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이란 양식 융합으로 신비로움 창조

  간다라 미술은 동서문화의 교류·접촉에서 탄생한 국제적인 미술이자 동양의 신비와 서구의 오묘함이 잘 조화된 세계에서 가장 매력적인 미술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간다라 미술은 불상과 탑, 그리고 사원지에서 잘 나타나고 있으니 실제로 간다라 유적지를 답사하면서 느낀 간다라 미술의 특징을 간단히 알아보고자 한다.
  간다라 불상을 몇 마디로 설명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그 창시에서부터 특징에 이르기까지 학자들의 견해가 구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간다라 불상을 모두 살펴보고 나면 그 공통점을 몇 가지로 간추릴 수 있게 된다.
  첫째, 불상을 만든 재료가 점판암 계통이라는 점이다. 이 돌을 조각한 후 반질반질 윤기나게 연마한 것이 특징인데 쑥색 계통도 있지만 대개 검은 색 돌이어서 검게 윤기 나는 불상을 보면 고귀한 흑요석 같은 보석을 연상케 한다. 말하자면 고상하고 고귀한 부처님의 품격을 여실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둘째, 단독 예배상을 제외하면 부처님의 일생을 돌을 새김으로 새긴 이른바 ‘불전부조(佛傳浮彫)’가 간다라 불상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는 점을 들 수 있다.
  이것은 중인도 불상 조각이 부처님의 전생설화를 위주로 부조 작품을 조성한 것과는 무척 다른 점이다. 간다라 미술은 바로 초월적인 불(佛)의 세계를 상징하려 한 것이 아니라 현실세계에서 고뇌하고 깨닫고 제도하려고 무한히 애쓰다가 돌아가신 부처님과 그 제자, 그리고 그 후의 승단의 변천을 표현하는데 더한층 매력을 감각에 바탕을 둔 미술을 만들어 내었다는 말이다.
  이런 특징 있는 불전 부조는 간다라에서 열광적으로 애용되었는데 대승불교의 흥기와 깊은 관심을 갖고 있어서 종교적인 관심에서도 흥밋거리지만 결국 이 점이 불상을 창시하는 원동력이 되었다고 하겠다.
  셋째, 단독 불상이나 부조 불상조각의 외형에 나타난 특징을 들어야 하겠다.
  눈은 깊게 새기고, 코는 날카롭고도 길게 만들었으며, 입술은 얇고 얼굴은 타원형인데 이러한 얼굴을 아리안인의 서구적인 용모를 그대로 나타내주는 것이다.
  여기에 파상연모(波狀軟毛)라는 구불구불한 부드러운 머리칼을 상투로 묶어 올린 독특한 헤어스타일을 보여준다. 또한 불의(佛衣)는 양쪽 어깨를 덮은 통견의 두터운 옷인데 깊이 파인 사실적인 옷 주름이 표현되었고, 목깃이 턱 밑에서 한번 뒤집어 목을 두른 가운식의 독특한 모양이며, 부처님의 격을 나타내 주는 후광(後光)은 둥근 원판 광배로서, 이들 모든 특징은 그리이스 또는 로마식이라 말해지고 있다.
  그러나 승의(僧衣)를 두르고, 귓불을 길게 내리고, 중간에 머리칼을 한 번 묶어 육계(肉鷄)를 만들었으며, 체관한 듯한 정신적인 얼굴 등은 기본적으로 인도식이어서 인도와 그리이식이 혼합된 것이다.
  또한 초기 간다라 불상은 토카를 둘렀던 초기 로마 황제와 비슷한 점이 있고, 불전 부조의 구체적인 힘을 찬미하는 점이나 포도 당초문의 여러 무늬 등은 로마식이다. 그리고 정면성이 강하고 정신성이 명확하게 보이고, 체구가 위엄적으로 표현되었으며, 선조적(線彫的)이고 분명한 표현 등은 그레코-이란(페르시아)식이어서 그리이스와 인도식의 혼합에 로마·이란의 미술 양식이 복합적으로 융합된 것임을 알 수 있다.
  간다라 불상은 이처럼 복합적인 양상을 띠고 있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조각이므로 그 설이 분분하고 애매모호하며 불분명한 점투성이라 하겠다.
  이런 점이 간다라 미술을 더욱 신비롭게 만들고 있으며, 이것은 대승불교의 오묘한 종교성과 결합되어 가장 신비스럽고 빼어나게 아름다운 미술을 창조하게 된 것으로 생각된다. 필자는 이번에 간다라 불상을 조사하면서 이 점을 절감할 수 있었다.
  이러한 특징은 간다라 지방의 여러 사원을 둘러보면서 실감나게 느낄 수 있었다. 간다라 사원은 탑원(塔院)과 승원(僧院)또는 불원(佛院)으로 구성되고 있다.
  탑원은 거대한 중앙 대탑을 중심으로 작은 탑(小塔(소탑))들이 무수하게 건립되고 있는데, 중심탑은 부처님의 사리를 봉안한 불탑이고, 주위 소탑들은 대개 고승(高僧)들의 승탑이 대부분이다. 이들은 대개 우리가 흔히 청석이라고도 부르는 점판암을 벽돌로 쌓거나, 아니면 그냥 회를 바르고, 이 회벽에 채색 벽화를 그리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그런데 탑 중심부는 부타가라 탑인 경우 냇돌로 채우고 있었다. 바닥 부분은 다시 청석으로 4각형 사리함을 조성하였는데 이런 점은 대개의 탑에 그대로 적용되었던 것으로 탁실과 제2도시 유적 옆의 사원지 탑에서도 볼 수 있었다.
  우리나라 경주 중생사 탑에도 보이고 있어서 퍽 흥미 있게 살펴보았던 것이다.
  이러한 점판암 탑들은 중심탑은 복발탑(覆鉢塔)즉 밥그릇을 뒤집은 듯한 형태의 탑이지만 주위 탑들은 우리의 층탑 형식과 닮은 점도 있어서 우리나라 모전탑(模塼塔), 가령 경주 분황사탑이나 청석탑의 기원이 이러한 간다라 탑에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승원 및 불원은 탑보다 한 단 위에 있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탁실라의 달마라지카 사원지처럼 탑 주위에 소탑과 더불어 보다 작은 규모로 배치되는 경우도 있다. 이들 건물 역시 점판암을 벽돌식으로 쌓아 구축한 것으로 석실(石室)처럼 만든 것이다.
  부타카라 제2사원지의 탑전(塔殿) 등은 흙과 점판암으로 구축한 것이며, 탁실라의 모하란 모라두 사원이나 쟈우리안 사원지의 승원지 각방들은 모두 점판암 석실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러한 석실(佛殿(불전) 내지 塔殿(탑전))들은 경주 석굴암 석굴의 선구적인 것으로 보아도 무방하리라 생각되었다. 이들 승원건물은 단층인 경우도 많지만 탁티바히사원처럼 몇 층으로 축조된 거대한 건물도 더러 있어서 장엄하고 특이한 아름다운 건축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간다라 사원의 또 하나의 특징은 능선 위에 세운 산악 사원이 도시사원처럼 많다는 점이다. 산의 능선을 깎아 층층으로 건물이나 탑을 세운 사찰로 특히 탁티바히사원의 위용은 중세성곽처럼 장권이었는데, 우리 경주 남산 용장사 등 능선사원은 간다라의 영향이 분명하다는 것을 직감했다.
  이외에 탑이나 마애불 등에 겨우 전하는 벽화 잔해나 사리용기 같은 공예품들도 중요한 간다라미술로 우리, 불교미술과 상당히 비교될 수 있어서 흥미진진하게 살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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