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 ‘불일 법정’(1932~2010)이 입적하였다. 그는 마지막까지 ‘비구 법정’이기를 자청했다. 하지만 법정은 ‘철학하는 사람’이었다. 지혜에 대한 그의 사랑은 돋보였다. 자비에 대한 그의 헌신도 남달랐다. 법정은 지혜에 치중하는 한국불교에서 자비를 강조했던 독자적 사상가였다.

결국 그는 대선사가 아니라 대종사로 자리매김 되었다. 법정은 치열한 수행과 방대한 독서로 팔십 평생을 살았다. 그는 산속에 홀로 머물면서 ‘온삶을 실은 말’과 ‘온몸을 실은 글’로 세상과 소통했다. 그리고 ‘무소유의 자유’로 ‘소유의 부자유’를 일깨워 주었다.

그의 ‘무소유’(35편 수록, 1976)는 첫 수상집인 ‘영혼의 모음’(64편 수록, 1973)에서 24편을 추리고 11편을 덧붙여 엮은 에세이집이다. 범우문고판으로 처음 나온 이 책은 이내 장안의 지가를 드높였다. 특히 불필요한 것을 갖지 말라는 ‘무소유’의 메시지는 더 가지려는 사람들을 숙연하게 만들었다.

아울러 ‘가진 것이 너무 많다’는 인식의 전환을 가져다 주었다. 때문에 “이 책이 아무리 무소유를 말해도 이 책만큼은 소유하고 싶다”는 김수환 추기경의 역설적 멘트는 입적이후 그의 에세이집을 소유하려는 ‘출판특수’를 창출했다.

‘무소유’는 ‘복원불국사’로부터 시작해 ‘불교의 평화관’으로 마무리 되어 있다. 여기에 실린 글 35편은 순서를 의식하지 않고 편집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편편들은 모두 이후의 법정을 형성한 주요한 씨알이 되었다. 즉 ‘무엇인가를 가진다는 것은 무엇인가에 얽매이는 것’임을 갈파한 ‘무소유’, ‘내게 잃어버릴 물건이 있었음을 부끄러워하는 탁상시계 이야기’, ‘남기는 글이기 보다 지금 살고 있는 생(生)의 백서(白書)가 되어야 함’을 주장한 ‘미리 쓰는 유서’’, ‘말의 무게와 뜻의 무게’를 강조한 침묵의 의미’, ‘외부적인 지식에만 의존할 때 자기 언어와 사유를 잃어버린다고 역설한 영혼의 모음’, ‘인간의 심성에서 유출되는 자비의 구현으로 파악한 불교의 평화관’ 등은 모두 그의 ‘무소유 지혜’를 담고 있다.

소유하지 말라는 강제적 불소유와 달리 ‘무소유’는 개인의 소유를 없앤 자율적 공동소유를 가리킨다. 초기 율장에서 출가자는 ‘분소의를 입고’(糞掃衣), ‘항상 밥을 빌어 먹고’(乞食), ‘나무 아래에 정좌하고’(樹下座), ‘부란약을 쓰는 것’(陳棄藥, 비상약)만을 허용했다.

그러나 점차 정착생활을 하면서 소유물이 늘어났다. 법정 역시 어렵게 모아둔 책들을 더 읽기 위해 출가를 며칠 늦추었다고 한다. 법정은 ‘무엇을 읽을 것인가’에서 “우리가 책을 대할 때는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자신을 읽는 일로 이어져야 하고 잠든 영혼을 일깨워 보다 값있는 삶으로 눈을 떠야 한다.

그때 우리는 비로소, 펼쳐 보아도 한 글자 없지만 빛을 발하고 있는 그런 책까지도 읽을 수 있다. 책 속에 길이 있다고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고 했다. 만일 우리에게 그가 강조한 그런 한 권의 책(경전)이 있다면 더 이상의 행복은 없으리라. 그런데 법정의 ‘무소유’는 어느덧 우리 시대의 경전이 되었다.

법정은 시대와 함께 호흡하면서 현실문제에도 참여하였다. 그는 정권에 대한 비판과 정책에 대한 비평을 주저하지 않았다. 그는 지식인의 문자적 삶을 넘어서 지성인의 실천적 삶을 살았다. 때문에 짧은 단문에 실은 그의 진솔한 글은 독자들의 가슴을 후벼팠다. 법정은 자연에서 터득한 진리를 사회속에 나누었다. 그리하여 꽃과 나무의 향기와 물과 바람의 소리로 문명의 속도에 지친 이들에게 휴식을 주었다.

 법정의 글은 모두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역설적이지만 그것은 그의 글이 ‘소박하고’ ‘단순했기’ 때문이었다. ‘대중적 재미’와 ‘보편적 의미’가 어우러진 그의 글은 종교와 세대의 경계를 넘어 읽혀졌다. 법정은 자기 책의 인세 대부분을 학생들의 장학금과 등록금으로 내놓았다.

이러한 그의 노력은 기부 문화의 새 지평을 열었다. 법정은 홀로 살았지만 홀로가 아니었다. 폐암으로 입원했으나 병원비도 없었다. 길상사를 떠나던 그는 대나무 평상에 누운 채 가사 한 장을 덮었을 뿐이었다. ‘번거럽고 부질없는 검은 의식’은 일절 생략하게 했다.

빈 손으로 와서 빈 손으로 간 법정의 ‘아름다운 마무리’는 커다란 메아리를 울렸다. 송광사 불일암(승주)과 일월암(진부)과 수류산방(평창)에 머무르며 길상사(서울) 개창을 마무리 한 그는 고향 송광사로 돌아가 한 줌 재로 사라졌다. 법정은 ‘이웃을 귀찮게 하는 (육신) 사리를 찾지 말라’고 했다.

또 ‘말빚을 지어 죄송하다며 자신의 문자 (사리)를 절판하라’고 했다. 『무소유』의 절판 이후에도 그의 ‘무소유 지혜’의 사리는 빛이 되어 우리 마음속에 살아있다.

일기일회 (동쪽나라, 390쪽)

동쪽나라에서 출간한 ‘일기일회’는 법정 스님의 대표작 중 하나로 꼽힌다. 모든 것은 생애 단 한번이란 주장과 함께, 대중들에게 맑고 향기로운 삶의 화두를 던진다.

내가 사랑한 책들 (동쪽나라, 488쪽)

‘내가 사랑한 책들’은 법정스님이 추천하는 이 시대에 꼭 읽어야 할 책 50권에 대한 소개를 담고 있다.
일생을 책과 함께 해온 법정스님의 가르침이 담겨 있다.

산에는 꽃이 피네 (동쪽나라, 204쪽)

‘산에는 꽃이 피네’는 법정 스님의 대표 명상집으로 꼽힌다.
책을 읽고 있노라면 법정 스님의 맑고 깊은 영혼의 세계를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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