인 시절이 있었다 하더라도, 우리들의 학문 깊숙이 내재된 부처님의 지혜야말로 미래 인류 사회를 이끌어갈 밝은 등불이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다음 백년 기간 내에 동국대학교가 세계 초일류 대학이 되었을 때, 우리는 그 곳에서 민족의 희망과 나아가 인류의 구원까지도 확인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아울러 “마음의 깨끗함이 곧 세상의 깨끗함이요, 스스로 깨끗함이 곧 모든 것의 깨끗함이다”(心淨卽 國土淨 自淨卽一切淨)는 불교의 근본 수행관에 입각하여 이 땅을 불국정토화함으로써 우리의 세상을 화쟁과 안락의 국토로 만들어갈 때입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정진과 선연(善緣)의 축적으로, 미래의 단순한 예측을 넘어 미래를 새롭게 창조해 나아갈 때입니다.
자, 우리 모두 화합하여 열정과 용기를 가지고 이상을 드높여 건학 100주년의 새 아침을 맞이합시다.
끝으로 동국 가족 여러분들의 그동안의 헌신적인 노력과 열성적인 봉사에 감사드리며, 여러분들의 앞날에 불보살님들의 무한 가피가 함께 하시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김 현 해
학교법인 동국대학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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