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演劇(연극)을 향하여

  演劇理念(연극이념) ‘Total Theatre=全體演劇(전체연극)’은 綜合藝術(종합예술)에 관한 Wagner의 理論(이론)과 Gordon Craig의 연극이론에서 비롯되어진 것으로 映畵(영화)나 텔레비전이 가지는 機械的 効果(기계적 효과)에 대하여 <戱曲(희곡)․俳優(배우)․舞臺裝置(무대장치)․照明(조명)․音樂(음악)․衣裳(의상)> 等(등) 모든 Medium을 綜合(종합)함으로써 <풍부한 연극>에로의 길을 摸索(모색)하고자 하는 慾求(욕구)에서 出發(출발)한 것이다. 

  그러나 연극은 扮裝(분장) 혹은 衣裳(의상)․충분한 장치가 없어도 存在(존재)하며, 客席(객석)과 區分(구분)되는 公演(공연)의 場(장)이 없어도, 照明(조명)과 音樂効果(음악효과) 등이 具備(구비)되어 있지 않아도 存在(존재)할 수 있는 것이며, 따라서 知覺(지각)에 호소하고 直接(직접) 靈交(영교)를 갖는 배우와 관객의 관계만으로도 충분한 것이다.

  이처럼, 표현의 領域(영역)에 있어서 다른 諸藝術(제예술)이 가지는 Mechanism的(적)인 要素(요소)를 授用(수용)하고자 하는 <풍부한 연극>은 결국 자신이 가지는 무수히 많은 결함과 表現(표현)의 限界(한계)를 드러내는 自己矛盾(자기모순)에 빠져버리고 마는 것이다.

  오는 3월 7일부터 11일까지 (오후 6시) 나흘간에 걸쳐 本科(본과) 스튜디오에서 가질 1979학년도 신입생 환영공연 <King Lear>의 무대는 이러한 造型的(조형적)인 의미의 <풍부한 연극>을 止揚(지양)하고 단순히 배우의 육체를 통하여 根源的(근원적)인 人間狀況(인간상황)을 表出(표출)하는데 주력하고자 한다.

  한편 堊(악)의 生態(생태)와 그것에 대한 全體秩序(전체질서)의 반응을 그리고 있는 이번 작품 <King Lear>는 혼란된 의식속에서 作者(작자) Shakespeare의 두 의식의 세계를 엿볼 수 있게 하고는 있으나, 作品(작품) 構成上(구성상) 非蓋然性(비개연성)과 前後 不一致(전후 불일치)라고 하는 커다란 問題點(문제점)을 안고 있다.

  이러한 문제점들을 타개해 나가기 위해서, 이번 <King Lear>의 무대에서는 表現主義的(표현주의적) 樣式(양식)을 빌어 새로운 <도입부>를 설정하고 Lear에 대한 지금까지의 보편적인 해석에 반기를 들고자 한다.
  반면 불행한 인간들이 처해 있는 現實(현실)의 神秘性(신비성)을 더욱 명료하게 드러내기 위해서 패러독스와 아이러니, Symbolism의 手法(수법)을 구사하는 셰익스피어의 특성을 최대한 살려보고자 한다.

  現代悲劇(현대비극)의 槪念(개념)을 사회구조적 모순과 인간 意識構造(의식구조)의 缺陷(결함)에서 찾아낼 수 있다고 볼 때 <King Lear>는 古典的(고전적) 의미의 悲劇(비극)으로도 해석할 수가 있겠으나, 現代(현대) 悲劇(비극)의 槪念(개념)으로도 形象化(형상화)할 수 있는 충분한 요소를 갖추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번 <King Lear>의 무대에서는 고전적 의미의 해석을 탈피하고, 觀客(관객)의 想像力(상상력)을 제한하는 기존의 寫實主義的(사실주의적) 舞臺(무대)를 배격하며, Symbolic한 장치와 衣裳(의상), 舞身劇(무신극)으로서의 形態(형태)를 취함과 동시에, 戱曲本位(희곡본위)의 敍術的(서술적) 形象化(형상화)를 止揚(지양)하고, 寫實主義的(사실주의적) 演技(연기)가 갖는 表現(표현)의 한계를 벗어나 <가난한 연극>에로의 한걸음을 딛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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