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을 알면서도 외칠 수 없었다”

  작년 여름에 순두부 장사를 한 적이 있었다. 한여름에 인적 드문 버스 종점에서 뜨거운 순두부를 팔려는 나의 행동은 스스로 돈키호테처럼 생각되었으나, 예상보다 순두부는 비교적 잘 팔렸다. 나의 사업체 앞에 버티고 서있는 가게집 아주머니의 텃세도 나의 부릅뜬 눈과 아양을 뒤섞은 양면공략으로 잘 무마되었고, 동네 주먹 패거리들도 몇 그릇의 순두부와 몇잔의 소주를 입안에 털어 넣어줌으로써 든든한 호위병으로 전향시키는데 성공하였다.
  ‘펄펄뛰는 순두부 드세요. 아르바이트생 올림’이라는 종이간판이 효과가 있었는지, 손님 중에는 버스 안내양과 여학생들이 꽤 있었다. 물론 그들에게 ‘순두부와 인체역학(미용)적인 관계’에 대한 한 시간동안의 나의 해설이 주효했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그날도 마지막손님인 버스운전기사들을 기다리며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어디선가 울음  소리가 들리기에 다가가 보았더니 예닐곱 살쯤 되어 보이는 꼬마가 전봇대 밑에 웅그리고 앉아 있었다. 보안등에 반쯤 비친 얼굴로도 대번에 정상적인 아이가 아님을 알 수 있었다. 배고프다고 울어대는 녀석에게 순두부를 먹였다. 두 그릇째 퍼주면서 물어 보았다.
  ‘꼬마야 너 집이 어디니?’
  ‘…’
  음식을 다 먹고 녀석은 원래 앉아 있던 자리로 가버렸다. 곧 운전기사들이 들이닥쳤다. 떠들썩한 소리의 여운, 빈 그릇, 빈 소주병 등을 남긴 채 운전기사들도 떠났다. 정리를 하고 집으로 가려는데 아까 그 꼬마가 그냥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여전히 묵비권을 행사하는 그 놈을 나의 집으로 데리고 가려고 번쩍 들었으나 녀석은 어느 틈에 들었는지 돌멩이로 나를 치려고 하였다. 놀란 나는 뒤로 물러났고 녀석은 종전 자세대로 웅크리고 앉아 계속 앞만 바라보았다.
  어찌할 바를 모르던 나는 문득 우리 동네 파출소 전화번호를 적어둔 기억이 났다.
  ‘여보세요. 거지 XX파출소죠. 길 잃은 아이가 있어서 연락을 드렸는데요.’
  ‘거기가 어디쯤입니까?’
  ‘여기 XX번 버스 종점인데요.’
  ‘그곳은 저희 관할이 아닙니다. 그곳 관할 파출소에 신고하세요. 죄송합니다.’
  ‘여보세요. 그럼 이곳 관할 파출소의 전화번호는 어떻게 되나요?’라는 내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전화는 끊어졌다.
  나는 꼬마가 앉아있던 자리로 되돌아 왔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녀석이 없어졌다. 그저 나를 위협했던 돌멩이만이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허허로웠다.

 X X X

  그것은 최근의 일이었다. 전투복과 사복을 입은 경찰 수백명이 단 한명의 연사를 연행하기 위해 이 東岳(동악)을 바득바득 기어 올라왔다.
  그들이 우리 경찰이라면 그들과 우리 사이에 느껴지는 지독한 이질감과 두 개로 나뉘어진 침묵의 공간은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손이 모자라서 어린아이 하나도 보살피지 못하는 경찰행정이 그렇게 대학생에게 지독한 관심을 보여 수많은 병력을 배치시킨다는 것은 수요·공급의 원칙에 어긋날 것이다.
  학교신문에 外部人(외부인) 出入禁止(출입금지)와 그들의 관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었다. 답을 알면서도 나는 외칠 수 없었고 오직 그 아이의 울음소리와 관할을 따지던 또랑또랑한 경찰의 소리만이 귓전을 자꾸 울린다.
 

저작권자 © 대학미디어센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