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패 연대한 자주적 문예운동 필요

글 싣는 차례
1. 문화의 문제점 고찰
2. 문학
3. 노래
4. 풍물
5. 미술
6. 민속극
7. 총평


  1. 여는 글

  이 글은 동악의 문학예술운동의 심화, 발전을 위한 단초를 마련하고자, 그리고 문학을 통해 문학예술운동, 나아가 변혁 운동적 지향을 뚜렷이 해나가고 있는 동국문학회를 위시로 한 각과 내지 단대 문예패를 대상으로 쓰여지는 것임을 밝히고자 한다.
  이글에서는 동악 문예현실을 간략히 살펴보고 ‘자주적 문예운동’에 대한 짧은 소개와 더불어 이것이 동악 문예운동에는 어떻게 적용되어질 수 있는가에 대한 주장과 앞으로의 동악의 올바른 문예운동에 대한 전망을 살펴보고자 한다.


  2. 동악의 문예현실

  한때 한국문학의 산실이라고 일컬어졌던 동악에는 현재 각과를 중심으로 한 독서토론회부터 과글패, 과창작학회, 불대 문학회, 중앙문예동아리인 동국문학회 등 약 20여 개의 크고 작은 문예패가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독서토론에서 창작 합평회, 시화전, 작품집 발간, 문학 강연회 개최, 집회 시낭송 등 다양한 문예실천을 벌여나감으로써 소속 과와 동악을 살찌우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지향은 모두가 확연히 드러날 정도로 똑같은 것은 아니다. 순수 문예소모임의 경우도 있고 문예운동을 표방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문예운동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는 문예패는 중앙문예동아리인 동국문학회 외에는 아직 부족한 실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또한 문예운동을 한다는 말을 문학예술의 대중적 보급과 그 주체의 확산이라는 면에서, 또 하나 문예를 통해 자주적 학생회의 감각기관의 역할을 수행한다는 의미로 두고자 한다.
  현재 동악에서는 문예를 통해 소속 대중의 귀와 감각기관의 역할을 충분히 해내고 문학예술의 대중적 보급과 확산에 주력하는 문예패는 몇몇 안되고, 그나마 중심이 없거나, 고립 분산적이며, 통일적이고 대중적인 문예실천을 벌여나가지 못하는 실정이다.


  3. 자주적 문예운동이란 무엇인가?

  ‘녹두꽃 2’에서 정채화씨는 ‘자주적 문예운동관을 정립하자’에서 ‘무엇보다 핵심적으로 제기해보고 싶었던 것은 문예운동 자체에 대한 올바른 이해였다. 문예운동은 누군가가 작품을 보급하고 보급 받는 운동이 아니라 대중이 자주성 실현의 한 과정으로서 문학예술의 무기를 쟁취해가는 운동이라는 것, 그 운동의 올바른 길을 계급계층운동에 있다는 것이었다’라고 밝히고 있다.
  우리는 여기에서 자주적 문예운동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4. 동악의 현실 속에서 어떻게 적용되어지는가?

  자주적 문예운동은 동악의 학생운동과 밀접히 연결된다. 이것은 앞에서 밝힌 문예운동의 시발점은 바로 소속계급계층운동의 발전에 있다는 것이다. 그러할 때 동악의 문예운동은 자주적 총학생회의 사업과 일상적 문예실천사업의 긴밀한 연결을 찾아나가야 한다는 과제를 노정하게 된다.
  그러므로 총학생회의 한해 사업의 방향을 따르지 않는 독자적 문예사업이란 존재할 수 없으며 그것은 진정한 문예운동이라고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바로 동악의 압도적 학우들이 문학예술의 주인이 되어 동악을 살찌우기 위해서는 동악의 문예패는 자주적 학생회의 발전과 그 운명을 같이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소속계급계층을 떠나, 소속대중들의 운명을 떠나 추상적으로 존재하는 문예운동이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5. 동악의 자주적 문예운동의 발전을 위해

  동악의 문예패들이 온전히 자신의 생명을 쥐고 동악을 살찌우고자 한다면 자체의 고립성과 폐쇄성에서 벗어나 함께해 나가는 문예운동을 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의 구체적 경로는 각 문예패들의 연대교류로부터 시작해 총학생회의 감각기관을 해 낼 수 있는 대중적 문예실천을 벌여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모든 운동에는 중심이 있듯이 이 문예운동의 중심에 서서 그 역할을 온전히 해 낼 조직이 필요할 것이다. 그것은 자주적 문예운동의 선두자라 할 수 있는 동국문학회를 중심으로 자주적 학생회와의 긴밀한 연관속에 동악의 ‘자주적 문예운동군’을 형성해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여타의 문예패들이 역량이 그 주가 될 것이 틀림없다. 이들이 조직화 되는 시기와 경로는 올 여름방학 중 동악 차원으로 열리게 될 ‘창작교실’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문예패들의 연대한 대중적 창작교실속에서 동악의 문예운동이 나아갈 길이 밝혀지기 시작할 것이다. 지면 제약상 엉성한 글이 되지 않았나 우려하며, 식민지 변혁운동이 압도적 다수의 조직화된 역량으로 성광하듯이, 문예운동의 승리 또한 압도적 다수가 주인되어, 조직적으로 벌여나가는 것에 있다는 말로써 글을 마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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