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해방일기’

  “김 선생은 고향 땅에서의 하루 대가가 감옥에서는 10년이구만요. 선생, 우리는 젊은 청춘도 이곳에서 다 보냈고 건강도 다 빼앗겨 버렸구료”
  “그래요. 이제 우리에게 남은 것은 이제껏 간직해왔고 앞으로도 간직할 민족에 대한 사랑 하나뿐이지요”
  이는 비전향 장기수 문제를 다룬 극단 아리랑의 ‘아버지의 해방일기’중에서 주인공 김만석과 옥중동료 윤노인의 대화이다.
  ‘아버지의 해방일기’는 역사의 맥을 넘나들었던 남파공작원 출신의 아버지와 현시대의 아픔을 가족사적으로 체험한 딸을 씨줄과 날줄로 하여 과거와 현재를 이중구조로 설정하고, 딸이 이 사회를 더욱 커다란 감옥으로 느끼며 비전향 장기수 모두를 더 큰 아버지로 받아들이는 과정을 형상화 한 작품이다.
  현재 옥중의 장기복역 양심수는 총124명(89년 이후 방북인사는 제외)으로 그중 51명의 사람들은 법무당국이 강요하는 소위 ‘전향’을 거부하고 있는 ‘비전향 장기수’이다. ‘전향’을 하지 않으면 죽을 때까지 두들겨 패는 시대는 지났지만 비전향 장기수들에게는 엄청난 불이익한 조처가 가해지게 된다. 가족이외의 일체의 편지 면회의 금지, 일체의 출역금지와 독방생활, 감형 가석방 불가능 등....
  이런 장기수의 삶과 가족사적 비극, 민족적 아픔을 그린 것이 ‘아버지의 해방일기’이다.
  이 작품의 막을 여는 꽹과리, 징, 장고, 북의 흥겨운 사물놀이는 마치 통일된, 해방된 조국을 맞는 것처럼 어깨를 들썩이게 한다.
  이어, 비전향 장기수 김만석이 토벌대와의 전투에서 죽어간, 지리산의 옛 빨치산 동료를 회상하며 제를 지내는 모습으로 연극은 시작된다.
  간첩의 자식이라는 고삐로 유년 시절 아픈 경험을 안고 살아온 김만석의 딸 순옥은 어머니의 유언을 따라 30년 만에 잊혀져있던 아버지를 찾아 서먹서먹한 가운데 전향을 권하지만 침묵일 뿐이다.
  아버지의 부탁과 함께, 감춰진 아버지의 과거를 이해하기 위해 순옥은 형기만료 후 출소한 김만석의 옛 동료 송재천을 만나 오래된 일기장을 건네받는다.
  일기를 통해 해방직후 가난한 농사꾼 김만석의 완전한 해방을 위한 인민위원회활동과 빨치산생활을 알게 된다.
  김만석은 지도부의 사령을 받고 월북, 6·25후 남파공작원으로 남한에 내려오게 되지만 발을 디딘지 사흘 만에 체포된다.
  70년대 엄청난 전향 테러공작이 실시되지만 그는 꿋꿋하게 이겨나간다.
  순옥은 아버지의 과거, 더 나아가 분단된 이 땅의 아픈 현실을 자각, 남편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민가협에 가입하여 아버지의 석방을 위한 활동을 결심하며 끝을 맺는다.
  실제로 34년 동안 복역 중인 활용갑(66세)씨는 “우리는 젊은 청춘도 그곳에서 다 보냈고 육체적 건강도 다 빼앗겨 버렸습니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것이라고는 이제껏 간직해왔고 앞으로도 간직할 민족에 대한 사랑 하나입니다”고 말하고 있다.
  이 작품은 장기수에 대한 비인간적인 전향 공작, 그리고 그에 저항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일관성있게 다루고 있는데 반해 김만석의 딸 순옥이 아버지의 삶을 이해하는 과정이 좀 더 사실적이고 현실적으로 다뤄지지 못한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러나, 어느 무기수의 말처럼 우리는 교도소안의 38선이 걷혀지지 않는 한 어느 누구도 그들의 갇혀 지낸 40여년 삶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는 것을 느끼며 무거운 발걸음을 옮길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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